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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목 교수]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안상홍의 요한계시록 해석에 대한 비판 (3)
현대종교 | 송영목 교수
2021년 04월 30일 08시 32분 입력

이 글에서는 계시록 1-5장에 나타난 안상홍의 해석을 소개하고 비판한다.

1. 주일과 안식일

안상홍은 요한계시록 1장 10절의 ‘주의 날’이 출애굽기 20장 10절의 안식일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참고. 막2:28).1) 안상홍은 요한계시록 2장 4-5절을 책망으로 보면서, 사도 말경에 가서 변하기 시작했다고 본다. 즉 155년경부터 서방 로마교회는 절기나 안식일을 변개하여 일요일을 지키며 유월절도 폐지했다고 주장한다.2)

⇨ 비판 요한이 밧모섬에서 첫 환상을 본 시점은 주의 날인데, ‘안식일’이라는 표현은 등장하지 않는다. ‘주의 날’은 다양하게 해석되어왔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주일(일요일), 크고 두려운 야웨의 날, 안식일, 황제의 생일 등. 사도 바울이 설명한 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며, 이런 것들의 실체는 그리스도의 것이다(골2:16-17).3)

신약 교회는 안식일을 구약에 규정된 대로 지킬 필요가 없다. 신약 교회가 공 예배로 모이는 주일은 일요일인데, 태양숭배의 날이 아니라, 참 안식을 가져다주신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한다.4) 초대교회 때부터 한 주의 첫날 즉 안식일 그다음 날에 모였다(참고. 행20:7).

그렇다면 오늘날 주일은 안식일의 성취인가? 예수님께서 구약의 안식일의 목적과 지향하는 바를 성취하셨다. 부활과 영생을 누리는 신약 교회는 노동을 쉬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집중하기 위해 부활을 기념하기에 적절한 주일에 회집한다.

따라서 특정 요일에 구애되지 않고, 영육의 쉼과 공 예배 그리고 경건의 훈련과 예배적 삶이 이루어진다면 안식일이 성취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5) 하지만 여전히 안식일을 문자적으로 고집한다면 구약시대로 회귀하여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참 안식을 주신 예수님께서 성취하신 구원 사역의 성취를 무시하게 된다.

2. 네 생물

안상홍은 네 생물의 모양은 하나님의 성질과 같다고 본다(계4:6-11). 즉 사자는 강한 힘, 송아지는 직무에 꾸준한 인내력,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잘 이해하는 재능, 독수리는 사업이 신속한 것을 표상한다. 그리고 이 표상들은 옛날 이스라엘 군대가 네 가지 군기로 사용하였던 것이다. 안상홍은 하나님의 보좌는 실물인 네 생물로써 세워졌다고 주장한다.6)

⇨ 비판 밤낮 하나님을 찬송하는 네 생물은 각 영역을 대표하는 생명체이므로, 다수 학자들이 주장하듯이 천사들로 볼 이유는 없다. 또한 네 생물을 하나님의 네 가지 속성과 연결하기보다, 모든 생명체가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는 의미가 자연스럽다.

성경에서 꾸준함은 송아지는 물론 곰의 속성이기도 하다. 또한 성도는 뱀처럼 지혜로워야 하기에, 이해력은 사람과 더불어 뱀에 해당한다. 독수리와 더불어 표범도 빠르다. 따라서 요한계시록 4장 6-11절의 네 생물만 네 속성을 대표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또한 네 생물이 구약 이스라엘 군대의 깃발에 새겨졌다는 명시적 언급을 찾아보기 어렵다(참고. 민10:11-28). 하나님의 보좌가 실물인 네 생물로 세워졌다고 본다면, 마치 하늘 보좌 앞에 실제로 네 생물이 있다고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요한계시록 4장은 천상의 예배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이 아니라 믿음의 상징세계를 알리는 환상이다.

3. 일곱 인으로 봉인된 두루마리

일곱 인으로 봉인된 두루마리를 개봉할 사람을 찾지 못하자 요한은 왜 울었을까?(계5:1-4) 안상홍은 인봉한 책을 떼지 않으면 다 멸망으로 들어갈 위험한 때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마치 다니엘서에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석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백성까지도 죽임을 당하는 것 같이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 비판 인봉한 책을 떼지 못하여 닫혀있다면 인류는 멸망한다는 암시는 없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석하는 것과 두루마리의 개봉은 상관이 없다(참고. 단2:13). 이 둘을 연결하는 것은 비교 대상의 오류이자 상호텍스트적 해석의 오류이다.

하늘 환상을 보고 들을 뿐 아니라 등장인물의 역할도 수행한 요한이 울었던 이유는 보좌 위에서 통치하시는 성부의 통치계획서에 담긴 의미를 알고 싶은 열망 때문이었다. 그 두루마리의 주요 내용은 심판이지만, 구원도 포함한다(참고. 계6:6의 남은 자를 가리키는 감람유와 포도주).

요한은 나중에 환상 속에서 이 두루마리를 받아먹고 그 내용을 열방에 다시 선포해야 했다(계10:10). 이처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깨달은 사람은 전도해야 하는 법이다.

4. 어린양의 일곱 뿔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에게 일곱 뿔이 났다(계5:6). 안상홍은 초림 때는 뿔이 나지 않았지만 마지막에는 일곱 뿔이 나게 해서 (일곱) 완전한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주장한다(시132:17-18).

⇨ 비판 안상홍은 숫자 7이 ‘완전’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하는데, 이것은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해석 방식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초림 때에 뿔이 나지 않았지만, 마지막에는 일곱 뿔이 나서 완전히 승리한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뿔’이 권세와 힘을 상징하므로(참고. 단8:20), 초림하신 예수님에게 뿔이 나지 않아서 권세가 없었다고 주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요한은 재림하실 예수님이 아니라, 초림하셔서 일찍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의 머리에 일곱 뿔이 있다고 밝힌다.

같은 맥락에서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에서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밝힌다(참고. 요18:6). 그러므로 예수님은 결코 힘이 없어서 일찍 죽임을 당하신 것이 아니다. 요한계시록 5장 6절의 초점은 완전한 권세를 가지고 공적 사역을 수행하신 초림의 예수님이지 재림의 주님은 아니다.

초림의 예수님께서 완전한 권세를 가지고 기적과 표적을 행하셨지만, 결국 스스로 힘을 제한시키셔서 죽으심으로 대속을 성취하셨다. 그러나 재림하실 예수님은 능력을 제한시키시지 않고 천국을 완성하시고 영원한 심판을 시행하실 것이다.

나오면서

요한계시록 1-5장의 해석에서 주일, 네 생물, 인봉된 두루마리의 개봉, 그리고 어린양의 머리에 있던 일곱 뿔을 살펴보았다. 계시록에 나타나지 않은 ‘안식일’을 강제로 주입하여 해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보좌 위의 성부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든 생명체를 상징하는 네 생물을 통해 호흡이 있는 모든 사람이 예배적 삶을 살아야 함을 교훈 받는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알려는 열망과 더불어, 깨달은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이 되셨지만, 여전히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사역하신 어린양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각주

 

1) 안상홍, 『聖書 설교집(第 二 卷): 요한계시록과 다니엘서 연구』, 6

2) 안상홍, 『聖書 설교집(第 二 卷): 요한계시록과 다니엘서 연구』, 8.

3) 칼빈, 『기독교강요』 2.8.31.

4) 『기독교강요』 2.8.34.

5) 『기독교강요』 2.8.28-31.

6) 안상홍, 『聖書 설교집(第 二 卷): 요한계시록과 다니엘서 연구』,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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