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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이 오면
현대종교 | 탁지원 소장 takjiwon@hdjongkyo.co.kr
2023년 02월 03일 09시 20분 입력

‘우리가 기도할 때에 주님이 일하십니다.’ 매일 보내오는 친척의 문자 끝자락에 변함없이 담겨있는 시그니처쯤 되는 말씀이다. 한숨 대신 더욱 기도로 힘을 모을 수 있는 2023년이 되길 바란다.

스물아홉 번째 이월


독자 제현들은 1년 열두 달 중에 어느 달을 가장 기다리곤 하는지? 어떤 달이 다가올 때 당신만의 안타까웠던 사건과 사고, 내지는 기쁘고 감사했던 시간이 떠오르는지 갑작스레 궁금해졌다. 아마도 매달 각자가 느끼는 생각과 마음은 모두 다르지 싶다.

그래도 공통적인 것이 있다면 년 초에는 설날이 있기에 가족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기쁨 가득한 달이 될 것이고, 4월이라면 믿는 이들에게는 부활절의 감사로, 장애인의 날에는 그 의미를 여러 갈래로 생각해 볼 것이며, 세월호 유족들에게는 9년 전의 참사로 인한 아픔이 배가 되는 눈물과 아픔의 때를 어렵게 살아내고, 또한 버텨내지 않을까 싶다. 6월 호국의 달에는 전쟁 세대라면 마음속 깊이 절절함을 안고 지낼 것이며, 12월이 다가오면 기독인들을 포함해 대부분이 성탄의 기쁨 속에 들뜬 한 달을 보내게 될 것이다. 각자의 생일이 있는 달이라면 더욱 그러할 테고.

누군가 필자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아마도 성탄도, 생일도 아닌 2월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학교들의 졸업식 빼고는 그다지 특별함이 없는 2월이지만 오랜 시간 가장 의미가 깊은 날이라는 것을 이제 독자들께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선친이 떠난 지 햇수로 30년, 아울러 29주기가 되는 올 2월을 포함해 해마다 2월이 다가오면 어떤 때는 애타게 기다리기도 하다가 때로는 그냥 빠르게 지나갔으면 하는 등 만감이 교차하곤 했다.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왜 이토록 기억에서 지워지질 않는지, 살아남은 자의 아픔이라는 것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도통 잘 모르겠다. 그의 죽음이 여태껏 억울해서인가? 가해자들은 잘 먹고, 잘들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만 아파서일까? 선친은 평생 오직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살았건만 선친의 한계(라고 말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으나) 몇 가지를 수십 년간 우려먹는 황규학 같은 이단 옹호자들 때문에 그런 건지 정리가 제대로 되질 않는다.

최근 넷플릭스 <더 글로리> 류의 복수를 꿈꾸는 이들의 이야기를 보면서는 복수를, 화해와 용서의 내용을 담은 영화라도 볼라치면 살해 진범들의 양심선언을 기대하며, 당시에 먼저 붙잡힌 이를 용서하길 잘했다는 생각과 더불어 종국에는 하만과 모르드개의 말씀처럼 될 것이라고 믿는 등 하루에도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이렇게 답을 찾지 못할 때면 차라리 아픈 2월이 빨리 지나고 잠시라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봄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여태껏 가족 모임 때와 집회 때의 간증을 통해서는 하나님 나라에서 다시 만날 소망을 말했으나 그에 반하는 삶이 오랜 시간 지속되고 있다. 아울러 이따금 가족들을 먼저 떠나보낸 이들을 만날 때면 간절한 맘으로 위로한다고는 하나 스스로 그렇게 살질 못하는데 그것이 위로가 맞는 건가 싶다. 일반적인 신앙의 삶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가 사역자라고 앞에 서 있는 것이 그래서 늘 못마땅하고 부끄러웠다.

그러나 29번째 2월을 보내며 한 가지 약속할 수 있는 것은 30주기가 되는 내년까지만 부끄러웠으면 하며, 이후 필자와 본지의 행보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이단과의 싸움에서는 좀 더 당차게, 그리고 피해자들의 섬김에 있어서는 더욱 애타는 마음으로 지금보다 더욱 잘 풀어가고자 다짐 위에 다짐을 더해본다. 아울러 복수도, 용서도 조금 수준 높게 하나님의 방법들로 이뤄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변함없이 조금씩 성장하고 성숙하게 될 현대종교와 필자를 여전히 지지하고 응원해주길 바란다. 반드시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해가 서른 번이나 바뀌었건만


사역 30년 차가 됐다. 그간 꾹 참아왔고 고사했던 고생했고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를 누군가에게, 모르는 이에게라도 꼭 받고 싶다. 그 한마디 말이면 충분할 것 같아서다. 그 같은 위로와 격려들을 통해 올해도 잘 버티고, 앞의 글처럼 그렇게 내년의 2월을 맞이하고 싶다.

누군가 말했다. 어린 시절 예수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온몸으로 그를 받아들였으나 청년이 되고, 그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예수를 따라 사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오로지 남을 섬기다가 쓸쓸히 떠나가기엔 내 속에 내가 너무 많다는 고백은 이 시대에 많은 이들의 고백이 되고 있다.

그처럼 현대종교와 이단에 대해서도 처음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는 정말이지 무서운 것이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사역을 이어가면서 조금씩 보게 되고 알게 되는 것들로 인해 이 일이 얼마나 무섭고 어려운 일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나의 허물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하나의 이유는 이단은 차치하고서라도 가장 정직하고 선해야 할 것들이 가장 추악하고 더러운 면모를 보이는 것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여전히 가짜는 진짜 같은 열심으로 우리를 넘어뜨리려 애쓰고 있지만 혹여 진짜는 가짜같이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여전히 깊다. 그러기에 이단 문제뿐 아니라 한국교회의 건강함과 갱신의 문제에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부딪혔던, 그리고 늘 천천히 예수에게 다가가고자 애썼던 선친이 더 그리운 건지도 모르겠다. 해마다 2월이 오면.

* 선친에 대한 사자 명예훼손 등에 대해 이의신청을 제기했다. 누군가는 애타는 마음으로 떠나간 이를 그리워하나 누군가는 정치적이고 물질에만 눈이 어두워 매일같이 그를 죽이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한들 탁명환 소장은 탁명환 소장이고, 내 아버지는 존경하고 사랑하는 내 아버지인 것을 믿으며, 30주기 2월부터는 좀 더 즐겁고 기쁜 날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

여전히 하루의 시작을 말씀으로 살 수 있도록 수년 동안 함께하고 있는 방송인 정애리 권사의 새해 초에 보내온 말씀 하나 더 소개하고자 한다. 모두에게 같은 은혜와 더불어 단호함 또한 놓지 않는 새해가 되길 소망한다.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갈라디아서 5장 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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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지원 소장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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