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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목 교수]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 안상홍의 요한계시록 해석에 대한 비판 (10)
현대종교 | 송영목 교수
2021년 12월 30일 08시 50분 입력

안상홍이 요한계시록 19-20장을 해설하는 바를 소개하고 비평한다.

1. 요한계시록 19장 해석

안상홍은 요한계시록 19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요한계시록 19장 11절의 백마는 육체를 가진 승리한 그리스도와 성도를 가리킨다(참고. 계6:2). 요한계시록 19장 19-21절은 짐승‘들’과 임금들 그리고 거짓 선지자‘들’이 패배하는 장면을 두고 일반 교회는 재림하시는 예수님이 심판하시는 장면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심판하면 그만이지(신32:32-35; 사5:1-5; 계19:15-16) 싸울 필요가 없다.1)

⇨ 비판 안상홍은 요한계시록 19장을 상세히 해설하지 않기에 비평하는 데 한계가 있다. 백마(계19:11)는 성육하신 그리스도와 성도를 가리키지 않는다. 요한계시록 19장 11절의 백마가 아니라 백마를 타신 분은 예수님을 가리키고, 요한계시록 19장 14절의 백마가 아니라 백마들을 탄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 백마는 전쟁에서의 승리를 상징하므로, 소아시아 7교회를 박해하던 악인들은 전쟁으로 패망한다. 그리고 승리하신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승리 덕분에 이길 수 있다.

요한계시록 19장 20절의 ‘그 짐승’은 바다짐승을 가리키므로, 복수형 ‘짐승들’이라고 부를 수 없다. 또한 ‘그 거짓 선지자’도 단수형 명사로서 불신 유대인을 가리키므로, 복수형 ‘거짓 선지자들’로 표기하면 오류이다. 불신 유대인들은 용이 토해낸 물 즉 거짓 교리를 들이켰기 때문에 ‘그 거짓 선지자’라 불린다(참고. 계12:16). 안상홍의 지적대로 적지 않은 크리스천은 요한계시록 19장 19-21절을 주님의 재림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악인들을 심판하실 것이므로 싸우실 필요는 없다. 물론 싸움과 심판을 동 시간에 벌어질 심판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요한계시록은 정확하게 시간 순서대로 일어날 사건들을 연대기적으로 배열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예수님의 탄생과 승천은 요한계시록 1장이 아니라 요한계시록 12장에 나타난다. 그리고 무천년주의자들은 요한계시록 19장 11-21절을 주님의 재림으로 이해하며, 요한계시록 20장 1-7절의 천년왕국은 재림 이전의 시대 즉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기간으로 해석한다.2)

하지만 요한계시록의 내러티브 전개를 고려할 때, 요한계시록 19장 11-21절의 예수님과 교회의 승리에 대한 환상을 예수님의 재림 이후의 상황으로 볼 이유는 없다. 왜냐하면, 사탄의 삼위일체 가운데 맨 위의 우두머리인 용의 파멸은 이 단락에 언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용이 유황불에 던져지는 시간은 천년왕국이 끝나고(계20:7) 예수님의 재림 때이다(계20:10).

따라서 요한계시록 19장 11-21절의 승리 사건은 하나님께서 요한계시록의 1차 독자들을 신원하시고 그들의 대적들을 심판하셔서 천국 복음이 온 로마제국에 전파되는 상황을 가리킨다.3) 그다음 요한계시록 20장 1-7절의 천년왕국과 요한계시록 20장 10절의 재림과 사탄에게 내려질 최후 심판이 뒤따른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19장 11절에서 20장 10절의 내러티브는 역사적인 사건의 시간적 흐름을 반영한다.

2. 요한계시록 20장 해석

안상홍은 요한계시록 20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요한계시록 20장 1-2절의 천 년 동안 사탄이 결박된 것은 지구 가운데 인간이 없는 장소에 천 년 동안 결박하는 것이다. 이것은 속죄 제물을 드린 후 아사셀을 광야로 보낸 것과 마찬가지이다(레16:1-2). 또한 6년 경작 후 7년째에 휴경하듯이, 땅은 6000년 사용하고 1000년 쉬어야 한다(레25:1-5). 요한계시록 20장 4-6절의 성도가 천 년 동안 왕노릇하는 것은 고린도전서 6장 2-3절이 말하듯이 성도가 세상을 심판하는 것을 가리킨다.

요한계시록 20장 7-10절은 천 년이 찼을 때 사탄이 악인들의 부활을 보고 옥에서 나와 하늘에서 내려온 새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다가 패망하는 장면이다. 요한계시록 20장 11-15절은 백보좌 앞에서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 장면이다(참고. 단12:2-3; 마16:24-27; 눅12:47-48; 롬2:6-10; 벧전1:7).4)

⇨ 비판 사탄이 결박된 무저갱(계20:3)은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장소가 아니라 사탄과 악의 세력이 거처하거나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장소이다(계9:1;11:7). 만약 무저갱이 사람들이 거주하지 않는 곳을 가리킨다면, 결박된 사탄이 거하는 곳을 깊은 바다나 높은 산을 가리킬 수 있다.

