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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가르침’을 분별하며 ‘신적 성품’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
현대종교 | 채영삼 교수
2022년 11월 30일 08시 30분 입력

가끔 주변에서 별것 아닌 병 때문에 병원에 들렀다가, 우연히 암(癌)과 같은 심각한 질병을 발견했다는 경험담을 듣곤 한다.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코로나19의 고난도 교회에게 이러한 기회를 제공했다. 온 국민이 맞서 싸운 것은 코로나19라는 악질 바이러스였지만, 교회에게는 이보다 더한 악질 바이러스 같은 ‘이단’이나 ‘거짓교사들’의 정체가 확연히 드러난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어떻게’ 드러났는가? 이단이나 거짓교사들의 그 악한 가르침들이 맺는 ‘열매들’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이 어디가 어떻게 ‘거짓’인지는, 그 교리적인 내용들을 검토해야하기 때문에 쉽게 눈에 띄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거짓 가르침들’은 반드시, 불의(不義)와 탐욕, 방탕과 파괴와 같은 ‘악덕’(惡德)들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어떤 나무가 뿌리부터 썩은 나쁜 나무인지를 보려면, 그 열매를 보고 확인할 수 있다는 주님의 말씀 그대로이다.

코로나19가 한창 위세를 떨치고 있었을 때, 신천지 이단뿐 아니라 교회 내에서도 ‘상식’과 ‘양심’에도 어긋나며, 교회와 사회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거짓 교사들이나 일부 ‘광신적 단체들’이 신문이나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기도 했다. 이단은 교회 밖에 있지만, 거짓 교사들은 교회 안에서 복음 전도의 길을 훼방하고, 하나님의 이름과 명예를 추락시키며, 기독교를 상식에도 못 미치는 ‘비양심적이고 탐욕적인’ 종교로 인식하게 만든다.

저들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 침투해 들어와서 몸 전체를 병들게 하는 ‘거짓의 악질 바이러스들’ 같은 자들인 것이다. 성도는 저들의 거짓 가르침에서 돌아서야만 한다. 코로나19에 걸리지 않도록 백신을 여러 번이나 맞고, 마스크를 쓰며, 거리두기를 꾸준히 실천하지 않는가. 영적으로도 마찬가지다. 교회는 거짓 교사들의 거짓 가르침이라는 악질 바이러스에 대비하여, 성경이 가르치는 거짓 교사들에 대한 분별과 대책을 부지런히 배우고 또 가르쳐야 한다.​

특히, 베드로후서나 유다서를 살펴보면, 거짓 교사들의 특징이 뚜렷이 나타난다. 저들은 ‘교만, 탐욕, 방탕’이 그 부패한 심령의 근본적인 동기요 목적인 자들이다. 이렇게 말하면 분별하기 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거짓 교사들은 신앙고백도 하고 교회 안에 들어와 활동하며, 게다가 설교하고 가르치며 양 무리를 지도하는 자리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 속은 양 잡아먹는 이리들이지만, 겉으로는 양의 거죽을 뒤집어쓰고 있기 때문에, 양들이 쉽게 속고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거짓 교사를 어떻게 분별하는가? 우선, 무턱대고 ‘아멘, 아멘, 할렐루야’ 하지 말라. 성도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묵상하고 공부하고 기도하고 실천하기를 거듭하면서, 자신이 직접 말씀의 빛 가운데 거하기를 힘써야만 한다. 말씀을 맡아 설교하고 가르치는 목회자에게 순복하라. 다만, 그 설교하고 가르치는 그 말씀이 오직 성경에 합당한 것일 때에만 그렇게 해야 한다.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교회의 주인이시다. 오직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목회자와 양 무리 모두의 진짜 ‘담임목사님’이시다.

오직 성경의 권위를 최고로 높이는 목회자를 따라야 한다. ‘교회 안에서는 성경보다 내 말이 더 중요하다’고 우기는 목회자를 의심하고 멀리해야 한다. 성경을 해석할 때, 그 해석의 열쇠가 ‘오직 나에게만 있다’고 주장하는 자는 필연코 이단이다. 성령께서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들 안에, 교회 안에 거하신다. 성경을 기록하신 성령께서는 예수 믿는 당신 안에도 거하시며, 당신이 그 말씀 해석이 진리인지 아닌지 알 수 있도록 기름 부으셨다.

