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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론적 이단들(1): 펠라기우스주의
현대종교 | 이승구 교수
2023년 08월 25일 09시 50분 입력

지금까지 삼위일체론과 기독론과 관련한 이단들을 하나하나 점검하였다. 하나님에 대해서 또한 그리스도에 대해서 바르게 생각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것이 아니니 구원 받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이단은 다 구원론과 관련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특별히 구원 문제에 대해서 잘못된 이단이 있으니 그런 이단들을 몇 차례로 나누어 논의하고자 한다. 이번에는 천주교회 조차도 이단이라고 선언한 구원론적 이단 펠라기우스주의에 대해 생각해 보자.

펠라기우스의 주장

펠라기우스(Pelagius, c.354/5-c.418 또는 420 AD,)1) 개인의 삶과 사역 과정에 대해서 많이 알려진 바가 없다.2) 그를 대개 영국에서 온 것으로 말하나(Augustine, Orosius, Prosper), 그리고 (Marius Mercator), 제롬이 그를 스코틀랜드 사람이라고 조롱조로 말하였는데,3) 그 당시 스코틀랜드 사람이라는 말을 실질적으로는 아일랜드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주장한 하인리히 침머4) 이후로 그를 아일랜드 사람이라고들 말한다.

어거스틴이 펠라기우스가 로마에 상당히 오래 살았다고 하였기에,5) 그는 아마도 아나스타시우스 주교(Anastasius)가 주교로 있을 때(398-401)부터, 아니 380년대 말부터6) 로마에 산 것으로 여겨진다. 수도자로 성직자가 아닌 그러나 나름대로 거룩한 삶을 살려고 노력한7) 그는 사람이 처음부터 육욕성과 죽음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하며(the naturalness of concupiscence and the death of the body), 아담의 첫 번째 죄가 그저 모범이 되어 인간들의 보편적 죄와 부패가 널리 펴졌다고 믿고 그렇게 가르쳤다.

그의 기본적 생각은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행할 수 없는 것을 인간에게 명령하지 않으신다. 그러니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모두 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린 아기들은 비난받을 수 없는 상태로 태어나며, 모든 사람은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고 살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통교회는 그가 원죄를 부인한다고 하였다.

그는 결국 415년에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기소되었고, 418년 카르타고 공의회(Council of Carthage, 418)에서도 정죄되었다. 특히 어거스틴이 그의 주장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사람이 타락한 후에도 선한 성질을 유지하여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여 행할 수 있다는 펠라기우스의 주장은 실질적으로 타락을 부인하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자력 구원을 말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펠라기우스가 은혜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그것은 율법 등의 외적인 것을 지칭하는 것이고 결국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고 심지어 행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기에 그를 자력 구원의 주장자라고 말하는 것은 옳은 것이다. 그는 인간의 의지가 모든 상황에서 절대적으로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펠라기우스주의의 주장

펠라기우스보다 좀 더 심각한 것이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의 생각이었다. 강력한 로마의 행정가였던 놀라의 파울리누스(Paulinus of Nola was close to Pelagius)가 그와 가까웠고, 에클라눔의 줄리안(Julian of Eclanum)은 펠라기우스주의의 저자로 알려졌고, 로마의 귀족이었던 캘레스티우스(Caelestius)가 대표적인 펠라기우스주의자였다고 할 수 있다. 그 중에 캘레스티우스는 로마 귀족 가문의 법률가로 태어날 때부터 고자였고 아주 열심히 고행적 삶을 추구했다고 한다.

그도 펠라기우스처럼 평신도 수도사(lay monk)였고, 로마에서 펠라기우스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전파하였다고 한다. 로마가 동고트(Visgoth)족인 알라릭(Alaric)의 손에 넘어가자(410), 펠라기우스와 캘레스티우스는 시실리(Sicily)를 거쳐서 북아프리카로 가서 펠라기우스는 팔레스타인으로 갔고, 캘레스티우스는 카르타고에서 장로가 되려고 하였다.

