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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의 이단(異端)과 이설(異說) (4)
현대종교 | 이상규 교수
2022년 06월 28일 08시 34분 입력

4. 영지주의

지난 호에서 소개한 에비온파가 유대교적 배경에서 생성된 이단인 반면, 영지주의는 헬라적 배경에서 기원한 이단이었다. 초기 기독교회의 대표적인 이단인 영지주의는 70년경부터 250년 어간에 널리 퍼졌던 신지적 운동(theosophical movement)으로서 교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영지주의는 그 기원이나 사상을 하나의 체계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영지주의는 하나의 사상체계라기보다는 신비주의적인 운동으로 평하기도 한다. 1세기를 거쳐 가면서 교회가 제도화되어 가자 신비종교가 영향력을 행사하였는데, 영지주의도 이런 유형이라는 주장이다. 반면 하르나크(Adolf Harnack)는 영지주의를 “기독교의 극단적인 헬라화”the extreme Hellenization라고 보았다. 또 켈리J. N. D. Kelly는 영지주의는 “유대교, 헬라철학 및 동양철학의 혼합”이라고 하면서 영지주의를 ‘헬라화 된 기독교’(Hellenized Christianity)라고 불렀다.

영지주의에 대해서는 초대교회 교부들의 문서에서 약간의 정보를 주고 있지만, 1946년 북부 이집트에서 발굴된 나그 함마디(Nag Hammadi) 문서를 통해 영지주의의 실체를 보다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 특히 이 문서를 통해 초기 기독교가 영지주의의 강한 영향을 받았음을 알게 되었다.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ticism)란 지식을 의미하는 헬라어(γνῶσις, gnosis)에서 유래하였다. 이들은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특별히 구별된 신비로운 지식을 소유해야 하는데, 이 지식이야말로 구원에 이르는 비밀 열쇠라고 주장하였다. 영지주의의 지도자들은 개인적으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독특한 지식, 곧 그노시스를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이유에서 영지주의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영지주의는 지역적으로 약간의 차이를 보였으므로 시리아, 알렉산드리아, 그리고 소아시아의 영지주의로 구분한다. 대표적인 영지주의자로는 안디옥의 바실리데스(Basilides)와 사토르니우스(Satornius), 알렉산드리아의 카르포크라테스(Carrrpocrates), 그리고 로마의 발렌티누스(Valentinus) 등이 있다. 초기 교부들인 이레니우스, 테루툴리아누스 혹은 클레멘트는 발렌티누스를 영지주의의 대부로 생각했다.

영지주의는 특히 두 가지 문제, 곧 창조와 구원 문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창조문제란 무한한 절대적 초월자가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물질세계를 창조하였는가에 대한 관심이다. 이들은 최고의 존재인 신으로부터 우주가 유출에 의해 생겨났고, 그 유출된 존재를 에온(Aeon)이라고 말하는데, 이 에온 중에서 최하위층에서 물질이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이 최하위층의 에온을 데미우르고스(δημιουργός, Demiurgos), 곧 ‘세계의 형성자’라고 부른다.

구원이란 악의 존재와 악의 세력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데, 물질을 근본적으로 죄악시하고, 물질로부터의 해방을 구원으로 보았다. 즉 해방은 물질로부터 떠나 최고신의 충만한 광명, 곧 완전한 세계인 프레로마(πλἠρωμα, Pleroma)로의 복귀를 의미한다.

