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보기 작게보기
페이스북
초대교회의 이단(異端)과 이설(異說) (10)
현대종교 | 이상규 교수
2023년 01월 27일 09시 50분 입력

10. 이단들의 활동에 대한 교회의 대응

앞에서 초대교회에 나타난 여러 이단들의 활동에 대해 소개했는데, 어느 때나 마찬가지이지만 이단과 이단 집단은 정통교회에 상당한 위협이었다. 어떤 점에서 이단의 활동은 물리적인 박해보다 더 위협적이었다. 이단의 거짓된 가르침은 교회의 기초를 허물고 기독교 신앙을 왜곡하거나 변질시켰기 때문이다.

외부적인 박해는 교회를 순수하게 하거나 내부적 결속을 강화시켜 주지만 이단은 교회의 순수성을 파괴하고 내부 분열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단이 출현했을 때 교회는 어떻게 대처하였을까? 유스토 곤잘레스 등이 지적한 바처럼, 교회는 정경(正經)의 집성과 신경(信經)의 제정에 힘쓰고, 감독의 권위를 강화하고 사도적 전통의 계승(傳承) 이론을 발전시켰다. 이에 대하여 차례로 살펴보자.

이단의 출현에 대처한 교회의 반응

첫째, 정경의 집성을 촉진하게 되었다. 이단들의 잘못된 정경관에 대처하기 위해 교회는 받아들여야 할 책과 버려야 할 책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영지주의자들은 예수와 사도들의 비밀한 가르침이 수록되었다고 주장하는 책들을 저술하기도 했고, 마르키온은 자의적으로 정경의 범위를 제시하고 잘못된 정경관을 제시하였다.

또 몬타누스 이단은 사적(私的) 계시를 하나님의 계시인 양 절대시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는 무엇이 참된 하나님의 영감된 계시의 말씀인가를 분명하게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런 관심이 오늘 우리가 받아들이는 66권의 정경을 집성하도록 이끌어 간 것이다. 최초의 신약성경 목록이 작성된 것은 190년경의 ‘무라토리아 정경’(Muratorian Canon)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정경 목록은 18세기에 발견되었다.

이 문서는 초두가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지만 이 문서에서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사도행전, 고린도전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갈라디아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로마서, 빌레몬서, 디도서, 디모데전후서, 유다서, 요한1, 2서, 요한계시록, 베드로계시록, 그리고 솔로몬의 지혜서를 정경 목록으로 제시하였다. 이 문건을 처음 발견하여 1740년에 출판하였던 무라토리(L. A. Muratori)의 이름을 따라 ‘무라토리아 정경’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그 이후 논란이 있었지만 오늘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동일한 정경목록이 처음 제시된 것은 367년 알렉산드리아 감독 아다나시우스(Athanasius)가 쓴 부활절 편지에서였고, 북아프리카의 히포(393), 칼타고회의(397)에서도 같은 목록이 제시되어 이 책들을 정경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이단의 출현이 정경 목록을 확증하고 집성하도록 자극을 준 것이다.

신앙고백서의 제정


둘째, 신앙고백(서)의 제정에 영향을 주었다. 신조 혹은 신앙고백이란 개인이나 집단, 혹은 교회공동체가 그 믿는 바를 일정한 형식의 문서로 표현한 것을 의미하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성경의 가르침을 요약한 신앙의 준칙(Rule of Faith, Regula Fidei)이자 정통과 이단을 구분해 주는 기준이 된다.

교회가 외부적인 도전, 특히 그 믿는 바에 대한 공격을 받게 될 때 교회가 믿는 신앙을 수호하기 위해 신앙고백문서를 제시해 왔는데, 그 첫 결실이 사도신경이었다. 사도신경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내가 믿는다”는 뜻의 라틴어(Credo in Deum omnipotentem)로 시작된다. 신앙의 상징으로 불린 이 문서는 150년경 로마에서 기본 골격이 갖추어졌는데, 처음에는 수세(受洗) 대상자의 신앙고백(baptismal formula)으로 사용되었다. 세례의식은 교회에 입회의식(入會儀式)이었다.

서방교회는 오랫동안 사도신경은 열두 사도가 한마디씩 고백한 것이 모아져서 지금의 사도신경이 되었다고 믿어 왔으나 15세기의 문헌학자 로렌조 발라(Lorenzo Valla, 1406-1457)에 의해 사실이 아님이 증명되었다. 사도신경은 이단, 특히 영지주의 이단이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부인하였을 때 자연스럽게 교회가 믿는 바를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몇 가지 단계를 거쳐 오늘의 신경으로 확정된 것이다. 화란의 조직신학자 베르코프(H. Berkhof)는 사도신경 형성 과정을 설명하면서, 이는 ‘분명한 성령의 역사’라고 주장했다.

사도신경은 어떤 한 사람이나 공의회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2세기로부터 교회 지도자들과 교회 회의에서 가르쳐진 것이 수합되고 정리되어 5세기경에는 오늘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신경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사도신경은 교회가 고백한 최초의 신조라고 할 수 있는데, 150년경에 지금의 신경과 비슷한 기본 골격이 갖추어졌다. 학자들은 신경의 본래의 내용을 구 로마신경(The Old Roman Creed)이라고 하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
그리고 그의 독생자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다
그는 성령과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장사되셨고
사흘 만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셨다
거기로부터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신다
그리고 성령과
거룩한 교회와
죄의 용서와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는다

이 초기 신경을 보면 지금의 사도신경의 골격이 갖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고, 삼위일체 교리와 분명한 기독론을 엿볼 수 있다. 이 로마신경은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고백으로 출발하는데, 후에 ‘천지를 창조하신’이 첨가된 것임을 보여 준다. 이를 통해 피조된 세계, 곧 물질세계는 악하다던가 물질 창조는 악한 신의 행위라고 주장했던 영지주의를 반박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또 한 가지 살펴볼 점은, 이 초기 신경에서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는 성령과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에 달리시고 장사되었다는 점을 고백하고 있다. 지금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다는 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를 부인하거나 ‘동정녀(처녀)’를 뜻하는 히브리어 ‘하 알마’를 ‘젊은 여성’으로 고쳐 읽음으로 이를 부인하려고 하지만 영지주의 같은 이단들에게 문제시된 것은 ‘동정녀’ 탄생이 아니라 육체를 입고 ‘나셨다’ 혹은 ‘탄생하셨다’는 사실을 부정했다.

그러나 이 초기 신경에서 예수님은 예수님께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셨고 부활하셨다는 사실 곧 예수님의 완전한 인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고백은 바로 영지주의와 같은 이단들에 대한 거부였다. 예수님의 존재는 가상이나 논리나 추론이 아니라 실제로 육신을 가지신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시고 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역사적 존재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 가지 더 고려할 점은, ‘육체의 부활’에 대한 고백이다. 이 또한 영지주의에 대한 거부였다. 영지주의자들은 인간은 선한 영혼과 악한 육체로 합성된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초기 교회는 육체는 부인되고 거부되어야 할 부담스러운 짐 같은 것이 아니라, 육체는 이 세상에서의 생활을 위해 내려주신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영지주의자들은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라고 여겼으나 정통 신앙은 그렇게 보지 않다는 점을 보여 준 것이다. 결국 이단의 출현은 정통교회로 하여금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릇된 신앙인가를 보여주는 신앙의 규칙을 만들도록 인도한 것이다.​​​​

 

 

 

- Copyrights ⓒ 월간 「현대종교」 허락없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