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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품으로 돌아왔음에도
현대종교 | 탁지원 소장 takjiwon@hdjongkyo.co.kr
2024년 10월 04일 09시 00분 입력

방탕한 생활로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집으로 돌아온 탕자를 따뜻하게 맞아준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 이단에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이들도 그와 다르진 않을 것이다.

주변에 그러한 이들이 있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섬겨야 함이 당연하지 싶다. 천하보다 귀한 영혼은 누구도 예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가 같은 마음을 품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됐다. 시간이 지나도 회의감과 자괴감이 사그라들질 않는다.


연변(백두산) 간담회

저 산맥은 말도 없이 오천 년을 살았네. 모진 바람을 다 이기고 이 터를 지켜왔네.
저 강물은 말도 없이 오천 년을 흘렀네. 온갖 슬픔을 다 이기고 이 터를 지켜왔네.
(중략)
한라산에 올라서서 백두산을 바라보며 머나먼 고향을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하구나.
백두산에 호랑이야 지금도 살아있느냐?
살아있으면 한 번쯤은 어흥하고 소리쳐 봐라!
(후략)

젊었을 적 자주 불렀던 한돌의 ‘터’란 노래의 가사이다. 애국가도 그렇지만 어렸을 적부터 ‘백두산’이라는 가사가 들어간 노래가 적지 않았고, 때로는 지척에 있는 산 같은 느낌도 들었지만 생각해 보면 현실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사는 동안 단 한 번이라도 가볼 수 있을까 싶은 곳이었다.

그러나 결국 작은 소망이 이뤄졌다. 중국 측의 요청으로 오랜 시간 교제해 온, 중국 연변 사역자의 초청(중간 역할)을 받게 된 것인데 모임 이름이 ‘백두산 간담회’였다.

그동안 연변을 세 번 방문했더랬다. 첫 방문은 25년 전쯤 되었을까? 신림동 동산교회의 선교지 탐방 때 이단 강의로 방문했었고, 두 번째와 이번 모임은 연변에서 종교 문제를 다루는 기관 책임자의 초청으로 이뤄진 간담회였다.

두 번이긴 하나 만날 때마다 한국, 중국 두 나라의 이단 문제에 관해 간절한 마음으로 여러 의견을 나눴던 것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특별한 것은 중국을 방문할 때마다 어느 도시도 예외 없이 성장의 속도가 매우 빠른것을 볼 수 있었는데 연변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이단 역시 그 성장과 맥을 같이 하고 있었다. 첫 방문 때와는 다르게 도시가 여러모로 덩치가 커져서인지 한국과 중국 이단들이 호시탐탐 우는 사자와 같이 넘어뜨릴 자들을 찾고 있었다. 간담회는 그 같은 이유로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여정도 2박 3일 동안 빡빡하게 진행됐다.

둘째 날, 기대하던 백두산 간담회가 시작되었다. 오르는 길이 자동차로도 쉽지 않을 정도로 끝없이 올라가는 길이었는데 천지에 도착하니 도저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경관이 펼쳐졌다.

그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의 초라함이 느껴졌고, 반대로 창조의 놀라운 체험을 만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섭리를 거스르는 이단에 관한 나눔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로 귀결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간담회의 주제는 전능신교가 주를 이뤘고, 최근 한국도 그렇지만 중국 역시 신천지 등 한국 이단보다는 중국 이단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라고 했다. 백두산에서 한, 중 간에 이단 대응과 협력의 문제를 고민하는 귀한 만남이 부디 감사한 결론과 열매로 마무리되길 소망한다.

믿지 않는 이들의 섬김

앞의 글을 보노라면 당연히 중국 측 관계자들이 기독교인일 것 같다는 착각이 들기도 하겠지만 지인인 목사 외에는 당연히 무교이다. 그러나 종교 문제, 특히 이단, 사이비 문제와 피해자 관련해서는 누구보다 염려하고 아파하며, 이단 대처의 노하우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 온 사람들이다.

자료와 정보의 공유를 원하는 모습도 어느 이단 사역자들보다 간절했다. 그간 만나왔던 관계자들과는 달리 상부 보고나 정보 수집에만 목적이 있어 보이진 않고, 진정성 있게 일들을 처리해 나가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다.

특히 중국 쪽 책임자는 한국에 관심이 많아 한국말은 물론이거니와 한국의 역사, 그리고 웬만한 이단들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박식했고, 아울러 겸손했으며, 따뜻했다. 그러기에 통역보다는 어설프지만 한국말로 소통할 수 있었다.

그들과 가장 많이 이야기 나눴던 것은 이단 피해자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중국의 인민들이 이단, 사이비종교의 피해를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한국도 더는 이단으로 인해 어려움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을 나눌 때는 울컥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타국에 와서 종교도 없고 믿음도 없는 세상 사람들을 통해 한국과 중국의 이단 문제에 관해 심각하게, 때로는 살갑게 나누게 되니 만감이 교차했다.

이단 관련 사건이 터질 때만 잠시 연락하는 한국의 담당 공무원들이나 형식적인 대처와 반짝 관심만 있지, 문제의 본질에 대해 한 번 고민해 본 적 없는 다수의 한국 교회 관계자와 비교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다.

믿는 이들이 안아주기를 기대하며


이렇게 한국을 넘어 타지에서조차, 그리고 믿지 않는 이들까지 이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고 아파하며 해결점을 찾고자 애쓰는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단에서 돌아온 이들을 교회에 들이기 버거울 것 같다는 목회자가 적지 않다는 기사를 보고는 화가 치밀지 않을 수 없음을 본지 독자들께서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이단에서 돌아온 이들의 회복과 치유도 크게 보면 또 하나의 전도이고, 선교이기에 그들을 거부하는 것은 전도와 선교를 거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부디 영적 직무유기 짓는 일이 더는 없었으면 하며, 누구든 간에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려 하는 이들이 있다면 어떤 이유로도 그 귀한 영혼들을 우리 마음대로 걸러서는 안 될 것이다. 교인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에 걱정된다는 의견 역시 경각심을 줄 수 있어 좋지 않은가, 의 심정으로 바뀌었으면 한다.

교회에 이단 출신자가 등록하게 되면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모 연구소의 설문에 참여한 교역자들의 절반 가까이가 그들을 받아들이기 어렵거나 잘 모르겠다고 한 결과를 보고 나서 실망을 넘어 절망스러운 마음이 한동안 가슴에 남아 있다.

죽어라 이단과 싸우거나 이단에 빠진 이들을 겨우겨우 설득해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했건만 이리 힘 빠지는 이야기를 듣게 되니 할 말이 없다. 예전 본지의 슬로건 중에 ‘못은 「현대종교」가 뽑을 테니 상처는 한국교회가 치유해 주길 바란다’는 구호가 무색해지는 순간이기도 해서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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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지원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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