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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십자가 형상은 우상숭배의 도구인가
현대종교 | 차정식 교수
2023년 02월 21일 08시 33분 입력

이단기독교 종파인 하나님의교회에서 그렇다고 주장한다. 하나님 앞에 아무런 형상도 만들지 말라는 십계명의 제2계명이 그 우선적 증거라고 제시한다. 나아가 이 십자가 형상이 바빌론 이방신상의 도구로 발견되고 페니키아 여신 아스다롯의 물건에도 등장하며 고대 이집트 신 담무즈의 부속 형상과도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로마시대 흉악범을 죽이던 처형도구였던 십자가를 기독교 신앙의 주요 상징으로 삼는 것이 끔찍하다는 주장으로 그들은 십자가 혐오감을 강화하기도 한다. 간단히 평하자면 하나님의교회에서 주장하는 이런 주장은 경기 들린 과도한 주장이고 지성이 배제된 감정적인 마녀사냥의 충동이다.

맞다. 십자가를 신의 대용으로 ‘숭배’하면 그것은 우상이 된다. 성경책도 그 책의 내용과 별도로 그 물건 자체를 절대시하여 신줏단지처럼 떠받든다면 그것도 우상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 세상에 하나님을 대체할 그 어떤 물건도 없기 때문이다. 십자가 형상은 단순한 형상이라서 페니키아의 여신 아스다롯이든, 이집트의 신 담무즈든, 그 어떤 고대 종교의 형상에도 섞여 들어가 나타날 수 있다. 이 잡듯이 자세히 뒤져보면 힌두교나 불교, 샤머니즘의 어떤 조형물이나 예술품에도 이런 형상이 나타날는지 모른다.

그만큼 십자가는 그 모양만 놓고 보면 그리 복잡하고 심오한 형상이 아니란 말이다. 예수와 직결된 십자가가 로마제국 당시 정치범을 처형하는 도구였다는 주장도 전제로서는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외적 현상과 피상적인 사실이 기독교 신앙에서 십자가가 차지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무화하거나 경홀히 여기지 않는다. 


십자가에 처음으로 역설적인 진리의 무게를 부여한 분은 다름 아닌 사도 바울이었다. 그는 이 수치스러운 처형도구인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가 구원받지 못한 채 멸망당하는 이들에게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희랍어로 skandalon)이라고 보았다. 반면 믿음의 눈으로 거기에 담긴 대속의 희생적 의미를 발견하여 그 의미를 복음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에게는 십자가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발견하는 매개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역설적인 신학적 통찰은 훗날 기독교의 복음을 표상하는 대표적인 심볼로 십자가를 떠올리게 하였고, 그것이 2000년 역사를 거치면서 오늘날 교회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정착되기에 이른 것이다.

하나님의교회에서 이러한 십자가의 상징을 경직되게 이해하여 우상숭배로 소급시켜 정죄하듯 주장하는 논리는 마치 8-9세기 동로마제국 황제 레오 3세가 주도해 일으킨 성상파괴운동을 연상시켜준다. 이 당시에도 성자의 유골이나 여러 유물을 신자들이 애지중지하면서 그것을 신앙생활의 매개로 이용하는 것을 법으로 엄금하는 황제의 칙령을 내려 큰 갈등과 분쟁을 겪은 바 있다.

이에 반발한 로마의 교황 그레고리 2세는 이탈리아의 민족적 단결을 유도하면서 이러한 금령에 대대적으로 저항하였다. 게르만족을 위시한 이민족을 신앙으로 교화하고 문맹의 이교도를 전도하는 데 기독교 성화나 성상이 나름의 순기능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예술과 문화를 나름대로 선용하여 기독교를 소개하고 전파하려는 시도에 너무 경직된 잣대로 핍박하고 억압한 레오 3세의 성상파괴 운동은 극심한 저항과 반발을 야기하여 마침내 동로마교회와 서로마교회를 분열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완고한 신앙과 지적인 경직성이 어떤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는지 역사의 교훈으로 새길만 한 사건이었다.

따라서 개신교인들이 교회당에 십자가를 주요 상징으로 사용하는 것은 성서적으로 교회사적으로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럽다. 그뿐 아니라 그 십자가를 통해 거기에 달려 인류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 십자가는 신앙생활에 유익한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웬만한 신앙 이력을 지닌 자로 사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십자가를 무슨 주술적인 도구나 마법적인 의미로 사용하거나 그 앞에 절하면서 신성화하는 엉뚱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성숙한 신앙은 어떤 가시적인 상징에 담긴 비가시적인 의미를 깊이 새길 줄 아는 데 있다. 이단 종파의 공통점은 이런 상징에 대한 독해력이 너무 취약하고 단면적인 의미에 갇혀 그 의미에 담긴 중층적 역설을 배제한다는 것이다. 이단세력을 멀리해야 신앙도 깊어지고 영성도 건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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