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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2022, 10500일의 기록 - 사이 -
현대종교 | 탁지원 소장 takjiwon@hdjongkyo.co.kr
2022년 11월 04일 08시 25분 입력

29년 만에 처음으로 이름 석 자가 담긴 책을 펴냈다. 이 지면을 통해 매달 써왔던 칼럼을 정리해서 제작한 책의 제목은 집회현장에서 가장 많이 들어 온 ‘탁 소장님! 여기가 이단인가요?’로 정했다. 늘 지면의 첫 부분을 오늘만큼은 인사로 대신하고자 한다. 그동안 부족했던 닛시칼럼을 사랑해주시고, 매달 기다려준 독자 제현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응원과 악플 사이

상충 되는 이야기 둘,


‘항상 수고가 많고, 현대종교에 빚진 맘이 크다. 어려서부터 고 탁명환 소장님을 존경했으며, 그분에게 들었던 강의를 잊지 못한다. 그렇게 현대종교를 기억하고 있다. 계속 기도하겠다’ 등의 응원 메시지와 또 하나는 ‘현대종교는 돈 주면 이단이 아니고, 돈 안 주면 이단으로 비판한다’, ‘탁 소장이 소천하기 전에 우리 단체에 와서 무릎 꿇고 사과했다’ 따위의 비판이 아닌 무작위적인 비난에 가까운 이야기들이다.

앞의 이야기들은 늘 그렇듯 감사한 힘이 됨은 물론 사역의 원동력이다. 그러나 다른 한쪽의 이야기는 독자들께서 알고, 또 믿고 있는 것처럼 사실무근의 것들이다. 최근 피복음교회 신도의 본지 직원 폭행 사건의 준비서면에까지 재판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것을 보며 아무런 여과 없이 퍼져있는 소문들을 잠재우는 일이야말로 끝이 없겠구나 싶었다.

허나 우리가 가야할 길을 묵묵히 가다 보면 언젠간 진실의 끝에 다다르게 될 것이라 믿는다. 얼마 전 영생교 간부의 선친 음해에 따른 법적인 문제 제기도 그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간 사역을 하면서 물질의 필요가 너무도 간절한 적 많았으나, 그것이 우선순위가 되었던 적은 없었다고(앞으로도 없을 거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아울러 그러한 마음이 본지의 삶에 깊게 스며들게 된다면 이 일을 놓는 것이 사역이라는 미명 아래 연명하는 것보단 나을 거라는 생각도 변함없다. 본지에 몸담은 지 10500일의 시간이 지나고 있다. 조금만 더 하나님과 독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 살며 여전히 박수칠 때(받지 못해도 상관없다.) 떠날 채비를 하련다.

패러디에 따른 풍자와 희화화 사이

남의 결점을 다른 것에 빗대어 비웃으면서 폭로하고 공격하는 ‘풍자’, 그리고 어떤 인물의 외모나 성격, 또는 사건이 의도적으로 우스꽝스럽게 묘사되거나, 또는 그렇게 만든다는 뜻의 ‘희화화’에 대해 방송인 이경규는 ‘풍자는 괜찮고, 희화화는 안 된다? 물론 이 두 가지는 한 끗 차이다. 그 차이는 진정성의 있고 없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더랬다. 웃자고 만든 패러디가 누구에게는 풍자로, 누군가에게는 희화화가 될 수 있는 그 경계선과 적정선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근에 있었던 대통령 풍자 사건, 그리고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한국교회나 성직자들을 희화화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같아 보이나 어쩌면 다른 두 단어에 주목하게 됐다. 예상했던 대로 풍자는 진정성도 있어야 하는 것이기에 지금의 대통령도 당선된 직후 얼마든지 풍자는 괜찮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한 고등학생의 대통령 풍자 관련 작품(만화)을 두고 정치권의 찌질한 다툼에 왜 부끄러움은 내 몫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시대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꼰대들과 함께 묶여 판단 받는 일은 이젠 사양하고 싶다.

그런데 풍자와는 다르게 희화화는 조금 다른 영역인듯하다(하여 그간 몇 번 지면을 통해서 이 문제에 대해 논한 바 있다.). 최근 드라마나 영화에서 도드라지고 있는 희화화의 것들은 풍자로 볼 수도 없고, 그 경계도 모호하기에 종교적 마찰로까지 이어지는 것들이 있다. 의미의 지점 자체가 달라서 그러지 않았나 싶다.

예전에도 가끔 그 같은 일이 있었으나 최근 다시 불이 지펴지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극의 인물 중 목회자에 대한 희화화된 모습 때문이다. 이어 최근 방영된 <수리남>이라는 작품을 통해 더욱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아예 주인공을 거대 마약상이지만 무리하게 목사와 선교사로 설정해서다. 흥행에는 성공했으나 기독교인들의 불평과 불만은 계속 늘고 있다.

한국교회 언론회는 성명서 식의 논평을 통해 공식적으로 이 작품을 비판했다. 드라마가 남미 수리남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한 작품인데 그 내용에 있어 등장인물을 목사로 표현했으나 돈이라면 마약 밀매, 살인 등 온갖 범죄를 저지르는 캐릭터로 사용하는 등 반기독교적 정서를 물씬 담고 있다며, 이는 명백한 반 기독교 행위로 크게 비난받아야 마땅하다는 등의 강력한 항의를 담았다.

이러한 일들을 지켜볼 때마다 믿는 이로써 부끄럽고 황망하기도 하나 어찌 보면 그 원인이 우리에게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한국교회의 역할과 삶을 들여다봤을 때 그 정도로 끝난 것만 해도 다행이지 않나 싶을 정도로 안타까운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아서다.

