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보기 작게보기
페이스북
가정폭력
현대종교 | 변상규 교수
2021년 05월 28일 09시 10분 입력

모든 종교에서는 천국과 지옥을 말한다. 천국을 극락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용어야 어찌되었든 죽어서 가는 좋은 곳은 천국이고 죽어서 가는 나쁜 곳을 지옥이라 하였다. 분명히 천국과 지옥은 장소의 개념이다. 그러나 천국과 지옥은 장소의 개념으로만 볼 수 없다. 천국과 지옥은 상태의 개념이기도 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마음의 상태”를 의미한다. 마음에 지옥이 있으면 가정을 지옥으로 만들고 관계를 지옥으로 만든다. 즉 살아있는 아수라 지옥을 만든다. 마음에 천국이 있는데 가정을 지옥으로 만든다? 이제까지 그런 경우를 본 적이 없다. 나는 지난 20여 년 넘는 세월 동안 수천 명의 사람들을 현장에서 혹은 인터넷에서 내담자로 만나 상담을 해보았다. 그리고 깨달은 것이 위에서 제시한 개념이다. 천국과 지옥은 장소겠지만 상태라는 것이다.

누구나 다 행복한 가정에 대한 그림을 갖고 있다. 그러나, 살다 보면 그 그림이 아름답게 이루어지는지 말도 안 되게 끝장이 나는지 드러난다. 가정폭력은 인간의 원초적인 존재의 요람인 가정을 파괴하는 핵심적인 폭력이다. 그리고 그렇게 가정폭력을 목격한 자녀들은 극심한 수치심과 분노와 혼란, 우울증, 파괴성으로 나아간다.

대부분 가정폭력을 행하는 사람들은 슬프게도 남성들이 많다. 물론 남성의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속에 여성에 비해 그런 폭력적 성향으로 변할 수 있는 요소들이 더 많이 들어있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그러나, 모든 남성이 그런 테스토스테론의 부정적 성향에 사로잡혀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호르몬도 문제가 있겠지만 후천적인 문제가 더 크다. 어른이 되었음에도 남의 마음을 공감하지 못하는 미숙한 사람, 자기감정에만 사로잡혀 타인의 아픔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을 “성인 아이”라 부른다. 성인은 성인인데 정신의 어느 면은 아이와 같이 미숙하고 자기중심적이라는 의미에서 “성인 아이”라고 칭한다.

최근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모든 범죄들은 90% 이상 성인 아이들이 저지른 참극이다. 그리고 항상 무슨 공식처럼 그런 참극 뒤에는 어린 시절 불행한 가정을 지켜보며 살아야 했던 피해자 가족들의 고통이 스며있다. 그런 고통 받던 피해자들이 어느 날 가해자의 모습으로 둔갑하여 자기가 겪었던 지옥을 현실에서 다시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가족치료사 버지니아 사티어는 아주 유명한 말을 했다. 가정은 공장과 같다는 것이다. 좋은 공장은 정품을 만들어내지만, 불량공장은 불량품을 만들어내듯 순기능 가정은 우리 사회에 유익한 사람들을 길러내지만, 역기능 가정은 우리 사회에 불량품과 같은 사람들을 배출하는 곳이라 하였다.

사티어는 역기능 가정의 가장 큰 특징을 부정적 자아상과 대화의 부재, 혹은 대화의 불통으로 꼽았다. 가정폭력을 양산하는 역기능 가정에서 높은 자아상을 가진 가족 구성원이 나올 수 없다. 자아상이란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느냐 하는 기준이다. 칭찬과 격려가 잦은 가정의 구성원들은 자아상이 건강하고 자존감(self esteem)이 높다. 그런 사람들은 명료하게 대화하고 사물이나 현상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당연하다. 피해의식이 없으니까. 반면 역기능 가정은 서로에게 사랑과 정(情)을 갖고 있으나 표현하지 않는다. 불만이 생기면 이를 억압하거나 수동적 공격성을 보인다. 말하지 않는 방향으로 시간이 해결해주기를 기대하며 문제가 넘어가기만을 바란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가족 간의 갈등이 생기면 정확히 무엇이 문제인지, 그 문제를 가족 구성원이 어떻게 해결해 나아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런 기준을 그 누구도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가정폭력의 가해자들은 하나같이 대화하기를 두려워하거나 너무 미숙하여 작은 분노에도 이를 크게 과장하여 폭발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이 있다. 어린 시절 받았던 모멸감이나 분노의 감정을 억압하고 살다가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그런 감정들을 자극하면 그러한 분노와 모멸감이 증폭되어 폭발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정폭력은 순간적인 화를 참지 못해 결국 화(火)가 되어버린 결과이다. 분노는 화火와 같은 것이다. 분노는 불이다. 불처럼 다 태워버린다는 것이다. “욱”하는 분노를 참지 못해 자기 배우자에게 혹은 자기 자녀들에게, 때로는 자기 부모에게 언어 폭력, 육체적 폭력, 위협을 하였다면 그 날까지 그사람이 쌓아온 모든 좋은 이미지들은 그 순간 다 태워지고 만다. 문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렇게 행동한 자신의 모습을 급히 후회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분노 중독자들은 무슨 공식처럼 그렇게 화를 내고 다시 후회하고 “미안하다”, “안 하겠다”, “조심하겠다”며 다시 좋은 부모, 배우자의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다시 헐크의 모습으로 둔갑하다 보니 가족 구성원 사이에 가장 깊어야 할 신뢰(trust)는 사라지고 냉소와 불신만 남게 된다. 그래서 가정폭력은 폭력의 문제만큼 가족 간의 신뢰감을 깨뜨린다는 점에서 가장 최악의 폭력이라 말할 수 있다.


