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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의 이단(異端)과 이설(異說) (9)
현대종교 | 이상규 교수
2022년 12월 27일 08시 20분 입력

9. 이단들의 예언운동에 대한 교회의 입장

참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야 하며, 그리스도인은 말씀에 따라 살아야 한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장 3절에서는,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4장 6절에서는, “기록된 말씀밖에 넘어가지 말라”고 경고하고,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에서는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하여 기록된 계시의 가감(加減)을 금하고 있다.

특히 마태복음 24장 36절, 사도행전 1장 7절,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절 등에서는 재림과 종말에 대한 거짓계시와 거짓예언을 경고하고 있다. 몬타누스주의는 2세기적 상황에서 몇 가지 점에서 긍정적인 기여를 하였다고 할지라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의 완전성과 충족성을 신뢰하지 않고 계시의 계속성을 주장하여, 재림과 종말에 관한 거짓된 예언운동을 전개한 일은 가장 큰 과오였다.

미국의 침례교 계통의 교회사학자인 알버트 뉴만(Albert Henry Newman, 1852-1933)은 몬타누스파에 대해 매우 호의적인 평가를 한 바 있다. “몬타누스주의는 노스틱주의와 그 밖의 여러 이교사상의 영향을 받아 교회에 침투되고 있는 이질적 사상에 대한 반동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몬타누스파는 신앙보다는 지식을 강조하는 사상을 반대하였으며, 교회의 규율이 해이해짐에 따라 그리스도인의 도덕이 문란해지는 것을 막으려 하였다.

또 교회의 세속화를 막아 보려고 노력하였고, 특히, 교회 내의 계급적 교권을 막아 보려고 하였다.” 뉴만은 몬타누스운동의 긍정적 측면과 더불어 이들의 예언과 거짓계시운동의 문제점을 정당하게 취급하지 못하고 있다. 또 필립 샤프는, “몬타누스주의는 원래는 신앙으로부터 떠난 것이 아니다. 단지 초대교회의 실제적 도덕과 규율을 지나치게 병적으로 강조했을 따름이다.

그리고 이것은 노스틱의 합리주의와 가톨릭교회의 나태함에 대항하여 지나치게 초자연주의적이었고 퓨리탄적이었다”라고 하면서 몬타누스주의의 과도한 금욕사상, 윤리적 엄격성 등은 적절하게 지적했으나 이보다 더욱 심각한 이단적 성격, 곧 이들의 거짓계시운동에 대해서는 적절하게 지적하지 않고 있다.

교회 역사에 나타난 모든 이단운동은 부분적으로는 긍정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 또 이단들의 생활에서 세상과 구별된 생활이나 성결, 혹은 윤리성을 지니고 있다 할지라도 이들 사상 속에 있는 이단적 교리와 오도된 가르침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거짓계시는 교회사에서 볼 때 항상 유혹적이었고 호기심을 끄는 것이었다.

또 이러한 거짓계시를 발하는 이단은 교회가 세속화되거나 영적 침체가 가중될 때, 그리고 역사의 변혁기에 나타났던 점을 고려해 볼 때 거짓계시는 항상 새로운 어떤 것보다 적실한 것으로 이해되었고, 따라서 정통교회를 위협하는 도전이었음을 알게 된다.

초기 기독교에서 (그 이후 역사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예언의 문제는 중요한 관심사였다. 일반적으로 개혁교회는 계시와 관련하여 예언의 은사는 종결되었다고 보지만, 초기 기독교회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몬타누스 이단을 경험하기 이전 초기 기독교회에서 예언이나 예언의 기능은 중시되었다. 그것이 꿈(dream)이든 환상(visions)이든 예언적 신탁(prophetic oracles)이든 혹은 다른 형태이든 사적(私的)인 예언이 사라지지 않았다. 비록 예수님께서 거짓예언(자)의 출현을 경고한 바 있고(마7:15-22), 사도 요한 또한 유사한 경고를 한 바 있으나(요일4:1-6), 예언활동이 1세기 말까지도 계속되었다. 왜 그랬을까?

