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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자치모임 – 공동체와 ‘신교(信敎)의 자유’의 갈등
현대종교 | 탁지웅 신부 sonar530@hanmail.net
2022년 04월 20일 08시 30분 입력

반상회(班常會). 행정단위의 최말단 조직인 반班을 구성하는 가구 대표자가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모이는 월례회라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정의하고 있다. 1917년 일제가 조선인 통치수단으로 ‘반’ 조직을 활용한 데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주로 주민통제 수단으로 이용되어 참석하지 않으면 요시찰 대상이 되거나 배급을 주지 않는 등의 불이익을 받았다. 1938년 전시 동원 체제로 이용되고 시대가 변해도 정부의 정권홍보 수단으로서 계속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서 사회적인 분위기가 변화함에 따라 반상회 개최의 목적과 필요성도 급격히 떨어졌다. 그러나 반상회가 주민들의 자율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반상회는 지역 발전의 매개체로서 충분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가나가와켄의 히라츠카시의 자치회 안내 자치회 활동으로 자라나는 지역의 유대감 (소방활동, 레크레이션, 환경미화, 지역정보의 공유, 방범활동, 지역복지)

 

일본에서도 한국의 반상회와 같은 조직이 있다. 자치회(町内会: 쵸우나이카이)라는 조직인데 일본의 행정단위의 최말단 조직인 쵸우(町)를 구성하는 가구 대표자의 모임이다. 자치회는 마을 사람들에게 이벤트 등의 지역 정보를 제공하고 마을 축제와 같은 이벤트와 도로청소 등의 공동작업을 실시한다.

▲가와사키시의 이나게신사우지코 청년회(稲毛神社氏子青年会)의 가마행진(오미코시)

 

 

 

▲가와사키시의 이나게신사우지코 청년회(稲毛神社氏子青年会)

 

또한 이웃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공동체로서 화재, 호우, 지진 등의 재해가 발생하거나 범죄로부터 마을을 지키고자 할 때 개인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지역사회의 문제를 모두의 협력 하에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자치회에 참여할 경우 ‘회비’가 필요한데 지역마다 다르지만 한 달에 몇백 엔을 수거하고 모은 회비는 방재, 방범, 마을 미화 등 마을의 안전활동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마을의 자치회 게시판

 

일본에서는 거주하는 장소에 따라서 마을의 전통적인 여러가지 축제와 이벤​트가 있다. 봉오도리 및 가마행진, 떡 찧기 등이 있는데 봉오도리(盆踊り)는 불교의 염불 춤에서 유래한다. 이 염불 춤은 염불을 외우면서 추는 것이고 함께 춤을 추면서 선조의 영혼을 대접하는 의식이다. 현재는 양력 8월 15일 그리고 지역에 따라 음력 7월 15일에 지키는 선조의 영을 기리는 ‘오봉(お盆)축제’때 함께 춘다.


가마행진(お神輿: 오미코시)이란 일본 신토에서 축제(마츠리)를 할 때 사용하는 가마를 마츠리에 참가한 마을 사람 전체가 합심하여 짊어지고 가마에 연결된 줄을 끌고 이동하는 행사다. 평상시에는 신이 신사 안에 거주하고 있지만 신을 밖으로 모실 때에는 가마를 사용한다. 그래서 가마의 모양은 신사 건물과 비슷하다.


​이러한 행사들은 일본의 전통문화이기도 하지만 종교적인 의미도 포함된 행사다. 마을의 신사가 중심이 되고 그 행사를 자치회가 후원하기도 하고 스스로 주최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일본에는 우지코(氏子)라는 개념이 있기 때문이다.

우지코란 같은 마을에 살고 그 마을의 조상신이나 수호신을 믿는 사람들을 칭한다. 마을의 신을 믿는다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회심을 하거나 전도에 의해서 신앙을 하는 것이 아니다. 마을에는 고대로부터 이어온 마을을 지키는 신이 있고 그 마을에 태어나는 순간 신사에 가서 참배를 함으로써 그 마을을 지키는 신의 자손이 되는 것이다.

