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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정은경들
현대종교 | 탁지원 소장 takjiwon@hdjongkyo.co.kr
2020년 06월 05일 08시 49분 입력

투쟁의 이유에는 대의를 위한 일도 있겠으나 제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든지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회복에 관한 것이 더 많지 싶다. 그러나 남의 밥그릇과 회복도 생각하며, 그 지경의 확대를 원칙으로 할 때 비로소 투쟁을 투쟁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탁지원 소장
본지 발행인

  

얼마나 귀한 것들이었던가
5월이 되어 조금씩 강의 사역이 열리는 듯싶더니 신천지에 이어 이태원클럽 사건으로 인해 다시금 긴장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코로나 전에는 일주일에 4~5번 정도 강의를 하곤 했었는데 최근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나가고 있다.

그래도 그조차 감사한 것은 그간 수 많았던 강의 사역을 너무도 당연하게만 여겼던 안일한 마음과 강의 사역을 통해 걱정 없이 본지를 이끌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지 못했음을, 아울러 사역의 첫 마음을 놓치고 살았던 것을 회개하고 반성하는 계기가 되어서다.

부족한 사람이 결코 설 수 없는 곳들의 초청을 받고, 말씀을 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를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깨닫고 있다. ‘코로나의 역설’이 단지 미세먼지가 사라지는 등의 자연의 회복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일들의 회복도 포함되며, 그 많은 ‘단’ 속에 귀한 ‘장’들이 자리하고 있음을 배우게 됐다. 대면이 어렵게 되니 유튜브 등 온라인을 통해 만나기도 하고,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 상담에 애쓰는 것으로 수많은 상담이 이뤄지며, 해외에 흩어져 있는 청년과 청소년들을 직접 만나진 못하더라도 SNS로라도 코스타 집회가 이뤄지는 등 모든 것에 감사한 일들이 적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의사의 휴식 권유가 있었음에도 마다할 수밖에 없었는데 결국 불가피하게 이렇게라도 재충전을 통해 건강의 관리까지 가능해졌으니 지금의 상황을 무조건 나쁘게만 생각할 순 없을 것 같다(그래도 지긋지긋한 코로나가 하루빨리 종식되길 소망한다). 아무튼 이 같은 감사들이 여러 회복 후에도 계속되기를 바라며, 가끔은 주변을 돌아보는 계기로도 이어졌으면 한다.

아직도 잡지를 보니
모 신문 제작자가 지인 중에 신문을 구독하는 이를 찾아봤더랬다. 결과는? 예상과는 다르게 단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차라리 “아직도 신문을 보니?”, 내지는 “신문을 본 적은 있니?”로 질문을 수정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고 하니 꽤나 당황스러웠을 것 같다. 순간 신문뿐 아니라 잡지도 크게 다르진 않을 거라 생각하니 참담한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탈 때면 온통 스마트폰만 바라보며 오가는 이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미울 때가 있다(제발 책들 좀 보시라고요!). 내지는 섭섭하기도 하고. 그럴 때면 고작 시위(?)라도 한다는 것이 신문이나 책을 펼쳐대고 주변 사람들을 방해(?)하는 일뿐이긴 하나 스스로 자책하거나 멋쩍게 생각하진 않는다. 옛것만을 무조건 고집하는 것도 문제이겠으나 세상 변해가는 것에 너무 쉽게 순응하며 예전 것을 점차 버려가는 것도 다르진 않은 것 같다.

어떠한 일에도 공존함은 필요하고, 과거의 연륜과 지혜, 그리고 현재의 발전과 성장이 건강하고 성숙하게 맞물리는 일을 도모하며 사는 것이 여전히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본지 독자의 수가 예전과 비교해 크게 줄어들었다 해도 아직 남아 있는 독자들이 적진 않기에 동요하거나 실망스러워하지는 않으려 한다.

신문이나 잡지를 만드는 이들에겐 유튜브 등의 구독자와는 다르게 종이 잡지의 ‘독자’라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것이며, 너무나 감사한 존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단 한 명의 독자만 남는다고 해도 종이 잡지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약속을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본지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쯤부터 종이 잡지를 통한 오프라인 정보 공유에서 온라인으로 사역의 틀과 방향을 조금씩 바꿔나갈 예정이다. 물론 다시 언급하지만, 본지의 폐간 전까진 종이 잡지를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 둘이 하나 되어 더없이 귀한 동반 상승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만 믿고 이번에도 뚜벅뚜벅 걸어가고자 한다.

영적 방범대원
1. 야간통행금지는 해방 직후 미군이 주둔하던 1945년 시작됐다. 당시엔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통행을 금지했는데 1961년부터 1982년까지는 자정부터 새벽까지 단축돼 시행됐다. 당시 경찰력으로는 야간통행금지 시간대의 치안을 모두 담당할 수가 없었기에 방범대원을 뽑아 운영했다.

통행금지 시간이 되면 방범대원이 호루라기를 불며 위반자를 단속하여 파출소에 데려가곤 했다. 어둠이 깃들면 바빠졌던 사람들, 방범대원들의 야간 일과가 시작된다. 모든 소음과 인적이 사라진 뒤 관내 시민들의 편안한 휴식을 위해 이들은 50여 리의 순찰을 했다. 야음을 타고 남의 집을 엿보는 도둑으로부터 재산을 지켜주며 야간 응급 환자와 산모들을 병원까지 안내해 주는 일, 늦게 귀가하는 취객들을 안전하게 집으로 인도하는 일, 화재를 미연에 방지하는 일 등을 했다. 이들은 야간통행금지 해제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출처, 추억의 직업/ 방범대원의 일상/ 편안한 휴식을 드립니다/ 1973.03).

