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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우리들
현대종교 | 탁지원 소장 takjiwon@hdjongkyo.co.kr
2022년 02월 04일 08시 58분 입력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시 1편 1절)

우리들


늘 정직하고 건강한 삶을 살려고 노력해왔으나 동시에 부족하고 부끄러운 일이 많았던 삶이었다. 그런데 살다 보니 나와는 상관없는 부끄러움이 내 몫이 되는 일도 있다. 예전부터 꼭 한 번 나눴으면 했던 이야기인데, 어쩌면 매우 중요한, 내지는 별 것 아닌 것일 수도 있겠지만 편케 공감해줬으면 한다(내지는 반박하는 이들이 더 많다면 멋쩍긴 해도 마음만은 행복할 것 같다). 정통에 속해 있다고 믿는 우리들의 신앙생활, 마음가짐과 태도에 관해서다.

 

섬기는 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평소 맨 위층에서 예배를 드리곤 하는데 어느 날 집사 둘이 자리해있었다. 유니폼도 입고 있었기에 안내차 미리 와 있던 것으로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그들은 즐겁게 스마트폰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간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에 나름 충격이었다.

예배 전이라도 문제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예배 때에도 계속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보며 분노가 치밀었더랬다. 아무것도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닌,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일 수도 있겠으나 그때는, 그리고 지금까지도 쉽게 충격이 가시질 않는다. 예배 때에 주변을 돌아보는 습관의 시발점은 그때부터였지 않나 싶다.

아울러 상당수의 교회에서 겪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는데 예배 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문제는 아무래도 적지 않은 성도들의 상습적 문제일 테니 이번엔 생략하는 것이 낫겠다(청소년부 같은 경우는 생각보다 더 심각한데 심지어 축도 직전에 들어오는 아이들도 자주 목격하곤 한다. 오! 이런!). 아울러 전날 밤 영화와 드라마로 밤을 새웠는지, 또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예배당에서 졸거나 잠을 청하는 이들도 많다.

특히나 최근에 분노 게이지가 상승하고 있는 이유는 스마트폰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이들을 보면서다(이런 경우에는 예배를 ‘보는’, 내지는 ‘참여하는’ 등의 어떠한 표현도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순간 깨닫는다. 그간 비대면 예배에 익숙해진 터라 현장 예배를 드리면서까지 스마트폰으로도 비대면 예배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꼰대처럼 비쳐질진 모르겠으나 실망을 넘어 절망이 정점에 이르고 있다.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같으니 문제 제기를 받아도 할 말은 없겠지만 그 같은 습관이 생긴 것이 위의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오래전 일이다. 강의 일정이 잡혔던 교회에 일찍 도착해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게 됐다. 마음 평안해지는 아침의 거룩한 예배였고, 게다가 근사한 찬양대와 너무나 멋진 음색의 솔리스트 덕분에 은혜가 컸다. 그러나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찬양대의 위치가 청중들과 서로를 바라보는 곳에 있었기에 그날 은혜를 더해준 솔리스트도 가까이에 있었는데 믿기지 않았던 것은 찬양이 끝난 후, 축도 전까지 한 번도 잠에서 깨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은혜는 나락으로 떨어졌고, 그날의 강의도 허무하게 끝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때부터였지 않나 싶다.

글을 보며 ‘너나 잘하세요!’라고 한다면 할 말 없는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지만 적어도 예배 때만은 그리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니겠는가(양심의 가책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 몇 가지 고하자면 지난해 비대면 예배에 참여하며 앞의 이들과 다르지 않았던 적 많았으며, 영화 마니아로서 영화상영 시간에 5분만 늦어도 영화 관람을 포기할 만큼 시간에 민감하면서도 예배 시간은 그만큼 절대적이지 못했던 적이 있다).

허나 위의 이야기들은 모두 제쳐두고, 형식도 때로는 중요한 것일 수 있겠으나 살면서 본질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삶과 중심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애써야 하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문제는 본질을 말하기 전에 형식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다면 그것이 가능할까 싶은 부분이다. 형식이든 본질이든 간에 차 한 잔 마시며 편하게 나눌 이야기를 공적인 지면에 담은 무례는 용서하되 위의 사례들처럼 안타깝게 여겼던 것들은 함께 헤아려줬으면 한다.

그들

이단에 속한 이들도 우리와 같을까? 아니면 조금 다른 부분이 있을까? 그들의 삶과 신앙은 또 어떨까? 굳이 본질의 문제까지 다룰 필요는 없을 것 같고, 그저 이 지면엔 겉모습에 대해서만 나눠도 충분히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가짜에 속한 이들은 진짜같이 살고, 진짜에 속한 이들은 가짜같이 사는 이 시대에 진리가 진리 되어 살자’라는 이야기처럼 단순히 ‘진짜와 가짜’로만 나눠 문제를 풀고 싶어서가 아닌, 생각과 고민의 지점이 때로는 다른 방향으로부터 시작됨도 필요해서다.

