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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오버아머가우 마을의 코로나 교훈
임기영 교수
2022년 06월 30일 09시 39분 입력

코로나19 발생 직전 독일에서 개최된 학회에 참석했다가 오버아머가우(Oberammergau)라는 작은 도시를 방문했다. 이 도시는 뮌헨에서 남서쪽으로 1시간 정도 거리에 있고 작은 마을로, 주민들은 관광과 목각 공예품을 만들어서 생활한다.

이 작은 도시는 1634년부터 10년에 한 번씩 예수 수난극(Passion Play)을 공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연극의 기원은 16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역 출신 청년 중의 하나가 전쟁에 출전했다가 부상을 입고 돌아왔는데 불행히도 가래톳 흑사병(bubonic plague)에 전염된 상태였다. 전염병이 이 지역에 확산되면서 많은 사람이 사망하기 시작했다.

▲예수 수난극 (출처: 케임브리지대학교)
질병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계속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게 되자, 마을 사람들은 하나님께 매달리기 시작했다. “예수님, 예수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 예수님, 우리를 구해 주옵소서.” 하지만 계속 상황이 호전되지 않자, 사람들은 마침내 하나님께 서원을 올리게 된다. 하나님이 자신들을 전염병에서 구해주시면 10년마다 예수의 삶과 죽음을 다루는 공연을 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리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서 1634년 첫 번째 예수 수난극이 시작되었다. 서원한 후에 사망자가 점점 줄어들었다고 한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지금까지 400년 동안 10년에 한 번씩 수난극 연극을 계속해오고 있다.

지금까지 코로나 바이러스로 많은 사람이 죽었고, 더 많은 사람이 고통당하고 있다. 사람들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질문하면서, 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는 것에 대해 슬퍼하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하고,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으며,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해 보급하면서 대처에 힘을 다하고 있다. 그리고 백신과 치료제로 세계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희망하고 있다.

코로나는 왜 발생했을까? 과연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통해 위기를 잘 극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질병의 기원을 과학적으로 밝히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동안의 밝혀진 증거들을 이용하여 역으로 추적하면 질병이 처음으로 출현한 곳을 지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 질병이 발생했고 왜 수많은 사람이 죽어야 했는지를 밝히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코로나19가 인간과 야생동물과의 교류가 활발해서 우연히 생긴 인재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각성시키기 위해 개입한 것일 수도 있다. 인간들의 무책임한 활동들을 방치하셔서 이 사건이 일어났고, 이를 통해 인류를 일깨우려 하실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개입 가능성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허무맹랑하지 않음은 신명기와 이사야에서, 하나님께서 그 가능성을 분명히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폐병과 열병과 염증과 학질과 한재와 풍재와 썩는 재앙으로 너를 치시리니 이 재앙들이 너를 따라서 너를 진멸하게 할 것이라”(신28:22);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사45:7).

▲오버아머가우 마을에 세워진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나귀 타신 예수님 조형물
물론 이는 모두 다 가능성이다. 실제로 왜 코로나가 발생했고, 왜 우리가 고통당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욥기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은 이러한 질문에 대해 항상 답을 주시는 분은 아니시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인간의 비참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그동안 인류가 쌓아 올렸던 의학적인 진보를 순식간에 무용지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감염되자마자 순식간에 폐로 침투하여서 폐를 망가뜨리는 증상은 우리가 보지 못하였던 것이고 기존에 있었던 백신이나 치료제로 대처하기에는 불가항력적이었다.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서 새로운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해서 새로운 방어막으로 효과적인 대처를 하고 있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나마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더 강력한 바이러스를 보내시지 않으셨을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만든 의학적인 방어막은 항상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여기에 인간의 비참함과 한계가 발견된다. 우리는 온갖 노력으로 과학과 기술의 진보를 이루고 의학의 발전을 이루어서 생명을 연장하고 질병을 정복해 왔지만 결국에는 인간이 쌓아 올린 진보로는 자신을 완전하게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바이러스가 온 세상에 영향을 미치도록 만드셨다. 질병의 역사를 살펴봐도,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이 온 지구의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 사건은 존재하지 않았다. 과연 누가 이런 어마어마한 일들을 일으킬 수 있단 말인가? 이 사건은 마치 바벨탑을 쌓아서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인간들을 하나님께서 흩어 버리신 것 같이 하나님께서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인류 문명을 무너뜨리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심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시고 이 상황을 주관하고 계시며 이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교훈을 주시려고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솔로몬의 성전이 세워진 후, 마음으로 여호와를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성전 공간 자체를 예배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처럼(렘7:4), 편안한 삶을 추구하며 마음으로부터 하나님과 멀어진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보여주기에 코로나만큼 더 적절한 사건이 어디 있겠는가? 창업을 하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이 꿈과 이상이 되어버린 현실 속에 사는 젊은이들에게 과연 돈보다 더 중요한 새 생명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도록 만드는 사건이 어디 있겠는가? 정의가 사라지고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고아와 과부를 돌보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렘22:3) 하나님의 심판이 순식간에 임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데, 이만한 사건이 어디에 있겠는가?

우리는 백신과 치료제를 통해서 현재와 같은 위기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더 강력한 바이러스를 보내셔서 우리를 어려움에 빠뜨리게 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왜 왔고 우리가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를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분명하다. 즉 통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서 그분의 자비를 구하고, 우리를 고난에서 구원해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하는 일이다.

백신과 치료제 덕분으로 사회는 점점 일상으로 복귀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백신과 치료제는, 인간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시고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셔서 우리의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사랑이다. 인간이 만든 백신과 치료제로는 오직 우리의 육신만을 구원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백신과 치료제로는 우리의 몸과 영혼을 동시에 구원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치료법은 세상에 없다.

독일의 작은 마을 오버아머가우는 지금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다. 지난 2020년에 하려고 했다가 취소된 예수 수난극을 이번 여름에 공연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오버아머가우 마을주민들의 헌신을 보시고 그들의 마음을 받으신 것같이, 코로나 전염병의 세계적 확산을 통해,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인간의 비참함’을 동시에 깨닫고, 하나님께서 무료로 주시는 백신을 맞고자 하는 모든 백성에게 자비와 긍휼이 임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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