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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것
현대종교 | 탁지원 소장 takjiwon@hdjongkyo.co.kr
2026년 03월 06일 08시 55분 입력

‘거룩한 부담감’이라? 상반된 단어의 조합인 듯하나 언젠가부터 이 둘의 조합이 그리 어색하지 않게 느껴진다. 그저 ‘부담감’만이라면 처한, 힘에 겨운 상황을 말하는 것일 텐데, ‘거룩함’이 더해지니 간절한 마음으로 처한 상황을 이겨낼 긍정적인 에너지로 탈바꿈되는 듯하다.

뉴스공장2 (feat 사과)

지난 호 칼럼에서 언급한 ‘뉴스공장’ 관련 문제는 이단 일은 아니었으나 잘못된 것은 분명히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나름 의기가 투합되고, 결전의 의지가 갖춰질 즈음 뉴스공장 측에서 연락이 왔다. 언론중재위원회의 공문을 받고서야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하루에만도 수백 통 이상의 이메일이 답지하기에 내용을 모두 체크하기 어려워 인지하지도, 답변도 못 했다는 게 이유였다.

허나 사태의 심각성을 분명히 인정하며, 현대종교의 어떠한 요청 사항도 수용할 의지를 전해왔다. 그리고 며칠 후, 담당 국장이 찾아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구성원들의 실수였음을 인정하며, 다시 사과했다. 본지가 요구하는 그 이상으로 용서를 구하고 싶다고도 했다.

하여 두 가지를 요청했다. 하나는, 적절한 시기에 분명한 사과 방송과 더불어 ‘동영상 다시 보기’에서 오해가 없도록 조치해달라는 요청이었고, 한 가지 더는 앞으로 방송에서 분명한 팩트 체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뉴스 공장’ 측이 다른 단체나 이단들처럼 사과의 부재도, 변명으로 일관하지도 않는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 온 것은 다행이지 싶다.

나름 힘 좀 있는 방송이기에 모른 척하고 지나가거나 법적 분쟁으로 이어갈 수도 있었을 텐데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마음과 노력은 높이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한바탕 소동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본지도 다시 한번 이 일을 반면교사 삼아 잘못된 것은 분명히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것이 부끄럽거나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며, 더불어 옳은 것은 옳다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외칠 수 있는 당당함을 지니며 사역하겠다는 마음을 제대로 다질 수 있었다.

석 달 동안 관심 두고 지켜봐 주신 독자들과 지인들에게 깊은 감사의 맘을 전하며, 이제 이러한 일들 말고 더 귀한 소식으로 찾아뵙도록 하겠다.

* 위의 담당 국장이 이 일로 남편(기자)에게 핀잔받은 이야기를 전해줬다. ‘어떻게 언론 일을 하면서 현대종교를 모를 수 있냐?’라는. 나름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이 사역이 불특정다수에게 인정받는 것 같아 싫진 않았다.

오래전에도 비슷한 일 하나가 있었더랬다. 신천지 관련 검찰 조사를 받을 때였는데, 당시 담당 검사가 이만희와 대질 조사 등을 마치고는 다가와 넌지시 말했다. 자신이 종교 일에 대해서는 문외한인지라 동료 검사에게 사건 관련 자문을 좀 구했는데 ‘사건에 관해 잘은 모르겠으나 현대종교의 반대편에 선 이들의 문제가 더 클 가능성이 많을 거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의 관심과 응원이 본지를 ‘현종 공동체’답게 만들어 가고 있다.


잠시 잊혀지는 것은 괜찮아요! 사라지지만 않는다면

이번 겨울엔 몇 곳을 제외하곤 다음 세대 이단 대처 강의의 기억이 없다. 코로나 때만도 못했다고 해야 할까? 세상은 온통 이단 문제로 떠들썩한데 어찌 교회에서만 이단 대처에 관해 잠잠한지, 그 이유를 도통 모르겠다. 이단 문제에 과부하라도 생긴 걸까? 내지는 이단 홍수 속에 그저 침묵이 낫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동안 코로나 때 빼고는 잘 이어져 온 다음 세대 이단 교육의 현장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고 아쉽다. 앞으로도 이단의 미혹은 AI 등 세상 발전과 정비례하여 더욱 혼란스러울 텐데 주님 오실 때까지 계속될 싸움이 여기서 멈춰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깊어지고 있다.

선친 소천 후, 사역 시작의 때였던 1994년, 인수인계 하나 없었고, 혼란함만 가득했던 현대종교는 단 한 번 웃음조차 허락되지 않던 공허하고 적막한 공간이었다. ‘왜! 내가 이 일을 해야만 하는가?’ 같은 자조 섞인 넋두리도 날마다 되풀이되었다.