한국교회가 그간 건강한 섬김과 나눔, 또 세상에서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해왔다면 그 같은 일들이 벌어지지 않았거나 벌어졌다 해도 이렇게까지 파급력이 크진 않았을 것이다(늘 말하는 바이지만 우리 교회 중에는 세상 누구보다도 열심이고 최선을 다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자 애쓰는 교회들이 많다. 그러나 건강한 교회만큼 못되고 못난 교회들도 많아 한국교회 전체가 도매급으로 욕먹는 것이 속상해서 전하는 비난 아닌 비판임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또한, 이번 풍자만화 사건이 그렇게 세상 떠들썩할 일이 아니었음에도 호들갑 떠는 정치인들을 보며 이젠 표현의 자유가 좀 더 중시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며, 모 영화의 대사처럼 “너희 일들이나 잘하세요!”라고 말하고 싶다.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작품의 자유로운 활동을 견제하기보다는 여유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마음이 나뉘고 퍼지게 될 때, 팬데믹으로 어렵고 무거워져만 가는 세상에 웃음과 여유를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마찬가지로 종교의 희화화나 풍자에서도 분명히 나쁜 의도가 숨겨져 있다면 경계할 필요가 있겠으나 우리 스스로 뒤돌아봐야 할 것들을 돌아보고 자정하며, 건강한 신앙생활을 감당하기 위한 동기부여로 삼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겠다. 정말 민감해야 할 것은 세상 사람들이 우리에게 내뱉는 이야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과 신앙을 건강하게 잘 감당하고자 노력하는 것이어야 하리라. 같은 상황의 반복이 생각도 반복되게 하나 답은 늘 한결같아 그나마 다행이지 싶다.

* 글을 끝내려 하니 맘에 불편함이 조금 남아 있어 이유가 뭘까를 생각해봤다. 아마도 그간 해외 선교사(목사)들을 적지 않게 만나온 바, 대부분 선교사는 치열하게 그곳의 영혼들과 이민자들을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섬기며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적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적어도 형편없이 살지 않은 이들이 세상 작품에서 안타깝게 소비되는 일들이 너무 많이 늘진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굳이 숨기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다뤄진 문제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겠으나 적어도 풍자와 희화화의 대상에 있어 최소한의 건전한 목적과 진정성을 안고 다뤄질 수 있길 바란다.

이단과 정통 사이(2022 총회)


다른 해에 비해 이번 교단 총회들의 이단 결의 등은 크게 줄었다. 이단 내지는 문제성 단체가 줄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꼭 연구되어야 할 교회나 단체에 관한 문제 제기나 관심이 부족했던 탓인지 잘은 모르겠으나 둘 중 하나는 분명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예장합신 측의 ‘인터콥’과 ‘사랑하는교회’에 대한 이단 규정이 더 눈에 띄었다. ‘사랑하는교회’는 이미 이단으로 규정한 교단이 몇 있기에 그리 놀랄 일은 아니지만 ‘인터콥’의 이단 규정은 역시 ‘합신’이구나 싶었다.

관련해서 두 가지 생각이 든다. 첫째는 오랜 시간 문제 많고 탈 많았던 ‘인터콥’의 ‘예의 주시, 참여 금지’를 넘어선 결과가 다행이나 늦은 감이 없지 않다는 것과 더불어 예장합신 측 단독으로가 아닌 여러 교단이 함께 고민하고 기도하며, 연구와 결론을 담아냈으면 더 좋지 않았겠는가 하는 아쉬움과 염려이다. 한 교단에서만 이단 규정이 되었을 시, 이것을 각 교단이 공론화하고 나누는 데에 있어 아직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무튼 인터콥이 한국교회의 지도를 순종하는 마음으로 잘 받아들이고, 함께 선교의 문제와 한계 등을 치열하게 고민했다면 다시금 진일보할 수 있는 더 넓은 선교의 발판이 마련됐을 것이다. 아울러 선교의 시너지도 컸을 것이고. 어떤 속내인지 도통 알 길 없는 이 단체는 여태껏 한국교회와의 약속과 번복을 반복하기를 여러 번, 결국 이제 더는 건널 수 없는 강으로 멀어지고 말았다.

이렇듯 정통과 이단의 차이는 어쩌면 순종과 교만의 차이 마냥, 종이 한 장 차이일 수도 있겠다. 그 차이가 극과 극인 것 같으나 어쩌면 그리 크게 벌어져 있지 않은. 그래서 늘 답은 하나이지 싶다. 아차 하는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기에 항상 정신 똑바로 차리고 말씀에 붙들리어 살아가는 삶이 필요하리라. 물론 쉽지 않은 일이겠으나 부디 사는 동안 여러 ‘사이’들에서 생각과는 반대의 방향으로 기울지 않도록 모두의 건투와 승리를 빈다.

* 지난해 총회 때 교단마다 심각한 문제 제기의 당사자인 전광훈 목사(사랑제일교회)에 관해서는 ‘집회참석 금지 권면’이라는 예장통합 측의 결의 한 곳밖에는 없었다. 이 역시 작년의 문제 제기들을 잊은 건지,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는가, 하는 안일한 사고에 따른 의지의 부재인지, 항상 총회 때마다 시원스럽게 정리된 적 없는 결론들이 이번 총회를 비롯해 늘 옥에 티인 것이 아쉽다.

신간 서적의 ‘묻고 답하며 땀 흘려온 10500일의 기록’이라는 부제를 정하고 나서 얼마나 더 이 사역을 하게 될까 생각해봤다. 그러나 부질없는 생각, 그저 하나님께서 명하는 대로 남은 시간 더 열심히 땀 흘리고 답하며 제대로 된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것이 그 물음에 대한 답이기 때문이다.

 

▲탁지원 소장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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