2. 위의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지만 이후 방범대원의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다. 명맥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다르겠지만 그 호칭과 역할이 지금도 이어져 지역마다 자율 방범대원이나 순찰대원 등의 활동이 있긴 하다. 그러나 예전의 방범대만큼 그 이름들이 익숙진 않다. 경찰들이 감당하기 어려웠던 일들을 이웃 가까이에서 늘 함께했었기에 적어도 작은 동네라도 치안 걱정만큼은 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지금처럼 자율적으로 결성된 것은 아니었기에 주민들이 소액의 방범비를 내는 것으로 운영됐다고는 하나 누구도 그 비용을 아깝다고 생각하진 않았을 것 같다. 당연한 수고의 대가였을 테니. 언젠가 이단 대처 모 사역자와의 인터뷰 중 사역자들의 역할이 예전 방범대원의 역할과 같지 않냐는 이야기를 나눴는데 크게 공감을 했더랬다. 한국교회가 경찰의 역할이라면 나머지 부족한 부분은 영적 방범대원으로서의 이단 사역자 역할의 비교가 적절했기 때문이다.

3. 이번에 위의 기억과 마음을 품고 10년 만에 긴급 기도, 후원 편지를 발송했다. 기도 요청과 후원 요청을 영적 방범비로 여겨주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내용을 작성했고, 떨리는 마음으로 몇 교회와 단체에 보냈다. 그리고 몇 통의 답신이 왔다.

후원해줘야 하는 여러 당위성, 이단으로부터 한국교회를 지키기 위해 하루도 빼놓지 않고, 심지어는 밥 먹고 자기 전까지 오로지 이단 문제만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이들이 자기들 밥그릇의 문제보다 교회와 성도를 지키고자, 아울러 소송과 압박 가운데에도 힘차게 영적 전투를 벌이고 있는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울타리를 쳐달라는 이야기가 이제 더는 멋쩍고 미안한 맘으로 진행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이 모든 것을 서로가 당연함으로 받아들인다면 더욱 거룩한 부담감을 안고 주어진 소명들을 잘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전문가
특정 분야의 일을 줄곧 해 왔기에 그에 관해 풍부하고 깊이 있는 지식이나 경험을 가진 전문인이라는 것이 특정인만의 전유물 같은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누구나 한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을 때 전문가라 불리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오랜 기간 같은 일을 해왔음에도 일의 능률이나 발전이 없거나 반대로 짧은 시간 안에 일을 능숙하게 처리한다는 이유만으로 전문가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작금에 이 시대 최고의 전문가 한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코로나 사태를 통해 국민적 영웅으로 거듭난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와 신천지 문제가 맞물리면서 감염 전문가와 이단 전문가가 동시에 매일같이 언론에 등장하는 초유의 때에 같은 직업군에서 꼽지 않은 이유는 신뢰의 면에 있어서 보건, 감염 전문가들이 더 낫지 싶어서다.

세상의 것과 종교의 일들이 뒤죽박죽 섞여버린 시대에 믿음과 신뢰 또한 그렇게 변해버린 듯싶다. 물론 이단 전문가로 존경받아 마땅한 이들도 적지는 않으나 갑작스레 코로나 사태를 통해 어느 순간 검증도 없이 자질보다는 인맥만으로 전문가가 되어 버린 이들부터 신천지 문제를 다룬 적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신천지 전문가라 소개되는 방송 앵커에, 심지어 이단 옹호자들까지 등장했기에 그 심각한 상황이 코미디처럼 다가오기도 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단에 잠시 몸담았다가 이탈했다고 해서 전문가 행세를 하는 것을 보니 이런 얼치기 같은 상황이 또 있을까 싶다.

그럴수록 지금도 심각한 코로나로 인한 아픔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며 싸우고 있는 관련 전문가와 의료진들에게 더 마음이 갈 뿐이다. 아무튼 정 본부장이 매일 코로나 상황을 보고할 때면 그 잠깐의 순간에도 전문가의 자질과 인성을 확인하는 것이 어렵지 않음을 온 국민이 바라보며 인정하고 있다. 그녀는 sns도 하지 않으며, 국민적 관심을 통해 자신을 알리려는 어떠한 마케팅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당연히 수당 등 노동의 대가를 바랄 수도 없는 상황임에도 몇 달 동안 최선을 다하고 있는 그녀와 의료진들을 보며 진정한 전문가의 모본이 이러한 것임을 제대로 배우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한국교회와 이단 사역은 세상 전문가들만큼 신뢰와 믿음을 줄 수 있을까, 아니면 이제는 신천지 등 이단과 동급의 비판을 감내해가며 살아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상실감이 멈춰지질 않는다.

본지 역시 세월호 때부터 국정 농단, 그리고 지금의 코로나와 신천지가 맞물리면서 유일무이한 자료와 정보들로 본지의 입지를 굳히는 데는 한 몫 단단히 했으나 대부분 언론과 다르지 않게 본질적 문제를 풀려고 하는 소명과 정의감, 그리고 진정성이 부족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진정성이야 이단 피해자 가족만큼은 못할 테고, 전문성은 세상 사람들에 비춰 부족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부디 앞으로는 실력과 더불어 진정성과 공의로움을 갖춰 전문가라 불리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으면 하며, 아울러 스스로 더욱 자긍심을 갖고 당당하게 일해나갈 수 있었으면 한다.

✽ 정부에 더 많은 정은경들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한 이의 바람처럼 교계에도 그 같은 귀한 전문가들이 더 늘어나기를 소망해 마지않는다. 제 밥그릇에 걸린 일에는 열심이던 이가 남의 밥그릇에는 어떤 관심을 보였는지가 그 진심의 척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내앞에 놓여있는 문제에만 열심을 다해야 하는가, 아니면 본질적인 문제를 함께 끝까지 풀고자 최선을 다하며 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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