모든 일이 버겁기만 했던 시절, 그나마 사역이 멈춰지지 않길 바라던 몇몇 직원들이 함께해 줬기에 위로가 되었다. 또 하나는 다음 세대의 관심과 사랑 때문이었다. 당시에도 강의 사역을 통해서 후원 요청과 문서 선교가 가능했고, 그로 인해 사무실 살림과 직원들 급여를 마련할 수 있었기에 어깨너머 선친에게 배우고 들었던 것을 토대로 해서 강의 현장에 투입되었다.

감사한 것은 당시 현대종교와 선친을 기억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기에 교회와 수련회 현장의 강의 초청은 늘어만 갔다. 하여 딴생각할 틈 없이 사역에 집중할 수 있었다. 또 하나의 감사는 부족한 초년생 사역자였지만 집회 현장마다 은혜와 감사가 넘쳐났다.

특히 초, 중, 고 아이들을 만날 때는 더욱 그러했다. 비록 어린아이들이었지만 말씀의 나눔을 넘어 귀한 교감이 있었고, 교감은 서로를 향한 은혜와 위로로 이어졌다.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 같은 슬픔과 아픔이 아이들을 통해 기쁨과 소망으로 탈바꿈된 것이다. 이단 대처로도 소중한 만남이었지만 사역의 원동력으로 더 감사했던 시간들이었다.

아이들과의 만남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이뤄졌다. 전라권의 프론티어와 동그라미 캠프, 경상권의 위미션과 비손 캠프, 그리고 충청권의 주바라기, 서울 경기권의 어린이 은혜 캠프, BJ 워십 캠프 등이 그러했다(물론 강원과 제주에서도 집회는 감사하게 이어졌다.^^).

교회로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중등 3부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당시 선생님들은 우리 교회 성도들 수가 워낙 많으나 아이들로부터 시작한다면 중학교 3학년은 모두 거쳐 갈 테니 그때만이라도 이단 강의를 할 수 있다면 결국엔 전교인 모두가 이단 대처로 한 번쯤 고민, 기도할 수 있지 않겠냐는 의견을 나눴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 봐도 참 지혜로운 생각이었지 싶다.

하여 십수 년 이상을 매년 오산리기도원을 찾았기에 아마도 지금 여의도순복음교회 40대 전후의 성도들은 대부분 이단 강의를 들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부서에서는 그간의 수고에 감사하다며, 감사패까지 수여해 줬는데 그 행복한 기억이 여전히 잊히지 않고 있다. 앞서 언급한 어린이 은혜 캠프도 마찬가지이다.

매해 수천 명이 넘는 초등학생 아이들을 만났는데 아이들 특성상 목이 터지라 외치며 아이들과 함께한 뜨거운 현장이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당시에는 영상, 오디오 등의 장비가 지금처럼 좋지 않았기에 음향 모니터 등이 잘되지 않아 목이 많이 상했고, 여름, 겨울이면 늘 쉰 목소리로 살았으나 그때의 아이들이 장성해서 여태껏 여러 이들이 연락을 주곤 하니 기쁜 마음뿐이다.

그 외 기독교 학교인 이화여자고등학교, 안산동산고등학교, 인천 숭덕여자고등학교, 순천매산고등학교 등까지 해서 믿지 않는 이들에게까지 이단 문제의 중요성을 나누며 30년 이상을 보냈으니 감개무량하다는 표현만으로는 모자라지 싶다.

그러나 그렇게 귀했던 다음 세대와의 만남이 점차 사라지는 중에, 이제 AI 등의 출현으로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이 사라질까 두렵다. 그래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 남을 것도, 지켜야 할 것도 적진 않으리라 믿으며 다시금 마음 다잡고자 한다.

이번 제주의 아이들과 함께한 BJ캠프(놀랍게도 이 캠프는 아이들을 온전히 섬기기 위해 자비량으로 진행하고 있다.), 오산장로교회의 작년 중, 고등부에 이어 이번엔 소년부 아이들과의 만남 등을 통해 아직 희망을 저버리기엔 이르다는 결론에 도달하니 이 역시 위 믿음에 부합한다. 언제나 은혜를 끼치러 갔다가 도리어 은혜를 받고 오는 일이 조금만 더 이어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거룩한 분노’ 역시 ‘분노’가 거센 단어이긴 하나 ‘거룩한’을 통해 의롭게 의지를 다지게 되는 듯싶다. 이렇듯 어떤 것도 예외 없이 거룩한 마음과 행실이 더해지면 귀하고 근사한 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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