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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 피해자의 눈물과 아픔
조민기 기자 5b2f90@naver.com
2017년 12월 04일 16시 28분 입력

 

 

 

▲신천지에 잃은 자녀를 되찾기 위해 시위 중인 가족들

 

■ 지쳐 쓰러져도 이단에 빠진 내 가족 찾는 노력 포기하지 않을 것
■ 수소문 통해 자녀를 찾아내면 또 다시 숨어버려
■ 아내가 돌아오기만 한다면 다시 행복할 수 있다는 소망 간직
 

기상청은 12월 전국 평균기온을 평년(1.5도)과 비슷하거나 낮을 것으로 전망했다. 벌써부터 매서운 추위가 피부에 와 닿는 기분이다. 하지만 연말을 기념해 한자리에 모여 서로에게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가족이 있어 마음만큼은 포근하다. 그러나 이단에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연말은 차갑기만 하다. ‘자녀가 없는 빈방’, ‘쌓여있는 설거지’, ‘익숙해져 버린 독방’ 등의 현실에 ‘가정’이란 표현마저 낯설기만 하다. 연월일(年月日)보단, 이단에 가족을 잃어버리기 전 · 후의 시간 계산이 빨라져 버린 이단 피해 가족을 만나 보았다.
 

JMS에 빠진 아들, 행방조차 알 수 없어

JMS(정명석, 기독교복음선교회)에 자녀를 잃은 지 10년이 넘어가는 A 집사. A 집사의 자녀 B씨는 대학에서 만난 선배 때문에 JMS에 빠졌다. 선배는 B씨에게 모델을 해 볼 생각이 없느냐며 접근해 친분을 쌓았고, 서서히 JMS의 교리를 주입했다. JMS에 물들어 버린 B씨는 대학 선배가 출석하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겠다고 A 집사에게 요청했다. 평소 신앙생활을 해왔던 A 집사는 캠퍼스에서 이단에 미혹되는 경우가 잦다는 기억이 스쳤고, B씨에게 어떤 교단에 속한 교회에 출석하는지 물었다. B씨는 막힘 없이, “기독교복음선교회”라고 답했다. 오랜기간 신앙생활을 해왔지만, 당시엔 JMS가 ‘기독교복음선교회’란 교단명을 사용하는지 몰랐다.
 

▲JMS에 가족을 잃은 사연을 소개하고 있는 피해 가족

어느 날 A 집사는 B씨의 가방 속에서, 정명석씨의 사진과 JMS의 교리가 담긴 『30개론 강의안』을 발견했다. 그 순간 A 집사는 공영방송을 통해 봤던 정명석이 기억났고, 자녀를 추궁했다. 이미 JMS의 교리에 깊게 심취한 자녀는, A 집사의 질문에 공격적인 자세를 취했고 결국 자신의 종교를 존중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집을 나갔다. 하루 이틀 지나면 돌아오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일주일 한 달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자녀가 출석하는 위장교회를 수소문해 찾아내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자녀는 또 다른 위장교회로 숨어버렸다. JMS 위장교회에 찾아가 자녀를 돌려달라고 항의도 해봤다. 그러나 JMS 측은, “그런 사람 없다”, “출석하지 않는다”는 등의 답변만 내놓았다.

 

A 집사를 더 슬프게 하는 건 부모의 눈을 피해 집에 들렀던 B씨의 흔적을 발견할 때다. 내 자식의 안부를 내 눈과 입으로 확인하지도 물어보지도 못하는 현실이 서글프기만 하다. A 집사는 자녀와 함께 따뜻한 밥을 먹고 그간 나누지 못했던 속 깊은 대화를 나누는 연말을 보내는 게 꿈이라고 한다.
 

