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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와 책임
현대종교 | 탁지원 소장 takjiwon@hdjongkyo.co.kr
2025년 10월 02일 10시 02분 입력

연대는 위대하다. 그리고 아름답다. 역사의 순간순간마다 권력자와 가진 자의 횡포에 맞서고, 불의한 것들에 대항했던 연대의 힘은 그 어떤 것보다도 강하다. 앞으로도 필요할 때마다 깊고 너른 연대의 손길들이 모여지길 바란다.

재난 참사 피해자의 연대

대선 전, 4·16연대 및 10·29 이태원참사유가족 등 재난 참사 피해자들이 대통령 선거 후보들을 향해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촉구했더랬다. 당시 재난참사피해자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들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어떻게 지킬지 답해야 한다”며, “적어도 우리 사회가 ‘생명과 안전’을 시민의 권리로 여기고 이를 지키지 못하는 정부는 정부의 존재 의미가 없다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오랜 시간 그 당연한 것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국가와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여전히 불행한 일이다. 제2, 제3의 동일한 사건과 사고가 언제까지 반복돼야 이러한 일들이 멈춰질지, 대체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가족과 생이별해야 하는 숨 막히는 고통이 언제까지 되풀이되어야 하는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사건 즉시 수면 위에 드러나는 사건도 있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땅에 묻혀버려 도저히 알 길 없는 사건이 늘고 있기에 심히 유감스럽다. 물론 드러났다고 해서 문제의 해결에 다다르는 것은 아닐 테나 중요한 것은 어떤 사건이든지 간에 누구 하나 억울한 이가 없게 하려고 국가가 존재하는 것인데 그리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제발이지, 이 정부에서는 이 같은 문제들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으면 하며, 혹여 어찌할 수 없는 문제들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피해는 최소한, 대처는 빠르게’의 공식이 제대로 자리 잡길 바란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정부를 정부로, 국가를 국가로 부르기가 더는 어려울 것이다.

아픔을 겪는 여러 이들이 함께 모여 문제를 풀어가는 연대가 고귀한 것이긴 하나 피해자들만 싸우는 연대가 아닌 부디 앞서 문제를 풀어야 할 이들이 먼저 나서주고 이끌어 줬으면 한다. 아울러 여러 사건과 참사들의 사후 대처와 해결 방안들이 잘 마련되어져야 함은 물론 이러한 피해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정부와 국민 모두 동병상련과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할 수 있길 바란다.

이단 피해자의 연대

국가가 책임져야 할 가장 중요한 소명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라면 성도의 안위와 영적 생명은 당연히 교회의 책임일 테다. 그렇다면 이단 피해자의 문제는 누구의 책임일까? 정부인가? 교회인가? 또 다른 누구인가? 이렇듯 지금까지 이 문제는 책임선이 불분명했기에 피해자들 스스로 회복과 치유를 위해 애써왔다. 그러나 이제는 종교의 문제를 넘어선 국가와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기에 모두의 책임이 됐다. 그러기에 본지부터 여전히 피해자의 편에 서서 돕고, 기도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겠다.

물론 피해자들의 연대가 가장 중요하다. 지난 여름호에 다락방과 JMS 피해자들의 연대를 다뤘던 기사를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코람데오연대, JMS 피해자 지원 활동 나서’란 내용이다. 이 기사의 의미가 남달랐던 것은 이단 대처 사역자들조차 이해관계에 놓인 이단을 중심으로 사역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피해자들이 그것을 뛰어넘어 연대하여 문제들을 풀고자 해서다. 그러고 보니 한국의 이단 대처는 대부분 신천지 대처에 집중해 있고, ‘나는 신이다’ 등의 방송을 보노라면 JMS 문제에만 관심을 두니 다른 이단 문제는 들여다볼 틈이 없는 듯하다.

물론 가끔 이단 사역자들의 연합 행사나 토론회 등이 있긴 하나 일회성에 그치거나 공적 사역보다는 사적 지경의 확대와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만 몰두하는 것 같아 여전히 아쉽다. 또한 대부분 교회도 마찬가지인데 이 문제 터지면 이 문제 쫓고, 저 문제 터지면 저 문제 쫓는 식의 이단 대처가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같은 대처로는 결코 근본적인 이단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울 텐데, 그럼에도 아직 거기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앞으로는 이해관계에 놓인 것만이 아닌 이단 전체에 대한 근본적인 대처와 더불어 피해자들의 회복과 치유 등 좀 더 전방위적이고, 본질적인 대응이 마련되었으면 한다. 이단 피해자들조차 고통과 아픔을 딛고 연대하며, 문제를 풀고자 하는데 나와 우리 사역만 중히 여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물론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이단 다락방의 탈퇴자와 피해자가 모여 출범한 코람데오연대가 JMS 피해자 지원 활동에 나선다고 한 것은 그래서 매우 환영할 일이다. 코람데오연대는 “JMS는 다락방과 유사한 점이 상당히 많다”며 “두 단체 모두 피해자 대부분이 수년간 자신이 겪은 일이 범죄라는 인식조차 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JMS 피해 생존자들이 겪는 고통과 고립은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감당해야 할 책임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다락방과 JMS의 문제는 신앙으로 포장된 구조적 가스라이팅이고, 교리 차이를 뛰어넘어 인권과 생존의 문제라고 피력하며, 이 부분을 사회가 직시하며 연대해야 한다고도 언급했다. 그들의 다음 행보를 기대하며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함께 해야 할 일들에 직무 유기하지 않길, 그래서 그 책임에서 부디 자유로워질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책임

행위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그러기에 책임질 수 있는 행위를 통한 연대가 더욱 바람직할 게다. 자기 일에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닌 남의 것을 위해서도, 그리고 더 나아가 한 치 앞을 내다보는 혜안과 책임까지 생성되었으면 한다. 누구나 자기 일에는 투사의 심정으로 최선을 다해 싸워가곤 하나 이와 다르지 않은 일로 고통받는 남의 일에는 어떤 관심을 갖고 살아왔는지 뒤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싸움이 정당화되길 바라고, 선한 것이라면 남의 것도 그러할진대 자신 일만 중히 여기며 사는 것이 과연 온당한 건가 싶다. 같은 길을 가는 이들뿐 아니라 이 땅에 함께 사는 사람들끼리 가끔은 서로를 바라보고 이해해 주고 응원하며 좀 더 넓은 연대가 완성되길 바란다. 우리의 고통과 억울함을 통해 보통의 사람들이 겪는 보편적인 고통을 이해하게 될 때, 그때 서야 각각의 책임이 좀 더 가벼워질 것이다.

이단 대처에서도 그간 열심히 외쳐온 ‘열 사람의 한 걸음으로’의 근사한 연대로 인해 우리가 소망하는 것들이 제대로, 잘 이뤄지길 바라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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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지원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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