예언활동이 1세기 말까지 이어졌던 이유는 사도들에게도 그런 활동이 있었다고 보았기 때문에 사도 이후의 시기에도 예언활동이 있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베드로는 환상을 본 바 있고(행10:9-20, 11:1-12), 바울도 고린도 교인들 가운데서(고전12-14), 그리고 데살로니가 교인 가운데서(살전5:19-22) 예언활동을 인정했다. 그래서 1세기 말과 2세기 초엽에 기록된 것으로 알려진 ‘디다케(Didache)’는 예언활동을 포함하는 목회(prophetic ministry)를 정당화하는 여지를 남기기도 했다.

예컨대, ‘디다케’ 11장 8절에서 “영으로 말하는 모든 이가 다 선지자는 아닙니다”라고 말하는데 영으로 예언하는 이들이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는 제2세기 첫 20년을 시작하는 시기에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도 “큰 소리로, 곧 하나님의 소리로 외쳤다”고 하여 예언했던 경험을 말한 바 있다. 이그나티우스의 서신보다 약간 후기 로마에서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 헤르마스의 ‘목자’(The Shepherd of Hermas)에는 많은 환상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에서는 참된 예언과 거짓된 예언을 구분하는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을 사도들의 기록(apostolic writings)과 동일시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분명하게 정리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레나이우스는 이 책을 ‘그 책’(hē graphē) 혹은 ‘성경’(scriptura)이라고 불렀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이 점을 그의 ‘잡록’(Stromata)에서 거듭 인용하였고, 페르페투아(Perpetua)의 환상도 헤르마스의 목자에서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부들의 문헌에는 이 외에도 2세기까지 교회 공동체에서 예언활동이 있어왔음을 증거하고 있다. 크로네(T. M. Crone)는 두 가지 예언 전통이 있어왔다고 말했는데, 그 첫째는 유대교적 배경의 아포칼립피시즘(apocalypticism)이고, 다른 하나는 기독교의 전개과정에서 나타난 헬라화의 영향이라고 지적했다. 초기 기독교에서 예언활동이 반드시 부정적으로 정죄되지는 않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예언은 일반적으로 용인되었고,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증거, 곧 ‘계속적 계시’(continuing revelation)로 받아들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몬타누스파의 거짓계시 이단운동은 교회에서의 사적 예언활동의 문제점을 깨닫게 해 주었다. 즉 교회가 이런 예언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이의 문제점을 깨닫게 된 것은 몬타누스파의 거짓예언을 겪고 난 이후였다. 성경 계시의 연속으로서의 예언은 하나님의 궁극적 로고스로서(as the ultimate logos of God, 요1:1-4, 14, 히1:1-4)의 그리스도를 반역하는 것이고, 그것은 사도적 신앙으로부터 이탈이며, 종결된 정경(closed canon)인 성경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몬타니스주의의 거짓예언은 초기 기독교에서 사적 예언이 갖는 위험성을 깨닫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이다.

오늘날에도 기록된 66권의 성경 외에도 사적인 계시(private revelation)가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이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미국의 피터 와그너 같은 이들이다. 와그너의 동료들 중 만스필드는, “하나님께서는 개인적인 예언자들만이 아니라, 예언하는 사람들을 일으키고 계신다”고 까지 말한다.

캔사스 시티의 국제기도의 집(International House of Prayer 대표 마이크 비클)도 계시의 계속성을 말하고 있다. 이런 입장은 개혁신학에서 가르친 바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이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에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자신의 뜻을 계시해 주시던 과거의 방식들은 이제 중단되었다”고 단언하면서 “이 성경에다 성령의 새로운 계시에 의해서든 아니면 인간들의 전통에 의해서이든 아무것도 어느 때를 막론하고 더 첨가할 수가 없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정리하면 몬타누스 이단은 사적 계시의 문제점을 교회에 일깨워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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