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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에서 회복과 승리까지
현대종교 | 탁지원 소장 takjiwon@hdjongkyo.co.kr
2025년 09월 05일 08시 50분 입력

​양평으로 가는 길목에 덕소라는 곳이 있다. 지금은 아파트들로 빼곡하나 예전에는 대부분 지역이 그랬듯 자그마한 동네였더랬다. 그곳을 지날 때면 유독 선친 생각이 많이 난다. 어렸을 적 선친 손에 이끌려 덕소에 갔던 일이 잦아서다. 그리고 그곳에 천부교 신도들이 공동생활을 했던 신앙촌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시간이 좀 지나서였다.

이렇듯 천부교와 얽힌 기억이 남다른 이유는 선친과의 기억이 맞물려서인듯싶다. 그리고 시간이 또 흘러 그들을 법정에서 만나게 됐다. 그간 두 번의 소송이 있었는데 감사하게도 모두 승소해서 다행이나 다른 감사한 이유가 또 있다.


천부교

1907년생인 박태선은 평안북도에서 태어났다. 그는 통일교 문선명과 함께 해방 직후 경기도 파주에 있던 김백문의 이스라엘 수도원을 드나들며 수련했다고 한다. 이후 기성교회인 남대문교회 집사로서 삼각산 기도원을 드나들며 신비체험을 하다가 창동교회로 옮겨서는 장로가 됐다.

전국 각지에서 집회를 인도하던 박태선은 1955년 서울 무학교회 부흥 집회 인도를 필두로 세인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러나 남산 천막 집회에서 기성교회 목사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마귀 새끼라고 몰아세웠고, 이후 자신이 속해 있던 대한예수교장로회를 탈퇴한다고 선언하며, 한국 예수교 부흥협회를 발족했다. 그러자 한국기독교연합회NCC는 그의 이단성과 교리적인 탈선을 규탄했고, 1956년 대한예수교장로회 경기노회는 그를 이단으로 규정했다.

신도들에게 죄를 지적하고 사하며 성령을 물 붓듯이 하는 이긴자의 권능으로 죄 때문에 생긴 병은 안찰을 통하여 자연히 낫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맹물에다가 자신이 “휫”하고 소리쳐 축복한 생수를 신도들에게 판매하기도 했는데, 매월 월말 축복의 날과 중순에는 전국 각지의 수많은 신도들이 플라스틱 통에 물을 들고 와 축복 생수를 받아 가려고 북새통을 이뤘다.

신앙촌은 생산시설을 갖추고 신도들의 노동력을 활용하여 많은 소비재를 생산, 판매하며 막대한 부를 얻었다. 1957년에는 경기도 부천 소사 땅에 15만 평 규모의 제1 신앙촌을 건설했고, 1962년에는 경기도 덕소에 제2 신앙촌, 그리고 1970년에 부산 기장에 제3 신앙촌을 건설했다.

1980년대에 이르러 박태선은 기존의 성경해석을 뒤엎는 일대 변혁을 단행했는데 99%가 죄인인 예수를 증거한 신약은 폐하고, 자기 말이 곧 성경이라면서 자신이 5798세의 하나님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1985년 이후에는 자기 나이가 1조 5000억 세라고 주장하고 교명도 천부교로 바꾸었다.

이때 많은 사람이 이탈하였으며 분파들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박태선은 말년에 폐결핵과 당뇨, 신장병 등 각종 합병증으로 투병하다 1990년 2월 7일 사망했다(현대종교 홈페이지 ‘단체 정보’ 참고).

천부교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이번 본지와의 소송에서 주 다툼 요소가 됐던 ‘섹스 안찰’의 문제이지 싶다. 죄 때문에 생긴 병을 안찰로, 이후 성적인 안찰이 더해져 피해자들이 속출했다. 고 탁 소장은 이 같은 문제들을 풀고자 전방위적으로 애썼다. 그로 인해 피해는 줄어들고, 이단 대처에도 나름의 학습 효과가 생기게 되었다.

