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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질? 변화!
현대종교 | 탁지원 소장 takjiwon@hdjongkyo.co.kr
2025년 11월 07일 09시 41분 입력

오래전에 모 잡지를 구독했더랬다. 정치 등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던 시사 잡지였다. 1년밖에 구독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조금 들었는데 그 미안함이 짜증으로, 그리고 짜증에서 감동으로 이어진 일이 있었다. 공의롭게 한 길만을 달려온 뚝심 있던 잡지는 끈기 또한 남달랐던 것 같다. 구독 중지 이후, 무려 5년 넘게 구독 연장을 요청해 온 것이다.


처음엔 본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일을 하기에 이해하려 노력했으나 매년 연락을 주는 것에 슬슬 짜증이 밀려왔다. 그러나 시간이 좀 더 지난 후에 그 일을 감동으로 기억하는 이유는 한결같이 기자들은 기자들대로, 독자팀은 독자팀대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소명과 사역의 모습을 엿볼 수 있어서다. 「현대종교」 공동체에 커다란 동기부여가 된 것은 물론, 독자와 후원 중지자들에게 조심스레 연락을 취해보게 된 계기도 이 때문이다.

1. 설마 통일교와 신천지 등의 이단 이야기를 세상 언론들을 통해, 그것도 매일 듣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하여 이번만큼은 이단 말고, 좀 더 편한 이야기를 담아 보겠다고 찾은 주제가 언론 관련한 것이니 도긴개긴이다. 그래도 칼럼에서 책을 덮지 말고, 위의 잡지처럼 끈기 있게 마지막 장까지 살펴봐 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겠다.

2. 예전에 언론 중재와 이단 등의 내용을 특집으로 꾸린 적이 있었다. ‘언론중재위원회로 언론을 길들이는 이단’과 ‘이단들의 언론중재 신청을 통한 정정보도청구와 손해배상청구’ 등을 담았더랬다. 기사는 한 번뿐이었지만 현실에서는 늘 현재진행형인, 본지의 중요한 기도 제목 중 하나이다. 일명 언론중재위원회이하 언중위 사역이라고도 생각하고 있다. 최근엔 언중위에서의 다툼보다 정식 재판이 많긴 했으나 그래도 여태껏 멈춘 적이 없었다.

언론중재법이 제정된 것은 2005년도다. 소송이 없는 신속한 피해 구제를 목표로 다양한 장치를 마련한 법이다. 이 법은 강제력이 없어서인지 언중위를 통한다툼과 합의는 소송보다 힘들지 않은 편이다(그러나 조직의 도움을 받는 것과는 달리 개인적으로 문제가 생길 때에는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에 관해서는 생각해 보지 못했기에 이 부분도 고민해 봐야 할 일이다).

아울러 매번 바뀌는 중재 위원들과의 교통도 나쁘진 않다. 엄숙한 재판정보다는 나름 편한 구석이 없지 않아서이다. 매번 출석이 특별하게 기억되는 이유는 위원 중에 선친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매 순간 가늠하기 어려운 선친 사역의 넓이와 깊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 대목이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언중위에 출석하면서도 감사할 때가 있다. 위원들은 공적 자리여서 그런지 겉으로 드러내진 않으나 본지 사역에 공감을 표하거나, 보이지 않는 응원을 건넨 적도 있었다(고 믿고 있다). 지난번 조정 때에는 한 위원이 조정 후에 “「현대종교」 기사 중에 언론 중재 특집 기사를 잘 봤다”며, “자신들에게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라고 넌지시 말하기도 했다.

법과 언론 전문인에게 듣게 되는 칭찬은 어떤것보다 감사하다. 최근엔 통일교 관련 사건으로 인해 여러 언론과 접촉하며, ‘선친의 자료와 그간 본지 기자들의 기사가 없었다면 사건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는데 이 역시 마찬가지이다.

3. 그러나 한편으론 맘이 아프다. 이단 대처의 일에만 온 신경을 써도 부족한데, 법에 관해서도 공부하며 온 힘을 다해야 하고, 더불어 사업이 사역보다 앞서게 되는 일이 잦아 서적도 열심히 판매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아무리 건전하고 건강한 사역이어도 물질이 빠질 수 없고, 이단대처에도 소송이 빠질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이렇듯 이단 대처에도 여러 가지 것들이 섞여 조화롭게 운영되어야 함에도 때로는 자존감이 무너지고 자존심이 상하는 경우들이 적지 않다. 그래도 어쩌랴? 이것도 사역이고 소명인 것을.

30년 넘게 굳은살이 박이지 않은 것이 소송 외에 조금 더 있음을 요즘 느끼고 있다. 멋지게 강의하고, 박수받으며 근사하게 강단에서 내려오거나 조바심을 안고 후원 요청을 하지 않아도 되는, 누구의 눈치 보지 않고, 구차하지 않아도 좋을 당당함을 장착하고 싶은 마음 여전한데 그게 쉽지 않다. 그래도 다시 한번 마음 다잡고, 직원들이 최선을 다해 일할 수 있도록 가장 좋은 환경과 상황을 마련하는 것이 대표의 일일 테니 넋두리는 여기서 멈추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언론과 언중위 등의 이야기를 조금 더 전하고 마무리하련다.