일본제국주의시대 때에는 국가 신도의 지배하에 천황가의 우지가미(조상신)인 이세진구(伊勢神宮)를 정점으로 조직을 재편하여 마을의 주민은 모두 그 토지의 신의 우지코로 간주되어, 천황 숭배와 군국주의에 이용되었고 지금도 엄연히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지코라는 신앙과 제도는 전통문화로부터 내려온 관습인 동시에 종교적이고 역사적 측면에서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마을의 신사. 필자는 자치회의 멤버이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이 신사의 우지코로 등록된다.

 

무엇보다도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자치회에는 신앙이 다른 사람들이 멤버로서 참가하고 있는 마을의 자치모임의 회비가 이러한 종교적 행사에 지출되어 신사 제례 비용에 사용되고 있고 이러한 행사에 반강제적인 참가가 강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신교의 자유를 침범하게 되는 것이다.


자치회의 회계 지출항목에 ‘신사비’ 지출이 포함되어 있고 신사 유지비용이나 신사의 종교적인 축제 기부금 등이 지불되고 있는 것, 즉 신사의 종교 활동에 대한 헌금이나 봉사가 개개인의 임의나 자발적 의사에 의한 것이 아닌 자치회 활동의 일환으로서 강제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전통적 관습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건이 생기고 있다.

‘자치회의 회계 지출항목에서 ‘신사비’를 지출하는 것’에 대해 사가佐賀현 지방법원에서 2002년 4월 12일 판결된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 신사가 종교성을 가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 자치회는 자치체가 아니기 때문에, 즉시 헌법 제20조(정교분리의 원칙), 동 제89조(종교 단체에 대한 공금 지출 제한)를 저촉한다고는 할 수 없다.

● 사회적 허용 한도를 초과하는 경우에는 민법 제1조(공공의 복지·신의성실의 원칙, 권리남용의 금지), 동 제90조(공서양속)에 비추어 불법으로 평가하여야 한다.

● 자치회는 임의 단체이지만, 자치회 그 자체는 같은 지역에 두 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지 주민에게는 강제가입단체에 준하는 요소가 있다.

● 그러므로 자치회 회원은 각각의 가치관을 가지며 신앙에 대해서도 한 사람 한 사람 다양하다는 것이 전제된다.

● 신사에 지출하는 것도 종교상의 행위로 참가를 강제하는 것으로 인정된다.

● 신사에의 지출은 신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민법의 취지에 비추어 불법적인 행위이다.

‘자치회의 회계 지출항목에서 ‘신사비’를 지출하는 것’은 법률적으로는 불법적인 행위로 간주되어 있지만 현실적으로 자치회를 탈퇴하거나 회비를 거부하는 것은 굉장히 힘든 상황이다. ‘다들 하고 있으니까’, ‘옛날부터 해 왔으니까’, ‘나만 안 내면 지역사회로부터 따돌림을 당할 우려가 있으니까’ 등의 이유로 불법적인 활동이 묵인되어 왔다. 필자가 살고 있는 곳은 동경의 시내이기 때문에 강제적인 요소는 없지만 전통문화와 관습의 보전, 지역사회의 유대감 형성이라는 명목 아래 힘들어하는 일본의 신앙인이 많이 존재한다.

 

▲필자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도보 5분 정도 떨어져 있는 옆 동네를 관할하는 신사. 신사 건축 때 기부를 한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또한 기독교인은 지역의 축제, 자치회나 신사가 관련된 지역의 행사에 참가해야 되는지 아닌지 고민하는 사람도 많다. 기독교 전통 그리고 성경은 혈연, 지역사회, 국가라는 공동체를 매우 중시하고 있다. 기독교인으로서는 우상숭배를 피하면서 가능한 한 지역 공동체를 존중하고 그 활동에 협력, 참가하며 지역 공동체를 유지해 나아가는 것은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지만 공동체와 ‘신교(信敎)의 자유’의 갈등은 곧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일본에 사는 기독교인에게는 항상 현재진행형으로 싸워 나아가야 하는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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