▲신천지 센터 앞에서 시위를 하다 폭행을 당한 C 권사

폭행당한 부모 외면하게 한 ‘신천지’

사춘기가 왔는지 모를 정도로 착했던 딸이 신천지에 빠진 이후 달라졌다. 신천지를 반대하는 엄마의 손길을 뿌리쳤고 시선을 외면했다. 엄마의 이야기보단 이만희의 명령에 매달렸다. 딸은 “종교의 자유를 존중해 달라”며 외쳤고, 엄마는 “사랑하는 내 딸이 불구덩이에 들어가는데 지켜보고만 있을 부모가 어디 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천지로 인한 갈등의 골은 깊어져만 갔다. 결국 딸은 직장을 포기하고 집을 나갔다. 믿기지 않았지만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고, 정신을 차려야 했다. 엄마는 딸을 찾기 위해 거주하는 지역에 신천지 위장 센터로 알려진 곳은 모조리 찾아다녔다. 신천지 신도들로부터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딸은 병문안 한 번 오지 않았다. 때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이 막막하게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차 안에서 목 놓아 울며 기도한다. 그리고 다짐한다. 지쳐 쓰러질지언정 포기란 없다고.

▲신천지 센터 앞에서 시위하는 피해 가족들

C 권사에게 딸 없는 연말은 무의미하기만 하다. 애써 외면해보려 하지만 덩그러니 비어있는 딸의 방을 볼 때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눈물이 맺혀있다. 답답한 마음에 딸의 메신저에 메시지를 남겨놓는다. 아무런 답변도 없지만, 메시지를 읽었다는 걸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C 권사는 “딸과 함께 연말을 보낼 수 있다면, 딸을 꼭 안고 사과를 하고 싶다”고 고백한다. 딸을 사랑해서 했던 행동인데, 혹여나 딸이 상처받은 부분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딸은 돌아오지 않았다. C 권사는 딸이 돌아올 날만 그리며 오늘도 확성기와 캠코더를 챙겨 집을 나선다.


처가, 아내, 세 자녀 잃게 만든 ‘은혜로교회’

직장인 D씨는 은혜로교회(담임 신옥주)에 처가와 아내, 세 자녀를 잃었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목회를 하셨음에도 유튜브를 통해 듣던 신옥주씨의 설교에 매료되었다. 뒤이어 아내가 은혜로교회에 빠졌다. 처가 식구뿐만 아니라 아내마저 은혜로교회에 출석을 하니 자연스럽게 은혜로교회 주일 집회에 참석했다. 기성교회의 잘못된 부분을 짚어줄 땐 맞는 말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 피지에 가야 한다, 신옥주씨의 예언의 말씀을 들어야 거듭나고 육체가 영생한다는 말은 믿을 수 없었다.
 

▲은혜로교회 피해자 및 피해가족 기자회견 현장

그러나 아내는 은혜로교회 측 교리에 더욱 심취해 갔다. 급기야 은혜로교회 본부가 위치한 안양에서 생활하겠다고 했고, 아이들마저 안양에 있는 학교로 전학시켰다. 이해할 수 없는 아내의 결정에 싸우기도 하고 설득하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아내는 더욱 은혜로교회 교리에 빠져들었고 신앙 고백이란 이유로 삭발을 하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였다. 3년이란 시간을 서로의 이견 조율에 쏟았지만 제자리걸음이었다. 결국 D씨는 이혼을 결심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아이들마저 피지로 떠날 것 같았다. 이혼소송을 통해 친권, 양육권을 받아 아이들이라도 지켜내고 싶었다. D씨가 이혼을 결심한 건 가정을 정리하기 위함이 아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선택이었다. D씨는 변함없이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가 은혜로교회의 잘못된 교리를 깨닫고 돌아온다면 언제든지 결합할 생각이다.
 

직장인 D씨는 연말이면 가족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진다고 한다. 연말에 맞춰 ‘전우회’, ‘사우회’ 등 여러 모임에서 일정이 잡히는데, 가족동반 모임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D씨는 괜히 자기 때문에 모임의 분위기가 깨질까 봐 참석을 피한다고 했다. 때로는 속사정을 다 아는 사람들이 모인다 싶어 모임에 참석하기도 하지만, 왠지 자기를 측은하게 여기는 것 같아 금방 자리를 뜨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전한다.
 

이단에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하나 같이, 가족을 찾기 전까진 그 어떤 날도 특별하지 않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이단에 빠진 가족을 찾기 전까진 이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이란 굳은 의지를 전한다. 추운 겨울 가족을 찾기 위해 거리에 나선 이단 피해 가족을 만나게 된다면,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