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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주택 소유 세계관
장재훈 목사
2020년 09월 18일 09시 22분 입력

주택(住宅)이란 사람이 들어가 살 수 있게 지은 집을 말합니다. 즉, 사람이 사는 집을 주택이라고 합니다. 다주택(多住宅)가구란 1가구가 여러 채의 집(아파트),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가구를 말합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들은 자기가 들어가 살 수 있는 집만 소유하면 됩니다. 왜냐하면 동시에 여러 주택에서 살 수 없고, 대부분 어느 지역에 장기적으로 머물러 살기 때문입니다. 이 장에서는 기독교인으로서 다주택 소유 세계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장재훈 목사
군산내흥교회 담임

  

다주택이란 무엇입니까?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필요 이상으로 많은 주택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으로 기본거주개념인 주택을 가지고 돈벌이, 투기 장난을 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습니다. 필요 이상의 다주택 소유는 인간의 기본 거주나 생계 개념에 비추어 볼 때 정의롭지 못한 짓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으로 돈벌이를 하는 것은 성경의 건전한 노동과 수고에 따른 소득사상에 비추어 볼 때 불로소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기본거주개념인 주택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소유함으로 인하여 상대적으로 가난하거나 집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할 주택이 적어지고 사라지는 것이 됩니다.

이는 가진 자들의 탐욕이자 과욕이자 극단적 이기심입니다. 이웃의 아픔과 고통은 생각지 않고 자기 배만 채우는 짓입니다. 다주택 소유는 반공동체, 반이웃사랑 개념에 속합니다. 더불어 상생과 공생하는 사회가 아닌 개인의 이익만 앞세우는 이성과 양심이 없는 동물적이고 반사회적 행동입니다.

성경은 다주택 소유에 대하여 어찌 말합니까?

성경은 이기적이고 이웃을 생각지 않고 이웃에게 고통과 피해를 주고, 사회적으로 약자나 가난한 자들을 배려하지 않고, 탐욕적으로 행하는 모든 것을 지지하지 않고 거부합니다.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태복음 22장 39절)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골로새서 3장 5절)


성경은 나 아닌 다른 사람, 곧 타인을 사랑하라고 합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이웃에게 피해와 고통이 돌아가지 않게 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결코 이웃에게 손해와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주택 소유는 이웃사랑이 아니라 탐욕적인 자기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와 자기 가족의 거주에 필요한 주택 외에는 소유하지 말아야 합니다. 투기와 재테크 목적으로 다주택을 소유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미 다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속히 시장에 싸게 처분해야 합니다. 그래야 시장에 물량이 많이 공급되고 남아 상대적으로 서민들이 좀 더 쉽고 싸게 주택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알고 그랬든지 모르고 그랬든지 다주택 소유는 선한 것이 아니기에 지금이라도 진심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아니면 적극적인 차원에서 돈이 많은 그리스도인이 선한 목적으로 다주택을 많이 소유하여 다른 주택보다 월세나 전세를 아주 싸게 줌으로 사회적 약자들이 보호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선한 사마리아인, 선한 부자, 선한 기득권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천국부자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이웃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범사에 성경 사상과 애신애타의 사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그런 자들이 참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 모두 그런 마음과 자세로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 이 글은 『기독교 경제 세계관』 내용 중에 ‘제21장 다주택 소유 세계관’(pp.100~103) 부분을 저자 장재훈 목사의 허락을 받아 발췌 및 요약하여 게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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