4. 언론중재법 개정의 핵심 목적인 ‘시민의 언론 피해구제’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언중위 위원 구성의 정치적 중립성과 시민 대표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 지가 오래됐다. 결국 지난 9월에 ‘언론중재법 시민피해구제 실효성제고 방안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언론중재법 개정을 통해 시민피해구제 실효성을 높일 방법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는데 ‘징벌적 손해배상제’(배액배상제) 논쟁에 매몰돼 정작 개정 이유인 시민피해구제 강화책 논의는 제자리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문제의식으로 출발했다. 현재 언중위 구성은 법관, 변호사, 언론인 출신으로 구성되고 추가로 언론학자 등이 보강되는 구조인데 “시청자, 시민 대표성은 반영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세월호 사건 이후 종교 관련 중재와 조정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는데(2014년에만 언중위의 조정 건수 중 무려 84.6%가 구원파 기사와 보도와 관련이 있었다) 아무리 전문적인 법학자들과 언론인이라 할지라도종교 관련 전문인들이 포함되지 않아 사건을 조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더불어 1인 미디어의 발달로 이제는 누구든지 언론과 그 외 온라인, 유튜브 등으로 인한 피해를 입을 수 있으나 이 문제 관련해서는 피해 복구나 회복이 쉽지 않기에 이러한 문제들을 풀 수 있는 전반적인 대책도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허나 지금의 개정 내용으로는 종교적인 마찰이나 문제들까지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기에 좀 더 면밀한 논의와 해결책이 제시되어야 할필요가 있다.

5. 토론에 참여했던 채영길 한국외대 교수는 언론중재법 개정 논의가 공론장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언론개혁의 일환이라는 취지에서 ‘시민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울러 “중재가 불성립될 때 시민배심원제를 통해 사건의 공익성, 허위성, 악의성 여부를 직접 심의하고 서로 논의할 기회가 마련돼야 한다. 탈정치적인 목적이 아니라 시민의 권리적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본지의 의견을 더해 시민의 권리적 차원에는 앞서 언급한 종교 문제가 포함되어야 하니 관련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서 완전한 시민의 언론 피해구제 실효성을 높일 수 있었으면 한다. 이로 인해 이단 등 불건전 집단의 가짜뉴스 남발로 인한 피해도 방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채 교수는 “언론만 정치와 자본을 견제하는 게 아니라 시민이 정치, 자본, 언론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시민배심원제 도입을 통해 시민의 직접적 참여가 새롭게 확장돼야 언론중재법이 언론개혁 법안으로서 의미를 가질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 제안을 반드시 종교계가 함께 고민했으면 하며, 이단 문제에도 잘 적용할 수 있길바란다. 종교와 정치, 그리고 이단의 유착 관계 형성으로 인해 오랜 시간 문제가 컸던 이 나라에서는 더더욱 필요한 일이 될 것이다.

한국 종교의 자유에 사이비 종교가 포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종교의 방종으로, 더불어 반국가, 반사회적인 상황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일에 시민 단체뿐 아니라 종교 단체도 함께 관심을 모아갔으면 한다. 아니! 관심을 넘어 이미 이 방안들을 진행하고 있는 몇몇 나라들처럼 학계와 종교계, 그리고 정부가 함께 나서서 적극적인 해결책을 마련해 가야 할 것이다.

6. 연휴의 쉼이 끝나자마자 무겁고 버거운 과제를 전하게 되어 송구하나 이같은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언론으로 인한 피해와 이단 문제의 해결점이 늘 제자리에 머무를 수밖에 없기에 공허한 메아리가 될지라도 계속해서 전하고, 또 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이젠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고. 단 한 번도 생각지 못한 사건, 사고 역시 불특정다수,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 됐다. 굳이 언론과 이단 문제뿐 아니라 그 어떤 것도, 살면서 위협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이 없으니 할 수 있는 한, 방관과 침묵이 답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잊지 않고 살아갔으면 한다.

아울러 우리 주변의 일들을 모두 해결할 수 없고, 때마다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사는 것도 쉽진 않을 테나 세상 모든 변화는 약간의 마음가짐과 이어서 실천으로부터 시작되는 거지, 그리 거창하게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부디 ‘변질’이 아닌, ‘변화’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바꿔가야 할 것들, 그리고 세상 부조리한 것들을 지혜롭고 건강한 방법으로 조금씩 변화시켜 갈 수 있길 바라마지않는다.

 

 

재구독 등의 연락을 받게 되면 불편하게들 여길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대부분 「현대종교」와 다시금 함께하겠노라고 손을 내밀어 주었다(지면을 빌어 진심 어린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 감동에 힘입고, 더불어 명절 연휴 너무도 잘 쉬었으니, 앞으로 더 열심하겠다는 뻔한 다짐 아닌, 꼭 실천해야 할 다짐을 깊이 새기고자 한다. 이를테면 더 많은 이단 관련 양질의 정보 공유와 언론 등으로 인한 피해의 해결에 함께 나서는 것 등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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