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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종교 | 탁지원 소장 takjiwon@hdjongkyo.co.kr
2020년 12월 04일 08시 50분 입력

코로나 특수를 입은 소수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버거움’이나 ‘힘듦’이라는 단어로는 결코 표현할 수 없는 한 해를 보냈다. 본지도 어려움은 컸으나 ‘위기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내려놓지 않도록 함께해 준 이들로 인해 그나마 잘 버틸 수 있었다. 아쉬웠던 것은 시류에 아파하고 힘들어만하며, 분별하고 해석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살려고 아등바등했던 해를 지나 이제 2021년을 맞는다. 새해에는 세상이 어떻게 변해가고, 또 우리의 일은 어떻게 될까.

고 3 인천숭덕여고 , 안산 동산고, 이화여고

1. 매해 수능 시험이 끝나면 고3 학생을 대상으로 이단 강의를 진행해왔다. 특히 위의 세 학교는 20여 년 동안 별다른 사정이 없는 한 거의 한해도 빠지지 않고 이뤄졌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진행이 불투명하긴 하나, 걱정은 없다. 학교 교목이나 교사들이 대신해서 이단의 포교와 대처에 대해 전해줄 것이고, 진학할 대학의 이단 문제도 함께 고민, 공유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탁지원 소장
본지 발행인

  

이 학교들과는 이미 오래전부터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신뢰가 쌓여있고, 굳이 강의가 아니더라도 이단 문제에 대한 동기부여와 관심이 마련되어져 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라는 믿음과 함께 경계와 예방의 마음을 제자들에게 몸소 행동으로 옮기며, ‘사랑하는 제자 중 누구도 결코 이단에 빼앗길 수 없다’는 간절한 동기부여가 아이들 마음에 제대로 꽂힐 수 있길 바란다.


2. 이 세 학교는 때로는 필자의 출신 학교보다 정감과 신뢰가 크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단으로부터 제자들을 지키겠노라는 교사들의 마음과 더불어 기독교 학교들이긴 하나 믿는 이들이 10~20% 밖에 안 됨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교회 고등부 강의 때보다 듣는 태도 등 분위기도 좋고, 예의와 배려가 깊으며, 피드백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본지도 빚진 마음으로 관심에 부응하기 위해 매년 그 중요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며, 고3과 각 대학 캠퍼스의 이단 정보들을 업데이트하고 있다.

이렇듯 학교도 이단에 대처하며 열심히들 싸우고 있는데 교회는 이러한 일에 관심을 두고 기도 제목으로 나누고 있는지 모르겠다. 수능생을 위한 정해진 기도 모임이 대부분 교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시간 중에 단 하루, 아니! 단 한 시간만이라도 ‘고3과 이단’, ‘캠퍼스와 이단’ 등의 주제로 말씀을 나누고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올 한해 코로나로 지친 아이들에게 이단 문제까지 겪게 해서야 쓰겠나 싶다.

3. 교육열은 높으나 반대로 교육 제도는 형편없는 대한민국이라는 땅에서 아름다운 청춘의 때에 도서관과 학교, 학원을 맴돌며, 죽어라 공부하다가 이제 겨우겨우 대학에 들어갔는데 아무것도 아닌 이단의 포교, 내지는 그들의 홍보 포스터 한 장으로 인해 미혹되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안타깝다못해 절망적이다. 좋은 학교에 입학하고, 또한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이 감사한 일이긴 하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영혼과 관련된 문제라고 믿는다. 제자들과 자녀들을 사랑하는 만큼 앞으로 오랫동안 그들과 얽혀가게 될 이단 문제에도 분명한 관심을 두길 바란다.

직업선택을 위한 십계명 거창고등학교


‘거창고등학교 십계명’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모 언론을 통해서다. 아래의 내용이 누군가에게는 감동을 선사했겠고, 누군가에게는(아마도 일부 부모님들에게는) 제대로 뿔나게 했겠다. 필자는 전자 쪽으로 기울긴 하나 그래도 막상 내 아이의 학교였다면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무튼 신선했다. 어떤 학교에서도 절대로 듣기 힘든 이야기지 싶고.

1.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2.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3.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4.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5.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6.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7. 사회적 존경 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8.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9.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것이면 틀림 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10.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 올해 50주년이 된 ‘현대종교’도 위의 마음으로 고 탁 소장께서 설립하지 않았을까. 이제 ‘현대종교’의 설립 50주년이 지나고, 내년은 월간 「현대종교」의 50주년이 된다(어쩌다 보니 2년 동안 기념의 시간을 갖게 됐다.^^). 그간 이곳을 스쳐 간 본지의 직원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독자 제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위의 내용과 크게 변하지 않을 공동체이겠지만 어쩌랴! 이곳은 대기업 ‘현대’가 아닌, 그냥 ‘현대종교’인 것을.

인터콥과 코로나

한 번도 예상이 비껴가질 않는다. 이번에도 인터콥답다. 교계 일이건 세상일이건 이들이 관련됐다 하면 이슈가 됨도 물론이다. 지난 10월 13일 인터콥은 경북 상주 인터콥 열방센터(연수원)에서 선교 행사를 진행했다. 이 기간은 아직 코로나19 방역 조치인 사회적 거리 두기 2단계 기간이었고, 추석 특별방역까지 전국적으로 적용돼 비수도권 지역은 실내 50인 이상, 실외 100인 이상의 집합 · 모임 · 행사에 대해 집합금지 조치가 적용된 시기였다.