이제 천부교 교주도, 선친도 떠났지만 여전히 이러한 불의한 일을 답습하고 있는 이단의 문제로 인해 관련 기사를 게재하게 됐는데 문제를 양산한 이들은 반성과 회개 없이, 도리어 소송을 통해 입막음하고자 한 것에 대해 심히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기에 이들에게 철퇴를 가한 1심 재판부의 판단에 경의를 표하며, 아울러 오래전부터 이단 문제에 앞장서서 대처해 왔던 귀한 선배 사역자들로 인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것에도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천부교나 통일교 등의 이단들이 비록 오래됐고, 또 예전에 비해 교세가 줄긴 했으나 여전히 영향력이 적지 않은 이단임을 잊지 말아야 할 테다. 잘 알다시피 천부교의 영향으로 태동한 이단 중 하나가 신천지이다. 작금의 어떤 이단도 여전히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문제 터지면 이 문제 쫓고, 저 문제 터지면 저 문제 쫓는 식의 이단 대처는 여전히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어떤 이단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기에 본지의 사역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정 이단 하나만 쫓고 연구하는 것이 아닌 모든 이단과 더불어 그들의 활동까지 취재하고 알리고 있으니 버거운 일임에도 감사가 크다.

작금에 가장 활동이 많은 이단과 그 이단들을 태동한 단체, 아울러 앞으로 한국교회와 사회를 어지럽히기 위해 출현할 이단들과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이단 문제까지 경계에 포함하는 것이 온전한 이단 예방이 되리라 본다. 그렇게 누군가는 해야 할 일, 여전히 순종하며 애썼더니 이번 천부교와의 소송에 원고가(단체 포함) 185명이나 됐으나 귀한 승리를 주신 것이리라.

물론 본지가 잘해서가 아니라 여전히 하나님께서 재판장 되어 주셨고, 많은 이들의 기도와 응원 때문임을 잘 알고 있다. 이제 곧 시작될 항소심에도 응원이 더해져 한 번 더 승리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으면 한다.​

눈치

오랜 시간 무명으로 활동했으나 최근 ‘짠내’ 컨셉으로 인기 상승 중인 임우일이라는 개그맨이 있다. 절약의 정도가 지나쳐 짠내 고수라 불리는 임씨는 평소 생활 모습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잔잔한 웃음을 주고 있다.

그런 그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예전과는 다른 여유로운 생활이 자칫 ‘사람이 변했다’는 오해를 받는 것 같아 한 선배에게 고민을 털어놨단다. 선배는 ‘왜 눈치 보며 사냐? 앞으로는 눈치 보지 말고 당당하게 살라!’고 말했다고 한다. 어떤 삶이든 간에 세상 눈치 보며, 구차하게 살지 말고 당당하게 살라는 이야기로 읽힌다.

‘체면 문화’, ‘눈치’ 등은 유교에 기인한 대한민국만의 전유물이지 싶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그것에 자유로울 사람이 있을까 싶다. 종교인들과 사역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잘못해서가 아니라, 또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믿는 사람이 그러면 안 된다’라거나 ‘목사가 왜 그러냐?’라는 말들이, 처한 상황과 상관없이 압박으로 다가오는 경우들이 많기에 본의 아니게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본지도 역시나 이단들이나 이단 옹호자들의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아니면 성도들의 고사리 같은 후원에 따른 본지의 의무 내지는 자격지심 때문인지 잘은 모르겠는, 어려운 숙제가 매일 쏟아지는 것만 같다. 흡사 ‘착한 사람 증후군’을 오랫동안 앓아 온 것처럼 사는 듯싶기도 하고. 본지 구성원들의 삶이 어떻든 간에 그냥 좀 믿어주고 안아주면 좋으련만, 내면과 삶의 모습보다는 보이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평가당하는 일이 없지 않다.

특히 상담이나 전화 통화 때에 오랜 시간 상담을 했음에도 불성실하다거나 직원들이 건방지다며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럼에도 제대로 변명이나 항변하기도 어렵고, 큰 소리 한 번 칠 수도 없다. 본지는 물론이거니와 선친에게까지 비난의 화살이 이어질 수도 있기에 조금이라도 신경 곤두세우지 않도록, 그리고 다투는 일 없도록 조심, 또 조심,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상처가 되기도 한다. 예전에 운동(수영) 중에 만난 누군가가 면전에서 운동조차 사역자의 일탈인 것처럼 말했던 적이 있었다. 그냥 툴툴 털어버릴 수도 있었으나 그 말은 커다란 가시가 되어 여태껏 가슴 속에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이후 밖에서 사람을 만날 때면 나름의 눈치를 보는 습관이 생겼다. 위의 개그맨처럼 약간의 여유도, 그리고 조금의 실수와 거만함도 결코 용납되지 않는 남의 판단이나 평가가 두려워서다.

