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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하는 봉사도 필요할까요?
이상갑 목사
2020년 05월 28일 08시 48분 입력

Q 교회에서 봉사를 해야 하는 것을 알지만 봉사가 참 하기 싫을 때가 있어요. 그런데 봉사를 하면서 저 자신도 모르게 성장하는 것을 경험하기도 하면서 봉사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억지로 봉사를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A

억지로 한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너무 억울해서 홧병이 생기기도 합니다. 억울함을 풀지 못해서 신경 정신성 질환을 앓기도 합니다. 성경을 읽다가 종종 참 억울하겠다고 생각했던 분이 있습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입니다. 구레네는 북아프리카의 중요한 항구도시입니다. 

▲이상갑 목사
산본교회 담임
청년사역연구소 대표

 

오늘날 리비아의 수도인 트리폴리입니다. 지중해에서는 약 15킬로 떨어져 있습니다. 구레네에는 많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시몬은 이런 디아스포라 유대인 가운데 한 명이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예루살렘에는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왔을 것입니다.

그는 아마도 개방적인 성향으로 보입니다. 그의 아들의 이름이 알렉산더와 루포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유대적 이름이 아닙니다. 이방적인 이름입니다. 시몬은 시골에서 올라오는 길에 예수님을 처형하려는 군인들과 예수님과 마주치게 됩니다. 스쳐 지나가다가 마주친 것입니다. 마가복음 15장 21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고 시몬은 성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다가 붙잡혀서 자기 의사가 아닌 강제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우고 억지로 가게 하였습니다. 그러니 억울한 일인 것입니다.

원래 십자가는 처형을 당하는 당사자가 메고 가게 했습니다. 이때 처형당하는 자가 지고 가는 십자가는 양팔을 못 박을 수 있도록 가로로 대는 횡목이었습니다. 약 20킬로 정도 무게가 나갑니다. 그런데 왜 구레네 사람 시몬이 억지로 지고가게 되었을까요? 예수님께서 육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완전히 탈진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에 의해 배반을 당하고 붙잡혀서 밤새 고문을 당하고 온갖 인격적 모독을 당하여 지쳐서 완전히 탈진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가혹한 매질을 당하면서 육체적으로 에너지가 소진되었습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십자가를 억지로 지게 된 것은 시몬은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 기간 중에 피 묻은 저주의 십자가를 만진다는 것은 유대 통념에서는 크나큰 불행이었습니다. 우리 속담에 재수 옴 붙었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만큼 재수가 없어도 너무 없다는 사람들 표현입니다. 지금 구레네 사람 시몬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재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 지점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구레네 시몬은 비록 억지로였지만 예수님의 최후의 순간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았습니다. 상처로 갈갈이 찢겨진 육체를 보았습니다. 피범벅이 되고 만신창이가 된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거칠게 타들어가는 예수님의 숨소리를 들었습니다. 신음하고 고통스러워하시는 예수님의 거친 숨소리를 들었습니다.

구레네 시몬은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갔지만 예수님의 마지막 공생애 기간의 고난의 길인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의 길을 함께 걸었습니다. 아마도 이 시간이 구레네 시몬에게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고 예수님은 누구신가를 고민하게 된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궁금했을 것입니다.

도대체 예수님은 누구란 말인가? 그는 그 순간부터 자신이 대신 십자가를 지었던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추적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십자가를 진 것은 당시로서는 수치스러운 일이고 당황스러운 일이고 재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저주 받은 날이라고 생각을 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예언된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이심을 깨닫는 순간부터 그는 예수님과 함께 비아 돌로로사 즉 고난의 길을 걸었던 바로 그 시간들이 인생의 보석같은 순간들로 변했을 것입니다. 구레네시몬은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감으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른다는 것이 무엇임을 깊이 묵상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운다는 의미를 깊이 붙잡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구레네 시몬을 이전과는 다른 삶으로 이끌었습니다. 아니 이전의 삶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명확하게 알았기에 그는 자신의 전 생애를 그리스도를 위해 드렸을 것입니다. 그 후로 그와 그의 아내와 그의 자녀들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살아가는 삶으로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그의 가정은 경건한 가정으로 수많은 영적인 지도자들과 교류하고 교제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축복의 통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이 처형을 시킨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그의 생애는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니고 영원성으로 이어진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16장 13절에서 우리는 구레네 사람 시몬의 아들 이름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라” 기억하십니까? 구레네 시몬의 아들의 이름이? 네~알렉산더와 루포였습니다. 마가복음에 등장하는 루포는 로마서 16장 13절에 언급한 루포와 동일인으로 보여집니다. 그렇다면 구레네 시몬의 아들 루포에게 영적 유산이 상속되고 구레네 시몬의 아내도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축복의 통로가 되어 바울과 같은 수많은 영적 지도자들을 품어주는 영적 어머니가 되었던 것입니다.

루포의 어머니는 내 어머니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만큼 섬김의 사람, 기도의 사람, 격려의 사람으로 바울의 좋은 지지자요 격려자가 되어 주었던 것입니다. 억지로든지 자원함으로든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과 연결되고 있는 것이 복일 것입니다. 훗날 내가 진 십자가를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알았다고 고백하고 간증할 수 있다면 그 순간이야말로 최고의 순간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십자가를 기피하는 시대를 살아갑니다. 목회자나 신학생마저도 십자가를 모두 기피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지 않기에 어쩌면 종교적 수준의 신앙에 머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이 진정한 이스라엘 왕 그리스도 메시야이심을 정말 믿는다면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이 영광이요 특권으로 느껴질 것입니다. 자원함이라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모두가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고 도망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시시때때로 주님은 억지로라도 봉사자의 자리에 있게 하심으로 우리의 신앙을 붙잡아 주시고 쓰임 받게 하신다고 생각됩니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를 깊이 묵상하면서 우리 자신과 우리 자녀들도 하나님 나라를 위한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는 은혜가 함께 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어쩌면 그 길이 Via Dolorosa 일런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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