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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우스(Arius)와 그의 이단적 가르침
현대종교 | 이승구 교수
2023년 01월 27일 10시 04분 입력

대부분의 신앙고백서에서는 이단의 이름을 들어서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신앙고백서에서 “∼이 아니다”라고 할 때는 상당 부분 이단을 염두에 두면서 표현한 것이 많이 있다. 일단 가장 명시적으로 이단들의 이름을 들어 표현한 스코트 신앙고백서(1560) 제6장에 나타난 그 명시를 중심으로 다른 신앙고백서, 특히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내용을 비추어 이단에 대하여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

스코트 신앙고백서(1560)에서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해 고백하는 6장에서 아리우스, 마르시온, 유티케스, 네스토리우스, 그리고 성자의 신성을 부인하거나 그의 인간성에 대한 진리를 부인하거나 신성과 인성을 혼합하거나 완전히 분리하는 다른 사람들의 이단에 대해서, 그리고 22장에서 성례를 바르게 시행하는 것을 말하면서 천주교회의 신성모독적 입장을 정죄한다. 이를 중심으로 또 다른 부분에 나타난 것들을 생각하면서 하나하나 정리해 보도록 하자.

아리우스(Arius)와 그의 이단적 가르침

아리우스(250 or 256-336)는 알렉산드리아 교회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 잘못된 가르침을 잘 설교하여 당대 교회의 거의 절반이 자신의 가르침을 따르도록 만든 인물이다. 이것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따르는가 하는 것이 그것의 진리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예루살렘 회의 이후 교회 최초의 공의회라고 할 수 있는 니케아 공의회(Nicea Ecumenical Council, 325)에서 이를 정죄하고 성경적 가르침을 선언하므로 교회 안에 바른 입장이 나타나게 되었다.

아리우스는 삼위일체론과 기독론에서 잘못된 견해를 말한 이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영원 중에 처음에는 성부만 계셨었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영원 중에 “성자는 계시지 않던 때가 있었다”고 주장하였는데, 이것이 아리우스 사상을 표현하는 가장 대표적인 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성자의 온전한 신성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정죄된다.

아리우스에 의하면 성자는 하나님이 되신 하나님이라고 하며, 영원 중에서 피조된 존재로 하나님이 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의 생각을 표현하는 두 번째 어구가 성자는 “피조된 하나님”(created God)이라는 어구이다. 이와 연관된 것이 “둘째 지위의 하나님”(the God in the second rank) 등과 같은 표현이다. 그는 성부께서 온 세상의 창조를 바라보면서 성자를 영원 중에서 가장 먼저 창조했다고 하고, 시간 가운데서 성자를 통해서 온 세상을 창조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성부와 성자의 관계성을 표현할 때 성부와 성자가 똑같은 본질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식으로 표현되기에 이르렀다. 성부와 성자의 본질은 “다른 본질”이라는 것이 아리우스주의(Arianism)를 표현하는 세 번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아리우스는 성자는 존중받을 수는 있어도 예배의 대상은 아니라고 했으며, 성자의 이름으로 기도하니 성자께 기도하면 안 된다고 했다. 이것이 아리우스 주장의 네 번째 특징이자 그의 주장의 실천적 문제점이 드러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주장의 함의와 연관된 사상들

따라서 그가 명시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성령님도 영원 가운데서 처음에는 있지 않다가 성자가 있고 난 뒤에 있게 된 존재로 여겨지고, 성령님에 대해서도 예배하거나 기도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 함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아리우스의 이런 주장이 니케아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었어도 당대에도 많은 아리우스주의자들이 있었고, 그들은 6-7세기에야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반쯤은 그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지속되어서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그들을 유사 아리우스파라고 할 수 있으니 니케아 공의회 후에 “유사 본질파”가 그 대표적인 예다.

337년 콘스탄틴 대제가​​ 죽을 때 세례를 베푼 사람이 이런 입장에선 이들의 대표자인 니코데미아의 유세비우스(Eusebius of Nicomedia)였으니 그 영향력은 지속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분들은 철저한 아리우스주의자들은 아니나 성부와 성자의 본질이 동일한 것은 아니고 유사하다고 계속 주장했기 때문이다.

후대에 아리우스의 사상이 다른 형태로 나타났다. 종교개혁기에 온전한 삼위일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세르베투스(Sevetus)가 예수님에 대해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는 할 수 있어도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하다가 화형당한 것이 바로 이런 아리우스 주장과 비슷한 것을 드러낸 것이다.

그래서 당대 교회는 세르베투스가 이단이라고 한 것이다. 또한 16세기의 소시니안(Socinian)과 19-20세기의 유니태리안과 자유주의자들이 예수님을 그저 인간으로만 생각한 것은 아리우스주의보다 더 못한 이단을 드러낸 것이다. 우리 시대에 아리우스주의는 여호와의 증인이라고 할 수 있으니, 그들은 예수님이 “그 하나님”(the God)은 아니시고, 그보다는 좀 못한 “하나님”(God)이라고 주장하면서 삼위일체를 온전히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가면서

바른 교회는 오직 성경에 근거해서 성자께서는 영원부터 성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주장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니케아 공의회에서 성부와 성자의 본질이 동일본질(homoousios)이라고 한 것은 매우 귀중한 진리를 잘 선언한 것이다. 십자가 구속에 근거해서 영원하신 삼위일체를 바르게 인정하고 그 삼위일체 하나님과 영원히 계속 교제해 가는 것이 바른 교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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