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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가로서의 예수님
현대종교 | 한성열 교수
2022년 05월 31일 08시 30분 입력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는 앞으로 오실 메시아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비교적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사9:6). 그는 제일 먼저 “기묘자, 모사”라고 소개하고 있다(개역개정). 영어성경에서는 “Wonderful Counselor”라고 소개하고 있다. ‘counselor’는 요즘 말로는 간단하게 상담자라고 번역할 수 있다. 즉, 예수님은 “탁월한 상담자”이시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도 자신을 “Counselor”라고 하신 경우가 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나오는 ‘보혜사’라는 말이다. ‘보혜사’라고 번역된 헬라어 ‘파라클레토스’는 문자적으로 ‘도움을 베풀기 위해 곁으로 부름을 받은 자’란 의미이다. 일반적으로 변호사나 자문가, 상담자를 가리켰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자문가이고 또 하나는 상담자이다. 자문은 지식이나 정보가 부족해서 곤란을 당하는 경우에 도움을 주는 것이고, 상담은 감정적으로 괴로워할 때 도움을 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탁월한 상담자’라는 것은 탁월한 자문과 상담을 해주신다는 것이다.

우선 자문가로서의 예수님을 살펴보도록 하자. 자문은 주로 지식이나 정보가 부족해서 괴로움을 당할 때 유용한 것이다. 예를 들면, 몸이 아플 때나 법률적으로 곤란을 당할 때 의사나 변호사를 만나 자문을 얻는 것이다. 신앙적인 문제로 목회자를 만나 자문을 구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의 탁월하신 자문가로서의 면모가 잘 드러난 예가 수가성에서 만난 사마리아 여인의 경우이다. 성도들에게는 너무나 유명한 이 일화는 요한복음 4장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자신의 숨기고 싶었던 과거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예수님이 범상한 분이 아님을 직감하고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었지만 아무도 속 시원히 대답해주지 못한 질문을 한다. 즉, 어디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한다.

예수님께서는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가짐, 즉 “영적인 진실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이 여인은 그동안 혼란스러웠던 문제가 해결되는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내친김에 하나 더 질문한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내가 바로 그 메시아다”라고 엄청난 사실을 말씀해 주셨다. 이 말씀을 듣고 여인이 얼마나 기쁘고 큰 충격을 받았는지는 물을 길으러 우물가에 온 여인에게 아주 소중한 ‘물동이’까지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메시아를 만났다”라고 외친 것을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 결과 동네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다. 이것이 자문이다. 즉 질문에 정확히 답해주는 것이다.

자문을 언제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상당히 중요한 주제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정확한 정보와 지식을 준다 하더라도 시기와 방법이 적절하지 못하면 효과가 나타나지 않거나 심한 경우에는 오히려 사람들을 근심하게 만드는 역효과까지 나기 때문이다.

이 점을 살펴보기 위해서 또 다른 자문의 예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수님과 부자 관원과의 만남은 유명하다. 부자 관원이 영생에 이르는 방법을 질문한다(마가복음 10장). 그러자 예수님이 정확히 대답해주신다. 하지만 예수님의 대답을 들은 그의 태도는 사마리아 여인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는 심히 근심하게 돌아갔다.

평소에 궁금하던 것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을 듣고 두 사람의 반응에 큰 차이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인을 따져보아야 한다.

첫째 요인은 답을 알고 싶어 하는 ‘절실함’이다. 얼마나 답을 알고 싶어 하는지 여부이다. 사마리아 여인이나 부자 관원 모두 정답을 절실히 원하고 있다. 오히려 부자 관원이 더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자문이 성공하기 위한 두 번째 요인은 “진정성”이다. 정말 답을 알고 싶어하는지 여부이다. 진정성은 자주 절심함과 혼동된다. 부자 관원은 자신이 정답을 모르기 때문에 진정으로 답을 원한 것이 아니다.

만약 영생을 얻는 방법을 진정으로 알고 싶었다면 이 부자 관원도 사마리아 여인처럼 정답을 알고 기뻐서 그대로 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 원했던 답이 아니라 예상외의 답을 들었던 것이다. 이 관원은 사실은 자신이 이미 영생에 이를 계명을 다 지키고 있다는 자만심이 도사리고 있고, 그 사실을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다.

자문이 성공하기 위한 세 번째 요인은 ‘적시성(適時性)’이다. 알맞은 때에 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자문을 해주어도 대부분 기대했던 효과가 나지 않는 이유는 자문의 내용이 틀려서가 아니라, 아직 그 조언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과 부자 관원과의 자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자문이 효과적이기 위해 필요한 요인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주고 계신다.

이 점은 다른 식으로 이야기한다면, 예수님께 자문을 구하고 답을 얻기 위해 우리는 절실하게, 진정으로 그리고 꼭 필요한 시간에 자문을 구해야 한다. 그러면 예수님의 답을 듣고 사마리아 여인이 느꼈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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