레위기 16장의 대속죄일에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지고 염소가 광야의 아사셀(사탄)에게 나아간 것과 천년왕국은 관련이 없다. 레위기 16장은 티쉬리월 10일에 있던 대속죄일 규정이지 그리스도께서 사탄을 정복하신 천년왕국이 그림자가 아니다. 물이 없는 광야에 거한다고 여겨진 사탄은 ‘아사셀’이라 불리는데, 그 악한 자는 죄의 출처이므로 죄와 어울린다.5)

첫째 부활에 참여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는 것을 성도가 세상과 천사들을 심판할 것이라는 바울의 진술과 직접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가?(고전6:2-3) 성도가 신앙의 문제를 두고 세상 법정에 고발하는 사건을 다루는 문맥에 위치한 고린도전서 6장 2-3절의 취지를 살펴야 한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셔서 통치하시는 일에 성도가 현재 천년왕국 기간에 참여하고 있다는 취지로 보기는 어렵다(참고. 롬3:6). 바울의 취지는 언젠가 미래에 고난 당하는 성도가 세상과 천사를 다스리게 될 것이라는 의미에 가깝다(참고 고전4:9).6)

따라서 요한계시록 20장 4-6절과 고린도전서 6장 2-3절을 연결하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그렇다면 주님의 재림 이전에 죽은 성도 그리고 순교한 사람들 즉 첫째 부활에 참여한 성도는 주님의 재림 때까지 무엇을 다스리는가? 제사장 나라인 교회는 복음으로써 세상을 가르치고 제자를 삼아야 하므로, 영적인 다스림을 가리킨다.7)

요한계시록 20장 7-10절은 옥에서 풀려난 사탄이 악인의 부활을 보고 새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는 장면인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요한계시록 20장 7-10절에 악인의 부활이 나타나는가를 살펴야 한다. 악인의 부활은 요한계시록 20장 13절에 언급된다. 사탄이 예수님의 신부인 새 예루살렘 성을 공격할 때 동원한 악인들은 부활한 악인들이 아니라, 곡과 마곡의 세력이다(계20:8). 에스겔 38-39장에 언급된 곡과 마곡의 세력은 남 유다를 침공한 바벨론 왕과 군대와 같은 이스라엘의 대적을 가리킨다.8)

마찬가지로, 천년왕국 기간 동안 신약 성도를 박해한 곡과 마곡의 세력은 AD 1세기에는 로마제국과 불신 유대인들을 가리키고, 그 후 예수님의 재림 이전까지 활동하면서 교회와 천국과 복음을 대적하는 모든 악의 세력을 가리킨다. 요한계시록 20장 11-15절의 백보좌 심판은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 장면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왜냐하면 생명책에 녹명된 사람들은 영생의 부활과 복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계20:12). 이런 영생과 복은 사람의 행위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전적 은혜로 가능하다.

나오면서

요한계시록 19장은 음녀 바벨론의 파멸 때문에 교회가 기뻐 찬송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계19:1-8). 이 할렐루야 찬송은 요한계시록 18장 20절에 언급된 하나님의 기뻐하라는 명령에 순종한 반응이다. 그 후 요한계시록 19장 11-21절은 승리하신 예수님과 복음을 전파하는 교회에 의하여 바다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심판을 받는 환상이다.

요한계시록 17-18장에 불신 유대인을 가리키는 음녀 바벨론의 패망이 등장하지만, 그 심판은 요한계시록 19장 20절에 반복된다. 내러티브의 환상이 반복되는 것은 강조를 위한 문학적 기법이다. 요한계시록 20장은 천년왕국과 주님의 재림, 그리고 최후 심판을 설명한다. 예수님의 승리와 통치 그리고 그분의 재림과 공의로운 최후 심판은 요한계시록의 1차 독자는 물론, 모든 신약 교회에게 위로와 소망을 불러일으킨다. 동시에 최후 심판은 성도의 삶에 경각심을 일으키기도 한다.

___________
1) 안상홍, 『聖書 설교집(第二卷): 요한계시록과 다니엘서 연구』, 42.

2) 예를 들어, G. K. Beale, The Book of Revelation (NIGTC; Grand Rapids: Eerdmans, 1999), 948-74.

3) 송영목, 『요한계시록: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통한 위로와 소망의 메시지』, 354.

4) 안상홍, 『聖書 설교집(第二卷): 요한계시록과 다니엘서 연구』, 43.

5) 송영목, “교회의 거룩과 삶의 예배: 레위기 16:7-22의 그리스도 완결적 해석,” 『고신신학』 14(2012), 457-79.

6) 참고. D. E. Garland, 1 Corinthians (BECNT, Grand Rapids: Baker, 2003), 201-203.

7) 송영목, 『요한계시록: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통한 위로와 소망의 메시지』, 364.

8) 참고. Beeke (ed),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1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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