지금의 살던 곳으로 이사 오기 전, 신천지의 지파 중 한 곳 근처에 살았더랬다. 긴장의 끈을 놓쳐서는 안 되는 매우 가까운 거리였고, 날마다 신천지 신자들을 마주치곤 했다. 특이했던 경험은 그들이 이단의 신자임을 잊은 적이 있었는데 어떤 일, 무슨 일이든지 간에 열심과 열정이 넘쳤던 모습 때문이었다.

그리고 불경스러우나 우리들과 자주 비교했던 못된(?) 습관이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다수의 사람들이 저녁마다 그들의 모임 내지는 예배에 늦지 않기 위해 주변 역에서부터 신천지가 있는 건물까지 전속력으로 질주하곤 했는데 그들이 신천지 신자들이라는 것은 뒤늦게야 알았다. 모임에 1분 1초라도 늦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뛰어가는 모습, 밤늦게까지 최선을 다해 말씀 공부를 하는 모습을 보며 ‘진짜와 가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하나님께서 이처럼 이단의 열심을 통해 우리에게 무언가 도전을 주고자 했다기보다는 작금에 진짜가 진짜처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너무나 보고 싶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다음 새해에는 우리의 소망만 드러내지 말고, 그분의 소망을 우리가 이루고자 노력해보는 것은 어떨까.

딜레마

코로나가 3년 차까지 갈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 못했다. 당연히 작년 말 내지는 올해에는 강의 사역이 회복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이번 겨울 강의 사역도 계절마냥 꽁꽁 얼어붙어 있다. 그나마 온라인으로라도 수련회를 이어가겠다고 하는 몇 교회들이 있어 위로가 된다.

악화가 지속되니 이젠 본지보다 다음 세대의 수련회를 통한 도전과 감동이 다 잊히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크다. 어떤 일이든 먼저 회복되는 것이 마중물 되었으면 하며, 그로 인해 모든 사역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예전처럼 잘 돌아갈 수 있길 바란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건강의 문제로 강의 사역이 부담스러웠던 적도 있었는데 그 같은 생각이 얼마나 사치였는지를 깨닫고 있다. 이젠 어떠한 상황과 조건에서도 감사한 맘으로 버티고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코로나가 준 선물이지 싶다.

차제에 (팬데믹으로 인한) 본지 앞날의 막막함에 따른 후원 등의 요청에 있어 집회 등에서의 결례나 무례함이 있었다면 용서를 구한다. 단체의 살림을 책임지는 경영자이기도 하니 강의보다 강의 말미에 구차하고 스스로 당당하기보다는 무안한, 그러나 결코 빠뜨릴 수 없는 후원 등의 이야기를 전해온 것이 30년째다. 예나 지금이나 어쩌면 소송보다 더 어렵기만 한 일이지 싶다.

상대방에게 편케 말하고 요청하면 소용없다는 것을 다년간 습득한 바, 좀 더 간절한 마음으로 후원이나 책에 대해 어느 정도는 오버해야지만 답을 주실 때가 많아 간증과 광고도 그에 맞춰져 진화(?)했음을 고백한다. 말끔하게 강의만 하고 박수받으며 퇴장하고 싶은 맘이 왜 없겠는가?

강박은 또 다른 강박을 낳아 혼란함 속에 강의가 매끄럽게 끝나지 못해 후회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자격지심으로 인한 피폐함과 반드시 꾸려가야 할 사무실 경영의 딜레마는 이 사역이 끝나기 전까진 어렵지 않을까 싶다. 당분간 정해진 답을 안고 앞으로도 더 많은 죄송한 일을 벌여야 할 테니 이 역시 미리 용서를 구한다.

그러나 거룩한 부담감과 빚진 마음으로 올 한해 더욱 건강하게, 그리고 이단 앞에서만큼은 당당하게 맞서갈 것이다. 2022년에도 후원과 독자를 포기하지 않으신 분들과 더불어 본지를 위해 무시로 기도하고 응원하는 분들에게 직원들을 대표해서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한다. 어색하고 멋쩍은 논리이긴 하나 한 마디 더 덧붙이자면 본지가 살아야 한국교회를 지켜갈 수 있고, 이단과의 싸움에서도 근사하게 승리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그렇다고 코로나의 상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여태껏 아프리카에 가본 적이 없었는데 코로나 정국에 최근 아프리카 선교사들을 대상으로 줌으로나마 강의를 할 수 있는 쉽지 않은 기회가 주어졌다. 아프리카에까지 만연한 한국의 이단 문제에 대한 대처의 고민과 더불어 귀한 은혜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땅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열방을 향한 관심과 기도를 부탁드리며, 지난 호에서도 언급했듯이 본지는 앞으로도 받는 데에만 익숙해지지 않고, 본지가 필요한 모든 곳에 부족하나마 물질과 자료로 함께하고자 한다. 더불어 이번 호 특집으로 꾸려진 이단 2세들의 탈퇴와 회복, 그리고 자유를 위해서도 좀 더 힘을 모으고자 한다.

맨 위의 말씀은 하루를 말씀으로 시작할 수 있도록 수년 동안 함께해주고 있는 방송인 정애리 권사가 새해 초에 보내온 것이다. 익히 알고 있는 말씀이 매일매일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적용된다. 어려운 때이긴 하나 부디 올해는 의롭고 복된 이들이 더 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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