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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파 예배를 다녀오다 (1)
기독교복음침례회 서울교회(권신찬, 유병언)
조민기 기자 5b2f90@naver.com
2015년 10월 21일 20시 06분 입력
▲ 서울시 용산구 한강대로 62길 18에 위치한 기독교복음침례회 서울교회, 십자가와 간판이 없다.

구원파는 기독교복음침례회(권신찬, 유병언), 생명의말씀선교회(이요한), 기쁜소식선교회(박옥수) 등의 세 계열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모두 같은 뿌리에서 출발했으며 기성교단에서 ‘이단’으로 결의하고 있다. 하지만 구원파를 기성교회로 혼동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기자는 구원파 예배에 직접 참석해 보았다.

기독교복음침례회 서울교회(권신찬, 유병언)
기독교복음침례회(기복침)는 1961년 11월 네덜란드 선교사 Case Glass(한국이름 길기수)와 미국인 독립선교사 Dick York(딕 욕)의 영향을 받은 권신찬 · 유병언씨에 의해 시작되었다 (권씨와 유씨는 장인과 사위 관계다). 1963년부터는 선교사들과 관계를 끊고 독자노선을 구축했다.

서울시 용산구 한강대로 62길 18에 위치한 ‘기독교복음침례회 서울교회’를 찾아갔다. 교회는 상가건물 2층에 위치해 있다. 교회 간판이나 십자가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입구 왼편에는 ‘기독교복음침례회 서울교회’라는 현판이 붙어있었다. 입구로 들어서자 본당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에 아이들의 신발이 많은 것으로 보아 유 · 초등부실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본당은 네모반듯한 직사각형 구조였다. 강대상에는 3개의 대형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었고 중간에는 3대의 TV모니터가 설치되어 있다. 강대상과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예배를 드리기에 큰 어려움이 없을듯 했다. 내부를 둘러보니 본당 안에 사무실, 화장실, 상담실 모든 시설이 마련되어 있었다. 장의자도 있지만, 맨바닥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방석도 깔려 있다.

예배 시작 전 성도들은 여름수양회 준비와 등록신청으로 분주했다. 분주함 속에 청년들이 접수를 받고 성도들이 수양회 등록에 차질 없도록 도움을 주었다. 서울교회 주일 오전예배는 11시다. 교회는 1000명 정도의 중 · 장년층을 중심으로 구성되어있다. 성도들을 유심히 살펴보니 대부분이 ‘뉴글라세’ 생수병을 가지고 있었다. ‘뉴글라세’는 유병언씨 일가 계열사인 ‘온나라 유통’이 생산하는 제품이다.

10시 57분 쯤 서른 명 정도의 성도들이 상가대석으로 이동했다. 성가대복은 따로 없고 흰 셔츠나 블라우스로 통일해 입었다. 11시가 되니 성가대의 찬송으로 예배 시작을 알렸다. 성가대 찬송이 끝나고 영상을 통해 예배를 이어간다. 영상의 인물은 유병언씨였다. 젊은 날 모습으로 수수한 차림이었다. 영상 속의 유씨는 찬양을 부르고 성경구절을 읽고 설교를 이어가는 중에 갑자기 특송을 시키고, 다시 기도를 하는 등 예배는 다소 두서없이 진행되었다. 성도들은 익숙한지 영상설교에 집중했다.

유병언씨는 영상설교 중 “예수를 믿어도 영원히 용서해주신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이것을 모르는 게 죄가 아니냐?”는 질문을 던졌다. 신도들은 지속적으로 교육을 받은 것 마냥 동시 다발적으로 “죄 중의 큰 죄”라고 답했다. 유병언씨는 “허깨비에게 속은 사람들이 우리 중엔 없지만 기독교인에 많다”고 전했다. 이어서 “그리스도인이 10년이 지나도 구원받았는지 의심을 한다”며 이런 것은 “영적 어린아이”와 같다며 기성교회를 비방했다.

예배를 마치고 나온 서울교회 측 신도에게“구원 받으셨어요?”라고 물으니 곧장 “네”라고 대답했다. 또 “구원받은 날짜를 기억하세요?”라고 물으니 머쓱해 하며 “나도 오랜만에 교회에 나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89년도에 구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유병언씨는 죽었지만 유씨의 생전 설교 영상을 통해 주일 예배를 드려 그의 부재를 느끼기 어려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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