예전에 자기보다 돈을 많이 버는 아내를 남편이 살해했다는 뉴스 보도가 있었다. 남편이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하면 재산과 아이들을 모두 다 빼앗길것 같아 저지른 행동이라고 했다. 과연 그 아이들은 평생 감옥에 있어야 할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나는 대학생 딸을 두고 있는데 아이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다.

물건도 바닥에 툭 던지는 모습이 영 보기가 좋지 않아 몇 번 그런 면들을 고치라고 지적한 적도 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 모습은 내가 아내에게 했던 말투요, 그런 행동은 내가 흔히 했던 모습이라는 것을 보게 되었다. 순간 얼굴이 화끈거리고 표현할 수 없는 수치심을 느꼈다. 자괴감이라고나 할까.

아이들은 미우나 고우나 부모를 보고 배운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부모의 앞모습이 아닌 뒷모습을 보고 배운다고 한다.심리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내담자를 치유하면 할수록 내 전공인 정신분석학을 연구하면 할수록 부모라는 존재는 아이들에게 너무나 강력한 존재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증거들을 발견한다. 프로이트는 아이들이 유년기 시절 부모와의 동일시를 통해 성격을 구성해나간다고 했다.

우리의 성격은 부모가 내게 했던 패턴, 내게 했던 ‘소리의 집합’이라는 것이다. 가정폭력을 행한 모든 가해자들 마음속에는 언제나 미해결된 태산 같은 분노가 자리 잡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안에 깊은 거절감과 좌절감, 모멸감이 스며있다. 얼굴은 때로 천사 같지만 한번 눈이 뒤짚힐만한 일이 생기면 악마의 모습으로 가족들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충격을 준다.

나는 우리 사회가 겉으로만 번지르르할 뿐 내면은 분노와 좌절, 불평과 냉소로 가득하다고 진단한다. 인류 역사 가운데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지난 50여 년 만에 서양에서 500년만에 만든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단기간에 이루었으니 이런 민족, 이런 나라는 유례를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의 국민들 정신건강을 알려주는 세 가지 지표에서 우리는 거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우울증 증가율 1위, 자살율 1위, 이혼율 2위. 국민들 정신 건강에 빨간불이 아니라 비상벨이 켜진 것이다. 왜 이렇게 행복하지 않을까?

먹고 사는 것이 너무 힘들었을 때도 이러지 않았는데 말이다. 영어, 수학만 배웠지 같이 사는 법, 대화하는 법, 남자가 여자를 이해하는 법, 여자가 남자를 이해하는 법, 그런 가장 기본적인 삶의 주제들을 어디서 배워본 적이 없어서 그렇다는 것이 나의 진단이다.

이웃집에서 비명 소리가 나고 물건 깨지는 소리가 나도 남의 집 일이니까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는 것은 “가정 일은 각자 알아서 해야 한다”라고 하는 암묵적인 정서적 동의 때문에 생긴 그야말로 역기능적 태도가 아닐 수 없다. 행복지수를 통계 내면 전 세계에서 하위의 점수를 기록하는 우리 대한민국. 가정의 해체와 위기는 갈수록 가정을 폭력을 양산해내는 역기능적 공장으로 전락하고 있다.

거기다 빈익빈 부익부라는 경제구조는 사회의 약자들인 저소득층들의 가정을 더욱 망가뜨리고 있는 실정이다. 아이들이 잘 적에 부모님이 일 나가시고, 아이들이 잘 적에 부모님이 들어오는 이 현실은 아이들에게 그야말로 방임의 폭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제 가정폭력의 문제를 그저 육체적 학대의 차원에서만 다루지 말아야 한다. 정서적 범위로 넓혀야 한다. 가능할 수 있다면 모든 마을에서 모든 지역과 도시에서 부부 대화법, 부모-자녀 대화법, 비폭력적인 대화법, 분노치료, 내적치유와 같은 분야들이 늘어나서 행복한 개인을 만드는 것이 결국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것이라는 인식을 확대시켜야 할 것이다. 가정이라는 영어단어 Family를 풀이해 놓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Family란 Father and Mother I Love You의 앞글자를 모아 놓은 것이라는 것이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 그런 고백들이 모여 이루어진 가정이 더 이상 언어 폭력, 육체적 폭력으로 망가지고 깨어지고 지옥이 되는 일을 멈추도록 해야 할 것이다.

‘가정’-사람이 살아가는 가정은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 Copyrights ⓒ 월간 「현대종교」 허락없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