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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상담자로서의 예수님
현대종교 | 한성열 교수
2022년 06월 29일 08시 49분 입력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는 앞으로 오실 메시아가 “기묘자 모사”라고 소개하고 있다(이사야 9장 6절, 개역개정). 영어성경에서는 “Wonderful Counselor”라고 소개하고 있다. ‘counselor’는 자문가 또는 상담자라고 번역할 수 있다. 지난번에 탁월한 자문가로서의 예수님을 소개하였다. 이번에는 “탁월한 상담자”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자.

상담은 내담자가 문제를 갖고 있는 것까진 자문과 같은데, 문제의 원인과 그 해결책을 내담자가 주도적으로 찾아 나가는 것이라는 점에서 자문과 다르다. 내담자가 자기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것은 일견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만약 내담자가 스스로 찾을 수 있다면 상담받을 필요조차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담자가 스스로 찾아야 하는데 혼자서는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우리 삶이 괴로운 이유이다. 이 점이 바로 상담이 필요한 이유이다.

자문을 해줄 수 없는 인생 문제는 당연히 당사자가 풀어야 한다. 그러나 그 문제를 홀로 풀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를 괴롭히는 인생 문제는 지식이나 정보가 부족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힘든 문제의 원인은 감정의 문제이다. 그리고 더욱 혼란스러운 것은 그 감정의 존재 여부와 실체에 대해 당사자는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지각(知覺)하지 못한 감정’이다. 감정 자체가 지식이나 정보보다 애매하기 때문에 분명하게 식별하기 쉽지 않다. 더군다나 많은 경우, 이마저도 의식적으로 지각하지 못하고, 소위 ‘무의식’인 경우가 많다. 무의식이라는 것은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지각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내담자가 자신이 감정을 정확히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혼자 문제를 풀기 더욱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상담자의 역할은 무엇일까? 내담자를 괴롭히는 감정은 엉킨 실타래와 비슷하다. 실타래는 ‘실을 쉽게 풀 수 있도록 한데 뭉치거나 감아 놓은 것’이다. 실타래가 크더라도 가지런히 잘 감겨있으면 쉽게 풀 수 있지만 실타래가 엉켜있으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풀기 어렵다. 더욱이 그 감정이 무의식이라면 실타래를 풀기 더 어려워진다. 실타래가 있다는 것조차 분명히 인식되지 않기 때문이다.

상담은 다른 말로 하면 내담자가 자신의 감정의 실타래에서 실마리를 찾아 스스로 풀어나갈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것이다. 내담자는 혼자서는 자신의 감정의 실타래를 풀 수 없지만, 상담자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엉켜있는 감정의 실타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면 그 실타래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갈 수 있다.

실마리를 찾기만 하면 아무리 엉켜있어도 시간이 걸릴 뿐 마침내는 실타래를 풀 수 있다. 혼자서는 찾을 수 없었던 무의식적 감정의 실마리를 상담자와의 협업(協業)을 통해 내담자가 찾아 나가는 것이 상담이다. 그래서 상담은 내담자가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가지고 그 원인과 해결책을 찾아가는 활동이라고 하는 것이다.

전에 상담했던 한 학생은 소위 머리가 참 좋았다. 하지만 항상 성적은 최하위권이었다. 부모가 아무리 야단을 쳐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상담의 결과, 이 학생은 부모에 대한 반감 때문에 오히려 부모가 원하는 공부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속마음을 알아내고, 그 속마음을 공감해주고 나서야 이 학생은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혼하기로 결정하고 법원에 이혼서류를 접수한 분들에게 판사가 ‘숙려(熟慮)’ 기간을 권한다. 그 기간 동안 부부상담을 받으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한다. 나이가 한 50세 정도 된 부부와 상담을 하였다. 불화의 원인은 20여 년 전에 한 남편의 외도였다.

그 당시 부인은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의 시중을 들던 기간이었다. 상담 중에 남편이 부인에게 “내가 여러 번 잘못했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느냐? 20년도 넘은 일인데 얼마나 더 말해야 하느냐?”고 오히려 짜증을 냈다. 그랬더니 부인이 “나는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어. 당신은 치매 걸린 어머니를 나한테 맡겨놓고 젊은 년이랑 바람 피웠어. 그런데 잘못했다고 몇 번 말한다고 내가 화가 풀리냐? 나는 바로 어제 일 같아. 나는 아직도 화가 안 풀렸어”

화를 풀어야 한다는 걸 부인이 몰라서 안 푸는 게 아니다. 머리로는 다 알고 있다. 하지만 마음으로는 아직 화를 풀지 못한 것이다. 지금도 남편이 바람피운 생각만 하면 부인의 표현에 의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아” 속에서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다. 이럴 경우에는 사과나 회유나 설득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부인의 마음속에 있는 화를 상담으로 풀어주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문만이 아니라 상담을 해주신다. 상담(相談)은 한자로 풀어보면 ‘상대방(相)의 마음속에 있는 화火를 대화言로 풀어주는 것’이다. 화가 났으면 화를 풀어야 하는데 “화는 나쁜 거니까 내지 말라”라고 충고하거나 비난하면 화를 효과적으로 풀 수 없다.

예수님은 ‘탁월한 상담자’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동안 살면서 마음에 쌓인 수고하고 무거운 짐, 즉 화난 마음의 소리를 들어주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자주 부르는 찬송가에도 이런 내용이 많이 담겨있다. 예를 들면, 새찬송가 365장의 가사는 이렇다.

“마음속에 근심 있는 사람과 슬픈 마음 있을 때(1절)/ 눈물 나며 깊은 한숨 쉴 때와 은밀한 죄가 있을 때(2절)/ 괴로움과 두려움 있을 때와 하늘나라 바라보는 사람(3절)/ 죽음 앞에 겁을 내는 사람과 하늘나라 바라보는 사람(4절)/ 주 예수 앞에 다 아뢰어라 주 우리의 친구니 무엇이나 근심하지 말고 주 예수께 아뢰라(후렴)”

이런 모든 것들을 다 예수님께 상담받으면 친구(상담자)이신 예수님께서 꾸짖거나 정죄하지 않으시고 다 들어주시고 해결해주신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우리가 쉼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큰 특권은 ‘탁월한 상담자’에게 언제 어디서나 무료로 상담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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