영지주의 사상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정리한다면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혼합주의적 체계라는 점이다. 영지주의의 근본사상은 인도, 바벨론, 페르시아 등 동양의 이원론 사상과 헬라 사상, 그리고 유대교의 필로(Philo), 기독교 사상이 혼합된 혼합주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이원론(Dualism)사상이다. 영지주의는 신과 인간, 영혼과 물질들을 이원론으로 파악한다. 물질세계는 악의 원리에 의해 지배되고, 선한 신에 의해 지배되는 완전한 정신의 세계인 플레로마와는 대립된다고 보았다. 즉 신神은 선하지만, 물질物質은 악하다고 보았고, 신은 물질세계와 무관하다고 믿었다. 또 악이란 물질로부터 나온다고 보아 선하신 신은 물질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셋째, 앞에서 말한 바처럼 지식에 의한 구원 사상을 견지한다. 이들의 주된 관심은 구원인데, 육체는 정신의 감옥으로 보았다. 어떻게 인간은 신과의 교제를 회복할 수 있는가? 순수한 영의 세계로 복귀할 수 있을까? 이것이 저들의 주된 관심사였다.

이들은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떤 특수한 지식을 소유해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지식은 비교적秘敎的 혹은 신비적인 것으로서 특수계층에 속하는 영적인(pneumatic or spiritual) 사람만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다시 말하면 영지주의가 말하는 ‘참된 지식’(Gnosis)은 합리적인 인식과 사실적인 교훈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고, 신비적 몰두와 소정의 종교적 실천으로 얻어지는 것이었다. 그들은 비법(秘法)의 계시를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영지주의자들은 진리의 이해도에 따라 사람을 3등급, 곧 아피스토이(ἀπίστοι), 프슈키코이(ψεύχκοι), 프뉴마티코이(πνευματικοι)로 구분한다. 아피스토이는 하층부를 이루는 다수의 사람을 가리키는데, 진리를 이해할 희망이 전혀 없는 동물적 인간을 지칭하는데, 이를 물질적인 인간(Hylics)이라고 부른다.

프슈키코이는 동물적 인간이기는 하나 신앙을 가질 수 있는 자를 의미하여 정신적 인간(Psychics)이라고 부른다. 프뉴마티코이는 최상층부로 지식을 소유한 자, 진리를 터득할 수 있는 자를 지칭한다. 이를 영적인 인간(Pneumatics)이라고 부른다.

이런 구분은 근본적으로 인간은 정신(혼)과 물질(육체)의 두 요소로 구성된 존재가 아니라 영(스피릿, 프네우마)·정신(영혼, 소울, 멘탈, 사이키)·물질(육체)의 세 요소로 구성된 존재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영지주의자들은 이처럼 모든 사람을 3등급으로 나누는데, 영지주의자들이야말로 그노시스를 가질 수 있으며 구원을 성취할 가능성이 가장 큰 영적인 부류에 속한다고 믿고 있다. 반면에 다른 기독교인들은 정신적인 인간 부류에 속한다고 보았다.

비기독교 영지주의자들이 있었는가 하면 기독교적 영지주의자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 곧 성육신을 부인하였다. 이들은 이원론에 따라 육체와 물질은 악이라고 보았으므로 그리스도는 육체를 가질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의 육체는 유령에 지나지 않았으며 육체를 가지신 것처럼 보였을 따름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소위 가현설(假顯說, Docetism)이다.

가현설의 Docetism이란 말은 ‘...처럼 보인다’는 뜻의 헬라어 dokein에서 유래하였다. 어떤 경우에는 예수는 육체를 가졌으나 우리들의 육체와는 다른 영체(靈體, Spiritual Matter)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초대교회 아리우스(Arius)나 루독프 불트만(R. Bultmann)에게서 이와 유사한 사상을 엿볼 수 있다.

결국 물질세계가 비실제적이며 본질적으로 악하다는 영지주의의 견해는 2세기 전체를 통해서 기독교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되었는데, 결국 이들은 하나님의 창조, 성육신, 부활 등 기독교의 핵심 교의를 부인했기 때문이다. 즉 영지주의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나, 하나님과의 교제가 불가능하다고 보았고, 그리스도는 몸을 지니지 않았고, 따라서 그는 십자가에 죽지도 않았고, 부활도 부인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즉 영지주의는 복음의 주된 메시지를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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