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보기 작게보기
페이스북
현대종교 | 탁지원 소장 takjiwon@hdjongkyo.co.kr
2024년 05월 03일 09시 00분 입력

오랜만에 방문한 아내의 고향 교회는 낯설었으나 여전히 따뜻했고, 은퇴를 앞둔 목회자의 설교도 살가웠다. 공동체 문제의 원인이 상대방이 아닌 내 문제 때문임을 깨닫고 인정하게 될 때, 비로소 가족의 일이든 세상일이든 간에 순조롭게 풀어갈 수 있다는 그날의 말씀이 깊게 와닿았다.

작금의 교회 문제와 정치 등에 있어 모든 문제를 상대방 탓으로 돌리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어서이지 싶다.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뀔 때, 작게는 가족 공동체로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반복되는 사건, 사고가 멈춰지는 기적을 보게 될 것이다.

애터미

모 신문에 애터미 박한길 회장의 간증문이 연재됐다. 지인들의 간증이 이따금 소개되어 자주 찾는 코너인데 이번엔 말이 많은 이의 간증이 담긴지라 어떤 이야기를 꺼내 들지 궁금했다. 혹시나 구원파 탈퇴 이후 내, 외면의 솔직한 간증을 전해주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단 관련 부분은 빠진, 알맹이 없는 간증만 담겼기에 기대만큼 실망도 컸다. 논란이 된 문제들에 어쩌면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을 텐데, 민감한 부분이긴 하나 그래도 정공법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애터미는 2014년 예장합신 교단에서 예의주시, 경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었고, 지금도 본지에는 관련 제보와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기에 의구심과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라도 ‘공功’ 외에 ‘죄罪’도 담았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개인적으로 예전 유튜브 등을 통해 밝혔던 애터미에 관한 의견과 문제 제기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단은 아니나 여전히 대표자의 신앙 검증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며, 그가 구원파에서 나오게 된 상황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문의가 가장 많은, 단체 안에서 이뤄지는 성경 공부 등이 신학적으로 올바른지도 반드시 검증이 필요하다. 한국교회와 기독교 단체를 섬기는 그릇이 남다르다고 해서 제대로 된 검증을 놓쳐서는 안 될 일이다. 물론 이단에서 나왔는데 계속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박한길 회장은 일반 탈퇴자가 아니라 교회와 세상에 영향력이 작지 않은 단체의 수장이기 때문이다. 부디 여러 염려와 달리 아무런 문제가 발견되지 않아 더이상 소모전 없이 한국교회와 연합하여 모두에게 유익이 될 사역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테니 공인할 수 있는 단체나 사역자들의 연구와 검증을 먼저 나서서 요구할 수 있길 바란다.

* 애터미 수백만 회원 중에는 기독교인들이 많기에 그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 하나 더 있다. 이단 여부 문제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교회 공동체에도 세상 직업의 귀천이 있어서는 안 되겠으나 다만 세상 것들이 교회 안에 파고들 때 생길 수 있는 공동체의 분열, 또는 성도 간 균열의 문제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점은 명심해야 하며, 속한 단체의 홍보나 매매의 압박 등도 결코 지나쳐서는 안 될 일이다.

댓글부대

커뮤니티 내 다툼과 여론 조작 등이 구체적으로 묘사됐기에 르포인지 소설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온 장강명의 작품, <댓글부대>가 영화로 세상에 선을 보였다. 정치와 종교 문제, 연예계 등에서 자주 회자된 단어로 익숙한 제목이기도 하다. 특히 이단 사역자들은 이단 신도들의 댓글 공격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없기에 제목만으로도 부담스럽고 불편한 이들이 있을 테다.

