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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의 이단(異端)과 이설(異說) (11)
현대종교 | 이상규 교수
2023년 02월 28일 08시 41분 입력

11. 이단들의 활동에 대한 교회의 대응2

감독 권위의 강화


이단의 출현이 교회에 준 세 번째 영향은 감독의 권위가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이단들의 출현이 교회에 위협을 주었기에 교회의 조직화가 이루어지고 이단들의 거짓된 가르침에 대항하여 바른 예배, 바른 생활과 더불어 예전, 의식, 질서, 교회 생활이 강조되는 등 교회의 제도화가 촉진되었다. 특히 감독의 권위가 강조되고, 감독제도(Episcopacy)가 발전하게 되었다. 본래 신약교회에는 두가지 직분만이 존재했다. 그것이 집사(딤전3:8-11, 빌1:1)와 장로(행11:30, 14:23, 20:17, 딤전3:1-7, 딛1:5-9)였다.

장로는 감독이라고도 불렸으므로 장로와 감독은 동의어였다. 신약성경에 장로라는 말은 60여 회 나오지만, 감독이란 말은 5번 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전자는 연령적으로 연장자(elder)라는 의미에서, 후자는 그 직무와 관하여 감독하는 자(bishop, overseers)라는 의미에서 사용되었지만, 사도행전 20장 17, 28절, 디도서 1장 5, 7절 그리고 빌립보서 1장 1절 등을 보면 장로와 감독은 동의어임을 알 수 있다.

특히 빌립보서 1장 1절을 보면 바울은 빌립보교회에 “모든 성도들과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문안한다”고 인사 하면서 장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그것은 장로와 감독이 동의어였기 때문에 다시 ‘장로들에게’라고 말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 점은 감독과 장로가 동의어라는 점을 암시해 준다. 흥미로운 점은 ‘감독들에게’라고 하여 감독을 단수로 말하지 않고 복수형(ἐπίσκοποι, episkopoi)으로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빌립보지역 교회에는 한 사람이 아닌 복수의 장로 혹은 감독들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장로는 공중 예배를 인도하고 성례를 집행하고, 새신자들을 가르치고, 또 교회에 필요한 치리를 담당했다. 집사들은 구제와 봉사, 교회의 재정을 관리하는 일을 통해 장로들을 보좌했다. 다음 시기 이단이 출현하고 거짓된 가르침이 대두하자 자연스럽게 장로직의 분화가 나타나(딤전5:17) 가르치는 장로(지금의 목사)와 치리하는 장로(지금의 장로)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이단들의 활동은 감독권의 강화와 감독제도의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 이단의 분파주의 혹은 분파 활동을 막기 위해서는 감독의 권위가 강화되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2세기 이후 점진적으로 감독직이 부상했다. 즉 여러 장로들 중에 더 높은 은사와 지도력을 지닌 한 사람을 감독으로 여겨 집사와 장로보다 상위의 직분으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영지주의자들은 저들이 주장하는 전통이 사도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면서 저들만의 전통을 주장했다. 즉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자기 집단의 교사들에게 비밀스런 지혜(Gnosis)를 전수해 주었고, 그것을 계승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들이야말로 진정한 지식과 지혜와 철학을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이론에 대항하여 감독이야말로 사도들의 가르침을 계승하는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고 하면서 신앙의 규율(the Rule of faith)과 더불어 감독의 권위를 강조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2세기가 말하는 두 가지 양상, 곧 지역이나 지교회의 수장으로서 감독의 권위가 높아졌고, 다른 한 가지는 여러 감독 중에 특히 로마교회와 로마교회의 감독의 권위가 크게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 of Rome)는 직분의 사도적 계승 개념을 최초로 언급한 인물인데, 96년경에 쓴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발칸반도에 위치한 고린도교회 문제에 대해 지시하거나 권면하는 글을 남기고 있다. 이 점은 로마감독의 권위가 부상하고 있음을 암시해 준다. 이레나이우스(Irenaeus of Gaul, c.135-c.202)는 “감독 없이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했는데, 다음 시기 치프리아누스는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라고 했다. 이 말은 일차적으로 정통교회를 이탈하는 분파적 이단들에 대한 경고였다.

