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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과 봉사, 꼭 교회 봉사를 해야만 구원받을까요?
이상갑 목사
2020년 11월 27일 08시 50분 입력

Q


“목사님, 봉사하지 않으면 구원에서 제외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너무 바쁩니다. 스스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서 학교를 다니기에 알바도 해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고 할 일이 너무 많아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이상갑 목사
산본교회 담임
청년사역연구소 대표

A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봉사하고 섬기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구원의 조건처럼 강요를 당한다면 심각한 일입니다. 정상적인 교회라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가끔 종교인들의 비도덕적인 모습들이 언론에 오르내리곤 합니다. 그 중심부에는 카리스마적인 인물이 있습니다. 특정한 사람을 중심으로 충성경쟁을 하듯 하는 것을 봅니다.

봉사가 하나님을 향해 있지 않고 특정 인물의 칭찬과 인정을 받는데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러한 교회들을 깊이 들여다보면 대다수가 하나님의 이름을 포장한 인간적인 열심을 강조합니다. 그들은 자기 의가 강합니다. 다른 사람을 쉽게 비난하고 비판하고 비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만일 어떤 교회가 구원의 선행조건으로서 선행을 강조한다면 곁길로 빠진 것입니다.

특히 봉사의 문제를 구원으로 연결하면 위험합니다. 종교개혁의 배경에는 헌금을 많이 하면 죄를 사해 준다는 면죄부 판매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비성경적입니다. 억지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면죄부의 판매를 반대하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이신칭의를 선명하게 했습니다. 즉 구원은 오직 복음을 믿음으로 가능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선한 일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일이라고 그것을 구원의 문제와 무조건 연결하면 안 됩니다. 이단이나 사이비 집단에서는 구원의 문제와 추종자들의 헌신을 자꾸 연결합니다. 구원의 문제와 헌금을 연결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일상을 포기하고 자신들의 단체 일에 매몰되게 합니다.

개인의 삶은 포기하고 집단적 광기에 빠지게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의 목적이 영혼 구원에 있지 않고 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진정한 구원이 목적이 아니라 특정한 교주와 그를 추종하는 핵심적인 사람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이용 당하는 것입니다. 교주와 핵심 지도자들은 추종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삶을 갈취하곤 합니다. 그래서 이단과 사이비를 따르면 미래가 어둡습니다. 개인적인 삶이 무너집니다. 이런 곳은 속히 떠나야 합니다.

그렇다면 신앙생활에 있어서 선한 일(행위)은 어디에 위치합니까? 에베소서 2장 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그렇습니다. 행위가 구원에서 차지하는 자리 자체가 아예 없습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구원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행하신 대속적 사역에 기초합니다. 그런 까닭에 인간은 구원에 관하여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인간적인 자랑거리가 구원에 끼어들 여지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위는 우리에게 “너 열심히 선행을 해야 사랑받는다”라고 속삭입니다. 율법적 속삭임입니다. 그러나 은혜는 이렇게 속삭입니다. “넌 존재 자체로 사랑받는 하나님의 자녀야” 이것이 정상적인 성령님의 자유케 하는

음성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나면 자유케 됩니다.

자유케 된 사람들은 점점 어둠의 일을 멀리합니다. 죄와 악을 멀리합니다. 그래서 점점 온전케 변화되어 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인 은혜와 구원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결코 싸구려 인생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위해서 아름답게 쓰임 받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선행이 자리하는 곳은 도대체 어디일까요? 그것은 구원의 은혜를 경험한 이들의 삶을 분별력을 가지고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경험한 이들의 삶은 어떠합니까? 에베소서 2장 10절은 말씀합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하심이니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직접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습니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면 삶이 싸구려가 될 수 없습니다. 왜입니까?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자들은 그 은혜에 감격합니다. 감동합니다. 감사합니다. 그 결과로 이어지는 은혜에 대한 반응이 선행입니다. 은혜를 진짜 경험하면 그 은혜에 대한 반응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그래서 삶이 고급지게 되어집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에베소서 2장 10절 전반절에서 선명하게 밝힙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신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님의 피조물인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는 것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된 이들의 삶의 방향성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추구하는 삶입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서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삶은 엉망진창이고, 일상의 삶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덕을 세우지 못하고, 오히려 다른 사람을 실족시키는 언행을 일삼는다면 주의해야 합니다. 그들은 구원 그 이후의 삶의 열매가 없기에 정말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인생인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목회자들조차도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삶의 자리에서 성 문제, 돈 문제, 세습문제 등으로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를 무너뜨린다면 비록 직분은 사역자라고 할지라도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라 맹신과 자기 확신이라는 오만한 오류 속에 빠져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영적으로 잘 분별하십시오. 구원 그 이후의 삶이 빠져 있다면 성경적 신앙과 삶을 고민하지 않게 됩니다. 그 결과 어떤 교주나 특정한 사람의 말만 믿고 따르는 맹신에 빠집니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이 아닙니다. 또한 구원 이후의 삶이 빠져 있는 영적 지도자는 오직 사리사욕에 초점을 두고 자기 자신의 탐욕을 추구하는 샤머니즘 영성에 머무르게 됩니다. 그들은 교회를 허무는 거짓된 사역자들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 열매로 그들을 알 수 있습니다. 정말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선한 일이 열매로 맺어질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기억하십시오. 선한 일은 구원의 조건은 아닙니다. 행위는 구원 조건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성숙할수록 점점 악한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은혜를 풍성하게 받을수록 성도는 비도덕적으로 행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삶이 싸구려가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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