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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잃어버린 ‘새 하늘과 새 땅’의 복음
현대종교 | 채영삼 교수
2022년 08월 12일 09시 02분 입력

고난은 고통스럽다. 고난을 받을 때 우리는 이 고난이 빨리 지나가서, 다시 그 좋았던 옛날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하지만 고난에는 의미가 있다. 그 고난이 우리의 잘못 때문이었든지 아니면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이든지, 그 고난을 통과하면서 배운 것이 있으며 이전과는 다른 성숙해진 차원이 있을 수 있고, 또 있어야 한다. 욥의 고난이 그러했다.

욥기의 마지막에 기록된 축복이 욥기가 주는 교훈은 아니다. 그렇게 되면 고난이 별다른 가치가 없게 된다. 죽은 자녀를 새로 얻은 자녀로 대치할 수 있는가? 그래서 욥기의 결론은, 욥이 고난받기 이전보다 더 큰 축복을 받았다는 것이 아닐 것이다.

욥기의 의미는, 욥이 그 고난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에 대하여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하여, 그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것을 이제는 눈으로 보듯 보고 깨닫게 되었다는 것에 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42:5). 그 이전에는 결코 알지 못했던 하나님을,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을 통해 새롭게 깨닫고 눈으로 보듯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때에서야 욥은 무릎을 꿇었고 새로운 길을 가게 되었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하나이다”(욥42:6).

코로나19로 인한 고난의 기간이 끝나가고 있다. 이제 우리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이제 다시, 예배당으로!’라는 구호가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그러나 지금,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우리는 코로나의 고난을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되었는가?’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없다면, 우리가 받은 고난은 무익하게 될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안목’을 생각해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난 자체가 하나님의 뜻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 있다. 우리가 걸어 온 잘못된 길을 돌이키게 하실 수도 있고, 그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께서 지시하는 새로운 길을 보여주실 수도 있다. 그래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제대로 맞이하려면, 반드시 코로나 사태를 통해 드러난 일들을 겸손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복기復棋해볼 필요가 있다. 도대체, 코로나 기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가?

고난의 유익 가운데 하나는, 그 고난이 그 고난을 통과하는 ‘우리 자신’을 여지없이 폭로시킨다는 것이다. 고난에 부딪히면 그 부딪힌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코로나의 고난에 부딪혔던 우리의 교회들은 어떤 모습으로 드러났는가?

코로나19가 국가적 위기로 확산되기 시작했던 첫해인 2020년 2월, 한국사회와 교계를 뒤집었던 가장 큰 사건은 대구에서 발발한 신천지 이단의 집단적 감염 사태였다. 대구 신천지 교인 9334명 가운데 무려 1248명이 확진되었고, 그중 670명이 행방불명이 되어 온 사회가 불안에 떨었던 시기였다.

이 사건 앞에서 한국교회는 신천지는 이단이며 정통교회와는 다른 집단이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지만, 한국 사회는 ‘신천지예수교’라는 공식명칭에서처럼 신천지 사태를 그저 개신교 일부의 파행적인 행태로 치부하는 분위기였다. 정통교회가 신천지를 이단으로 규정했다고 해도, 교회나 교리를 전혀 모르는 일반 시민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사실 교회 역시, 그런 이단이 ‘정통교회’라는 우리 자신을 숙주host 삼아 기생parasite해왔다는 사실까지 부인하기는 힘들었다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의 고난이 우리 자신의 실체를 폭로했던 첫 번째 모습은, 한국교회 안에 있는 신천지 이단의 실체와 그 규모의 놀라움이었다. 어떻게 하다가, 한국교회는 신천지라는 이단이 기생하는 숙주의 노릇을 해왔던가? 어쩌다가 한국교회는 신천지라는 이단을 이처럼 비대하게 키워놓고 말았는가? 그것은 교회가 단지 신천지를 이단으로 규정하면 벗어버릴 수 있는 책임이나, 그저 쉽사리 떨쳐버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교회사를 돌아보면, 정통교회를 공격하고 뒤흔들던 당대의 주요 이단들의 활동은 모두, 그 시대의 정통교회가 외면하고 잃어버렸던 교리, 복음의 어떤 부분을 가져다가, 그것을 거짓으로 왜곡하고 뒤바꾸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훼방한 역사였음을 알게 된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그런 이단조차 사용하셔서, 그 시대에 복음을 잊은 교회, 어둠 속에 잠자는 교회를 흔들어 깨우셔서 결국 그의 교회를 더 온전케 하셨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한국교회의 가장 큰 이단인 신천지가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다는 사실은, ‘거꾸로 말해서 그동안 한국교회가 가장 외면해왔던 복음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를 명확히 드러낸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신천지 이단의 등장과 급속한 성장은 그 자체로 비극적이고 충격적이었지만, 동시에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 땅의 교회들을 일깨우시고 돌이켜 바로 세우시고자 하는 간섭이요 섭리였다고 할 수 있다. 여기가 우리가 반드시 엎드려 통회하고 돌이켜야 하는 부분이다.

바로 여기에, 그동안 우리가 걸어온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 새 길로 나아갈 수 있는 바로 그 갈림길이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발발한 초기에 한국교회의 가장 큰 이단이 신천지였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은, 그동안 한국교회에 ‘신천신지新天新地, 즉 새 하늘과 새 땅’의 복음이 완전히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보여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라는 거대한 광풍이 덮쳐오기 전에, 우리들의 교회는 이 땅에서 ‘어떤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쳤는가? 70년대 이후 교회성장 시기부터 줄곧, ‘오직 믿음, 오직 은혜’로 구원을 확신하고 천당은 가는 것이니, 이 땅에서는 물질의 복, 건강의 복, 자녀의 복을 받으며 어떻게든 성공한다는 세속적 가르침을 ‘순전한 복음’, ‘총체적인 복음’인 듯 퍼뜨리지 않았는가? 도대체 복음이란 무엇인가?

정말 이 땅의 교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가져오셨고, 지금도 가져오고 계시며, 장차 온전히 이루실 ‘의義가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의 복음, 그 종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고 가르쳤는가?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서 정말 ‘나그네와 행인들’이었는가? 그래서 세상 사람들 앞에서는 진실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하는 것이 목적인 ‘제사장 공동체’가 되어왔는가? 참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의 복음이야말로, 한국교회가 가장 외면하고 잃어버린 복음이 아니었던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새로운 길을 간다는 것은, 그 뼈아픈 고난의 기간 이전에 걸어왔던 잘못된 길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전제한다. 벗어나지 못하면, 결국 같은 잘못된 길을 계속 가게 될 것이고, 어쩌면 또 다른 고난을 반복할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새로운 길을 갈 것이 아니라면, 이 모든 고난이 다 무슨 유익이 있는가?

교회가 복음의 일부를 버리면, 거짓의 아비 마귀는 그것을 가져다가 거짓으로 바꾸고 거짓 선지자의 입에 넣어 이단을 만들어 버린다. 그러니 이 시대 이단의 주장을 들여다보면, 교회가 잃어버린 복음이 무엇이었는지도 명확해지지 않겠는가. 교회가 복음을 왜곡하면, 교회 자신이 왜곡된다. 교회가 복음을 축소하거나 더럽히면, 교회 자체가 축소되고 더럽혀진다. 교회의 회복이, 복음의 회복에서 시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복음을 회복하자. 여기에, 우리가 가야 할 새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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