어느 특정한 한 사람에게만 진리의 지식을 주신 것이 아니라, 그 아들을 믿는 교회 공동체 전체에게 주신 것이다. 성경의 교리나 진리는 ‘사적’(私的)인 것이 아니라, ‘공적’(公的)인 진리이다. ‘나만 성경해석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에게서 속히 떠나라.

오늘날,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거짓 교사들의 거짓 가르침에 상처받고, 교회를 떠나 방황하고 있는지 모른다. 교회는 전력을 다해, 거짓 교사들을 분별하고, 이에서 돌이켜 ‘자신을 지켜내야’ 한다. 거짓 교사인지 아닌지 잘 분별이 되지 않으면, 그들이 선택하는 결과 곧 그 행위의 열매를 보라. 거짓 교사들은, 교인이 실족하여 믿음에서 떠나든지 말든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두쪽이 나고 수치를 당하든지 말든지,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받든지 말든지, 복음 전도의 길이 막히든지 말든지, ‘자신의 탐욕’을 절대로 놓지 않는다.

우리가 ‘선택’하는 그것이 곧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며, 우리가 사랑하는 그것이 곧 우리가 ‘예배’하는 신(神)이다. 거짓 교사들이 무어라고 설교하며 가르치든지,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스런 이름이나 복음이나 교회가 아니라, ‘자기가 모은 재산과 권력’인 것이다. 그들에게서 속히 돌아서야 한다. 저들의 심판과 멸망에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 저들은 영원히 캄캄한 어둠 속에 갇힌 자들이기 때문이다(유1:13).

그리스도인이 거짓 교사들의 거짓 가르침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면’, 첫째, 하나님의 말씀이 ‘빛’이고 우리의 경험, 지식, 심령이 ‘어둠’이라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벧후1:19-21). 그래야 자신에게 속지 않고, 아무에게도 속지 않으며, 말씀의 빛, 진리와 생명과 사랑의 빛 가운데서 걸어갈 수 있다. 둘째로는, 그 말씀의 생명을 먹고 마시며, 계속해서 ‘신적 성품’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벧후1:4-11).

거짓 교사들의 거짓 가르침은 ‘지식’으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서와 경험과 의지를 포함한 삶의 전 영역을 통해 침투해 들어오는, 거짓되고 더럽고 썩어지고 허무한 세력이다. 단지 ‘지식’의 차원에서 교리 공부만으로 저항하기 어렵다. 지식적인 분별이 우선적으로 필요하지만, 정서적으로, 의지적으로, 경험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성품’(性品)적으로 이런 거짓과 부패한 세력을 거부하고 맞서 싸울 힘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참된 지식은, ‘생명과 경건’을 그 특징으로 하는 ‘신적(神的) 성품’에 참여하게 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열매는, 직분이나 제자훈련 수료증이 아니다.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의 열매는, 그 사람의 신적 성품 자체이다. 하나님을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은, 신학자나 목사가 아니라, 신적 성품에 성장한 그리스도인이다. 누가 믿음뿐 아니라, ‘덕’을 갖춘 그리스도인인가? 거짓 교사들은 믿음으로 산을 움직이고 병자를 낫게 하고 하나님의 보좌를 흔든다고 떠벌리지만, 세상 앞에 교회의 ‘덕’을 무너뜨리지 않던가.

누가 ‘덕’을 세우기 위한 ‘지식, 지혜’를 가진 자인가? 누가 ‘지식’에 ‘절제’를 발휘하는 자인가? 누가 ‘절제’에 ‘인내’를, ‘인내’를 통해 세상을 이기는 참된 ‘경건’에 이르는 자인가? 경건보다 나은 경건은 ‘형제 우애’이고, 형제 우애의 절정은 ‘사랑’이다. 그러므로 ‘이웃 사랑’이 없는데, 꿈을 꾼다며 직통 계시 운운하고, 입신(入神)을 한다느니 떠들어도, 모두 거짓교사들의 허망한 속임수일 뿐이다.

거짓이 난무하는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성경 말씀의 빛’ 안에 거할 뿐 아니라, 그 말씀의 생명과 빛으로 채워진 ‘신적 성품’의 교회가 필요하다. 사실, ‘신적 성품’에 참여하는 것이, 교회의 가장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목적이다. 그런 성도들이야말로, 이미 왔고, 오고 있고, 장차 온전히 임할 ‘새 하늘과 새 땅’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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