다른 이의 일로 최근 기억나는 하나는, 제자인 한 이가 제주에서 학교 사역을 하고 있는데 어느 날 그다지 형편이 좋지 않지만 승용차 교체 시기가 다가와 연비도 좋고 값도 싼, 작은 중고차 한 대를 구매했단다. 그런데 그 차가 외제(전기)차였던 것이 문제였나보다.

차를 구매한 날부터 수군거리는 주변의 시선들이 느껴졌다고 한다. 예상대로 목사이자 교사가 외제차를 타고 다닌다는 것 때문이었다. 남의 형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함부로 생각하는 일들로 인해 그렇지 않아도 힘든 제자에게 작지 않은 상처가 된 그 일을 남의 이야기로만 치부하기가 어렵다.

본지를 대표하는 삶을 살아가며 조금만 잘못하거나 실수하면 전체가 넘어지고, 무너질 수도 있기에 아무리 화나는 일이 있어도 참고, 또 참으며 조신하게만 살아온 지난날들의 체증이 이번 칼럼을 쓰며 조금 가라앉는 것 같긴 하나 아직 치유되지 않은 공황장애 등의 아픔이 그 같은 일들로 생긴 것 같아 마음이 그리 편치는 않다. 이단과의 싸움도 버거운데 눈치까지 보며 살아야 하니 고달픈 인생이고, 사역이다.

당당하지 못한 것도 문제이나 무작위적으로 비판하는 것도 문제인 시대를 살면서 이제는 모두에게 가식만 남게 되는 것은 아닌지 염려가 크다. 아울러 이 같은 일들로 인해 우리네들의 가면도 커지고, 아울러 두 얼굴로 살아가는 이들이 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제 좀 당당하고, 편한 마음으로 속병 없이 살기를 바라는, 너무도 당연한 것들이 또 하나의 버킷리스트가 되었다. 부디 결론만큼은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면 하는 심정을 안고, 다시 다람쥐 쳇바퀴의 현장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 앞에 언급했던 개그맨은 이제 어떻게 될까? 선배의 조언 따라 삶에서만큼은 당당한 삶을 살아갈까? 그러나 예상하는 바는 그 반대일 가능성이 크다. 지금 누리는 인기와 삶의 중간에서 혼란스러움이 더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면 멋진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 속단하진 않으련다.

그저 이 지면에서는 그와 나, 그리고 이 같은 생각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 모두에게 ‘부디 남의 눈치 보지 말고 당당하게 삽시다’라는 응원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다음은 각자의 몫일 테니 근사한 소식들이 들려오든 그렇지 않든 간에 후회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진심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여름 강의 사역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몸은 이미 번아웃 되었으나 아플 틈이 없다. 5년 만에 다음 세대 사역이 회복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태껏 수련회를 진행하지 못하거나 수련회를 축소하는 등 교회마다 코로나의 여파가 아직 끝난 것 같진 않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사람의 문제이지 싶다.

예전과 다르게 MZ세대(요즘은 또 알파세대가 생겼다고 하는데 ‘대략난감’이다)라 불리는 아이들과의 만남이 솔직히 어렵다. 때로는 청년들도 마찬가지인데 다음 세대 사역에 올인했다는 장담과 다짐이 무색해지는 것 같아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강의를 잘 들어주는 것 같긴 하나 전혀 반응을 기대할 수가 없는 현장, 아니! 강의를 잘 들어주는 게 아니라 아예 관심조차 없는 게 맞지 싶다.