중요한 것은 모임에 500명이 모였든, 3000명이 모였든 간에, 또는 경찰의 발표처럼 617명의 명단을 확보했든 간에 간단한 인원 문제조차 공격적 전도 전략으로 한국교회에 피해를 주고, 불투명하고 거짓말로 일관한 인터콥이 이번 행보에도 변명에 변명을 거듭하고 있다. 올 초 신천지의 망령이 떠올려지는 것이 본지뿐일까. 많이 늦긴 했으나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밝혀야 할 것을 밝히는 게 그나마 교회들 욕을 덜 먹게 하는 선택이지 싶은데 그들에게 이 같은 일들이 왜 어려운지를 도통 모르겠다.

더는 언급하고 싶진 않으나 굳이 한 번 더 인원 문제를 따져보자면 (인터콥의 주요 문제들은 내년에 계속 다룰 예정이다) 경북지방경찰청장이 이번 국정감사에서 인터콥 집회 관련 617명의 명단을 확보했고, 실제 참여 인원은 그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말한 것과 경찰 역시 600명보다는 훨씬 많다고 했던 것을 따져보면 중요한 것이 더는 인원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이다(모 언론에서는 당시 집회 참석 예정 인원이 2500명이었던 것으로 파악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인터콥은 2500명은 참석 예정자 명단일 뿐 정확한 참석 인원은 아니라고만 대응했다. 아울러 “평소 4000여 명을 수용하던 공간에 500여 명이 모였으니 불법이 아니라고 봤다”는 최바울씨의 이야기와 대처는 답답함을 넘어 인터콥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에게까지 분노의 마음을 갖게 했다.

한 번 속 시원하게 그들의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인정한다 해도 실행이 안 되는) 그동안 거짓말과 정직하지 못한 처사들로 문제만 크게 확대하곤 했던 이들에게는 이제 정말 학습효과를 기대하기가 어려운 것인지. 정확한 숫자만 밝혔더라면 벌써 정리되고, 쉽게 넘어갈 수 있었던 사건이었는데 이번에도 여지없이 한국교계 전체에 먹칠을 한 결과가 초래되었다.

마지막 인사

만남과 헤어짐이 거듭될수록 처음에는 (첫)만남을 중요히 여기곤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만남도 중요하나 제대로, 헤어지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울러 만나야 했는데 만나지 못한 사람들은 아쉽고,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을 만난 일들은 떠나보낸 이들의 잘못이 아니긴하나 후회로 남는다.

이글을 쓰게 된 이유는 모 아나운서의 경험을 보고 동의와 공감이 커서인데 26년 동안 수많은 이들을 맞고 떠나보냈음에도 이제야 정리가 된 이유도 있어서다. 그의 글에는 우리가 마지막 만남을 첫 만남만큼 신경 쓰지 못하는 이유가 우선 떠나는 자의 경우, 퇴사하거나 부서를 이동할 때, 새로운 시작에 에너지를 쏟느라 혹은 마음이 들떠서 마무리를 소홀히 하게 된다는 것이다.

머물던 곳에서 좋지 않았던 기억을 소심하게 복수하거나 두 번 다시 보지 않으리란 생각으로 무심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남는 사람으로서 더는 이해관계가 있지 않을 때의 모습을 ‘그 사람의 민낯’이라고 말했다. 이어 떠나는 자와 남은 자의 모습에 관해서도 소개했다.

떠나는 자들은 언제 어디에서 다시 만날지 모를 관계의 고리를 되새기며 마무리에 더욱 정성을 쏟고, 감사 인사를 전하되, 들뜬 마음을 여과 없이 드러내면 분위기를 흐릴 수 있으니 주의하자고 말한다. 남는 자들은 함께한 시간을 되새기고 ‘서로 고마웠다’ 같은 표현을 아끼지 않은 경우에 이별의 순간이 더없이 아름다울 것이고, 동료애 또한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무리에 거창한 준비는 필요 없다. 말 한마디면 된다.

‘고마웠다’ 내지는 ‘고생 많았다’라는 말 한마디 말이다. 첫인사를 잊지 않듯 마지막 인사를 잊지 않는 것이다. 그동안 이곳에 머물고, 아울러 떠나간 수백 명은 족히 될 이들과의 첫 만남과 마지막 만남은 어떠했는지 기억나는 일들만 떠올려보다가 이내 후회 때문에 더는 생각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앞으로 살아가야 할 시간이 좀더 남아있어 다행이고, 연약하고 부족한 인간임을 느낄 수 있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으나 이러한 이치를 깨닫는데 50년이나 걸렸으니 황망함이 크다.

이렇듯 늘 한해의 마지막 때가 되면 후회가 밀려오곤 한다. 후회는 앞으로도 계속되겠으나 마지막 때 만큼은 정중하게 사양하고 싶다. 올해의 끝자락에 우리의 글과 말이 회복과 치유로 가는 길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소망하며, 어려움 속에서도 모든 것을 가능케 했던 하나님께는 영광을, 독자와 회원들에게는 감사의 맘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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