본지도 예전에는 날마다 전화나 문자 압박이 많았는데 세월이 흘러 이제는 포털 등의 댓글로 항의와 압박의 형태가 바뀌었다. 그래서일까? 영화가 개봉하자마자 자연스레 영화관을 찾았다. 연출은 생각보다 밋밋했으나 그래도 최근 진화하는 댓글 공작을 통한 나름의 (정당성이 아닌) 부당성의 획득이 이해 당사자끼리의 얽히고설킨 전략들로 이어지는 것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것조차 알게 모르게 여전히 진화하고 있던 것이다.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또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과 더불어 오래전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아마도 십수 년도 더 됐지 싶다. 모 이단과 수많은 재판으로 다투었을 때, 나름 그들 조직 운영의 패턴을 보며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선 그들은 조직 내부의 결속을 위해, 더불어 사이비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자원봉사에 신도들을 대거 투입한다.

이후 봉사 활동의 결과물로 지자체 등에서 표창 등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데, 대부분 봉사자와는 달리 표창이나 수상을 먼저 요구, 압박하는 일들이 적지 않았다. 그다음 관련 내용을 언론에 광고나 보도자료 형식으로 게재하거나 내지는 자신들이 만든 온라인 언론들을 통해 무작위적인 홍보 기사를 담아낸다.

일반 언론의 경우에는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가 형성되는데 언론사는 돈이 필요하고, 이단은 언론을 통해 선명성을 부각시켜야 하니 이렇게 죽이 맞는 관계도 없다(이 방법은 현재에도 여러 이단이 고수하고 있다). 이후 해당 언론에서 발행한 잡지를 포교에 투입하는 것은 물론 나름의 댓글부대를 만들어 자신들의 단체가 한국교회의 판단과는 다르게 건전하고 건강한 단체임을 표출하는데, 화력을 집중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그들과의 소송이 시작되면 앞서 소개한 언론들의 결과물들과 표창 등을 증거물로 제출하는데 이 같은 상황을 잘 모르는 재판부에 자신들의 정당성을 과시하며 재판을 유리하게 이끌어 가게 되는 것이다. 대략 소개한 내용은 오래전의 일이니, 지금은 더 하면 더했지, 덜 하진 않을 것으로 판단한다.

대부분 사람은 급속도로 변해가는 시대의 흐름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허둥대고 당황스러워하나 이단들은 카멜레온처럼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 그러기에 이 같은 여론 조작 등을 파헤치기 위해서라도 영적 전쟁에는 깊은 지혜가 있어야 하며, 정보 등의 공유 또한 요구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바라며, ‘함께, 더불어’의 사역이 되어야 함도 물론이다.

이러한 문제들에 관심을 두지 못한다면 무관심은 커다란 피해로 이어지고, 그 피해는 자연스레 한국교회에 닿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향후 이단이 득세하고, 무신론자들이 넘쳐날 것이라는 모 단체의 최근 연구 결과와도 맞닿은 부분이다. 이 또한 이단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고, 우리 탓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미 승리하신 싸움이기 때문이다. 다시금 전열을 정비해야 할 때이다.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참사가 일어난 지 10년, 정확히 3650일의 시간이 흘렀다. 수백 명의 꽃다운 아이들이 한꺼번에 숨지거나 실종됐음에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이 없는, 책임까지 침몰한 사회를 우리는 똑똑히 목도했다.

이러한 나라가 온전한 국가이고, 나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시간이 이리 흘렀음에도 사건 해결에 단 한 발짝도 다가서지 못하는 세상이 과연 온당한 세상인가 싶다. 이 땅에서 숨 쉬며 살아간다는 것은 여전히 고달픈 일이다.

국가든, 언론이든 누구든지 간에 내 탓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나타나길 바라나 이 역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할 것임을 잘 알고 있다. 더 아픈 것은 유족 중엔 기독교인이 많았으나 교회의 무관심에 교회를 떠난 이들이 많았으며, 유가족과 국민 다수를 분리해 냈던 언론의 ‘갈라치기 보도’로 인한 상처 또한 작지 않았다.

그러니 그간 아무것도 하지 못하며 살았던 이가 세월호 10주기라고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부끄럽다. 허나 먼저 떠난 이들을 오래도록 잊지 않고, 최소한의 도리가 무엇인지, 고민하며 살겠다는 다짐만은 전하고 싶다.


-Copyrights ⓒ 월간 「현대종교」 허락없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 

 

탁지원 소장
  본지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