그러나 밀란의 부제(副祭) 파울리누스(the deacon Paulinus of Milan)가 주교인 아우렐리우스Aurelius에게 그에 대한 6개의 테제를 제출하면서8) 그가 이단이라고 제소하였다. 캘레스티우스가 주장했다고 언급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아담이 죄를 범하지 않았어도 그는 죽었을 것이다.9) 즉, 죽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2) 아담의 죄는 그에게만 영향을 미치지 그의 후손들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3) 아기들은 아담의 첫 번째 죄 이전과 같은 상태로 태어난다.
(4) 온 인류는 아담의 죄나 죽음 안에서 죽는 것도 아니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다시 사는 것도 아니다.
(5) 율법은 복음만큼이나 하늘(heaven)에 이르게 하는 선한 가이드이다.
(6)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도 죄 없이 산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내용을 들으면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그것이 이단적이라고 즉각 반응할 것이다.

펠라기우스주의의 이단성

그래서 교회는 오렌지 공의회에서 아주 명백하게 펠라기우스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생각이 이단이라고 단언하였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것을 부인하면 이단이 되는 것이다.

(1) 인간의 죽음이 창조에 속한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것.
성경에 의하면, 죽음을 죗값으로 주어진 것이다. 처음 사람은 죄를 지을 수도 있고, 죄를 안 지을 수 있는 의지의 자유를 가졌으면, 죄를 지으면 죽고 죄를 범하지 않으면 죽지 않게 창조된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2) 타락의 철저한 영향을 부인하는 것.
타락은 죄책과 죄로 인한 오염을 가지고 온 것이다. 아담의 첫 번째 죄가 근원적 죄책과 근원적 오염을 가져왔음을 인정해야 전통파 기독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다. 이런 근원적 죄책과 근원적 오염을 원죄라고 하니, 이를 부인하는 것은 원죄를 부인하는 것이고 이단이다.

(3) 타락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없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
성경에 의하면 타락한 사람은 그 스스로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없다. 따라서 타락한 사람은 스스로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의지의 자유를 상실했고, 오직 그 의지가 죄에 노예 되어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못하고 오직 죄만을 자유롭게 행한다. 그래서 이를 의지가 죄에 노예 되어 있음이라고 하고, 그렇게 주장하는 것을 “노예의지론”이라고 한다. 펠라기우스주의는 이를 부인하면서 타락한 인간도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4)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여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 것.
따라서 펠라기우스주의는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자력구원을 주장하므로 이단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하신 좋은 모범을 보이신 것으로 여겨지고 이런 모범을 따라서 인간이 하나님께 순종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니 이단이다.

4세기의 펠라기우스주의뿐만이 아니라 그 어느 시대든지 이와 비슷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같은 이단이라고 해야 한다. 계몽주의 이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다 이 범주에 들어간다. 4세기 교회는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이단이라고 단언하였는데. 계몽주의 시대나 그 이후의 교회들은 매우 연약해져서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이단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은 교회가 매우 연약해져 있거나 배교하여 결국 그들과 비슷한 생각 가운데 있다는 증거가 된다. 우리들 모두 정신 차려서 이런 펠라기우스 주장이 이단임을 명백히 언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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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55-420년으로 제시하는 다음을 보라. Mark W. Elliott, “Pelagianism,” in The Cambridge Dictionary of Christian Theology, eds., Ian A. McFarland, David A. S. Fergusson, Karen Kilby, & Iain R. Torranc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1), 377-378.
2) “Pelagius and Pelagianism,” Catholic Encyclopedia (available at: www.newadvent.org.)
3) Jerome, Praef. in Jerem., lib. I and III.
4) H. Zimmer, Pelagius in Ireland (Berlin, 1901), 20.
5) Augustine, De peccat. orig., xxiv.​​
6) 이렇게 제시하는 다음을 보라. Dominic Keech, The Anti-Pelagian Christology of Augustine of Hippo, 396-430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2), 38; Thomas P. Scheck, “Pelagius's Interpretation of Romans,” in A Companion to St. Paul in the Middle Ages, ed., Steven Cartwright (Leiden: Brill, 2012,) 79-114, at 81.
7) 그래서 어거스틴은 그의 생각을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그를 “거룩한 사람”(vir sanctus)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를 말하는 “Pelagius and Pelagianism,” Catholic Encyclopedia (available at: www.newadvent.org.).
8) 이때 지금은 상실된 캘레스티우스의 『유전죄에 반하여』(Contra traducem peccati)로부터 인용하여 그의 주장의 문제점을 드러냈다고 한다.
9) 이전 시대의 테오필누스(Theophilus)와 이레나이우스(Irenaeus)가 이런 시사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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