바른 교리의 소중성을 일깨워 주다

한 가지 더 말한다면 이단의 거짓된 가르침 때문에 바른 교리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정통교리를 강조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단이 출현함으로 교회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릇되었는가를 보다 분명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1장 19절에서 “너희 가운데서 옳다고 인정받는 자들이 드러나기 위해서는 너희 가운데 분파도 있어야 하리라”고 했는데, 이단의 출현으로 무엇이 정통인가를 드러내게 되었다는 점에서 천주교학자인 조셉 로쯔(Joseph Lortz, 1887-1975)는 이를 “다행한 과실”(Felix culpa)이라고 불렀다.

바울은 거짓 가르침을 보면서 디모데에게,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라”(딤후2:15)고 권면했다. 여기 분변하라(ὀρθοτομέω 오르도토메오)는 단어는 ‘바르게’(ὀρθός 오르도스) ‘자른다’(τέμνω, 테모오)의 합성어로서 신약에서 오직 한번 나오는 희귀한 단어인데, “똑바로 자른다”(to cut straight)는 의미가 있다. 바울은 복음의 변질을 보면서 디모데에게 ‘사도로부터 전수 받은’(딤전1:18-19, 2:7, 3:9, 4:1, 6, 16, 6:12, 20, 21) ‘바른 교훈’(1:10, 6:3)을 고수하고 가르치라고 권면했다.

교부들은 이단에 대해 비판하고 경계했는데 그 첫 인물은 안디옥의 익나치우스35-c.117였다. 그는 115년경 로마로 압송되어 가면서 7통의 편지를 남겼는데, 이 편지에서 이단을 경계하였다. 특히 그는 서머나교회에 쓴 편지에서 이단을, “사람의 모습을 한 짐승”이라고 불렀다. 그는 예수의 신성을 반대하는 에비온파(Ebionites)에 반대하여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였고, 가현설(Docetism)을 취급하면서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대속문제를 언급하였다.

그는 이단을 경계하도록 권면하면서 그리스도의 신성과 그의 성육신, 고난, 그리고 부활의 실제성을 강조하였다. 그는 가현설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수난이 거짓이라면 자신이 당하는 수난도 거짓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단이란 ‘교회의 단일성을 헤치는 교회와 상관없는 자들’이라고 평가했다. 이단을 비판하고 경계했던 또 한 사람은 이레나이우스였다.

그는 이단을, ‘바른 교리 표준으로부터의 이탈’로 규정했는데, 그의 ‘이단논박 (Adversus Haereses)’은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품이자 초기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5권으로 구성된 이 책 제1권은 영지주의자 발렌티우스의 학설을 언급하면서 비판하며 영지주의 지도자들을 소개한다.

가장 주요한 부분이 제3권인데, 신구약성경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유일성과 그리스도의 오심을 구원사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레나이우스는 거짓 선지자들을 경고했던 예수님의 마태복음 7장 15절을 인용하면서 이들을 “양의 옷을 입고 있지만 실상은 도적질 하는 늑대”라고 보았다.

또 이들은 독毒이 든 물을 청량음료인 양 선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동서남북 네 방위만 있듯이 복음서도 4권뿐이라고 말하면서 이른바 영지주의자들의 복음서를 거부했다. 그래서 이레니우스의 가장 큰 업적은 영지주의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당시 교회에 영지주의의 정체와 그 위험성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정통교리를 수호했다는 점이다.

히폴리투스(Hippolytus)는 『모든 이단을 배척함(Refutatio omnium haeresium)』이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에서 여러 이단들을 열거한 후 그들은 그리스도와 성경을 따르지 않고 이교철학을 따른다고 지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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