그저 조용히 자기만의 명상(?) 시간을 갖는 건지 대부분 무표정이어서 알 길이 전혀 없다. 차라리 옛날 수련회처럼 뒷줄에 포진된 눈빛 사나운 반항아(?) 녀석들을 만나거나, 적지 않은 무리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강의가 더 낫지 않았나 싶다. 그때는 아예 차갑거나 더웠긴 해도 미지근하진 않았는데 요즘은 그때와 비교하면 많이 달라진 듯하다. 코로나 때보다 더 위기라고 해야 할까?

최근 강의 도중, 차라리 중도에 멈추는 게 낫겠다 싶은 생각을 몇 번 했더랬다, ‘그래도 강의 사역 30년 차인데 그럴 수는 없지!’하며 강력한 자기최면으로 마음 다독이고, 어떻게든 강의를 마쳤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오랜 강의 사역에 오점이 될 뻔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그렇게 목은 목대로 힘은 힘대로 빠져 돌아가려는 순간, 그래도 아직까진 반전이 다 사라지진 않았나 보다. 아이들 여럿, 내지는 혼자서나마 쭈뼛한 모습으로 앞으로 다가와서는(나름 용기를 크게 냈지 싶다) ‘오늘 강의가 참 좋았다. 고맙다’, 내지는 ‘앞으로 이단에 더 관심을 두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이 순진해서 리액션이 많이 없다. 미안하다’ 등의 인사를 건네며 격려를 해주는데, ‘이건 뭐지!’ 하면서도 한 시간 이상 버거웠던 마음이 눈처럼 녹아내리고 마는 것이 아닌가.

‘그래! 요즘 아이들이 무심한 것처럼 보여도 그렇게 막장의 상황까지는 아니구나! 학교나 학원에서 듣는 것에 지친 아이들에게 교회와 수련장에서까지 듣기와 리액션을 강요하고 생소하기만 한 이단에 관해 이야기하니 당연히 관심 없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비록 반응이 없어도 먼저 안아주고 어떻게든 공감대를 형성하며 다가가는 것이 필요하구나 싶었다.

그간 MZ에 대해 어떤 의도로 부르고 말했는지, 미안하게도 잘은 모르겠으나 아무튼 아이들에게 진심과 진정성 있게 전하고, 다가간다면 아이들도 비록 마음뿐인 것처럼 보여도 제대로 호응하고, 아울러 잘 듣고 행하지 않을까. 육신의 MZ는 있을지언정 영혼은 늘 은혜와 감동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 아직도 난 멀었구나!’ 싶은 미안한 마음과 더불어 감사함이 공존하며 남은 사역에 좀 더 에너지를 쏟아야겠다는 다짐을 다시금 안게 되니 이번 여름도 예전처럼 감사함으로 막을 내리게 될 것 같다. 아울러 앞서 언급한 사람의 문제는 남이 아닌 내 문제일 수 있다는 것도 귀한 깨달음이지 싶다.​

* 그래도 꼭 한 가지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제발이지! 강의 때 고개 한 번 끄덕여 주고, 긍정적인 눈빛 살짝 보여주는 게 쉽진 않더라도 한 번만 노력해 주면 안 되겠나?! 아무것도 아닌, 그저 그 모습만으로도 강사는 부쩍 힘이 나게 될 테니 더도, 덜도 말고 그리 행해 보시길. 아마도 교역자들이나 강사의 놀라운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

선친이 펴낸 책 중 어느 것 하나 땀과 눈물 없이 쓰이지 않은 것이 없다. 작금의 몇몇 이단 사역자들처럼 책상머리에나 앉아 편히 연구나 취재하지 않았고, 아울러 일말의 노력 없이 다른 이들의 연구 결과물들을 멋대로 사용하며 책을 펴내지도 않았다. 이단, 사이비 종교 사건이 터질 때마다 현장으로 달려가 취재와 더불어 대안을 모색했던 그의 삶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천상 언론인이었지 싶고. 그런 그의 책과 글들이 법원조차 문제없다는 판단을 내렸으니 그저 감사한 마음이며, 그의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모든 일이 다 끝난 건 아니다. 이번 소송은 2심으로 이어졌고, 또한 인천주님의교회 등 여러 이단과의 한판 승부도 앞으로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여호와 닛시’의 승리의 깃발이 늘 높이 들려질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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