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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론적 이단들(3): 넓은 의미의 반(半) - 펠라기우스주의
현대종교 | 이승구 교수
2023년 10월 30일 09시 29분 입력

마르세유의 대수도원장이었던 카시안(카시아누스, Cassianus)과 레기움의 파우스투스(Faustus of Thegium), 또한 마르세유의 겐나디우스(Gennnadius of Massilia)의 생각은 오랑주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이들은 은혜를 넓게 이야기하면서 은혜받은 사람들이 행동하는 것에 의해 구원받는다는 것을 너무 강조하였다. 이들을 흔히 반半-펠라기우스주의라고 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이들은 “좁은 의미의 반半-펠라기우스주의”라고 할 수 있고, 그러므로 이런 좁은 의미의 반半-펠라기우스주의는 천주교회에서도 이단으로 정죄된 사상이다. 그런데 이들을 정죄한 천주교회의 모든 인사들이 철저하게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한 것도 아니었다. 또한 궁극적으로 멸망 받을 사람들에 대한 간과(preterion)와 유기(reprobation)를 그렇게 강조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중세에 확고하게 자리 잡은 구원에 대한 이해는 어떤 것이었는지 생각해 보기로 하자.

천주교회의 구원 이해

천주교회도 말로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이 주어진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형식적으로는 어거스틴이 말하는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을 말하는 듯이 보이기도 하고, 자신들이 펠라기우스주의도 아니며, 카시안 등이 주장하는 좁은 의미의 반半-펠라기우스주의도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천주교회는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사람이 선행을 할 수 있도록 하고, 그런 선행의 공로를 통해서 구원을 받게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을 만족게 하신 속죄의 공로와 더불어, 주의 은혜에 근거해서 사람들이 행하는 선행의 공로로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이중 공로 사상”을 말하는 것이다.

(이중 공로 사상의 문제점) 이는 종국적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의 효과를 철저하게 주장하지 않는 것이기에 문제다. 그리스도의 공로만으로는 구원받아 “하늘”(heaven)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또한 세례를 받을 때 은혜의 주입(infusion)이 있어서 그 주입된 은혜에 근거해서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노력하게 되고,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충족한 것은 아니지만 공로로 여겨주셔서(이를 그들의 말로 “재량 공로”, 즉 “[사실은 공로가 아니지만 공로로] 여겨주시는 공로”라고 한다) 더 큰 은혜를 내려 주시면 그것에 근거해서 사람이 더 큰 노력을 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것을 내게 되는데, 그것이 사랑으로 작용하는 믿음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사랑으로 작용하는 믿음에 근거해서 하나님 앞에 “지당한 공로”를 내어 하늘에 합당한 자로 만들어 가시는 과정이 구원이라고 한다.

이렇게 천주교회는 “주입된 은혜”(infused grace)를 매우 강조하면서 그 주입된 은혜에 근거해서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선한 것을 내어 그것의 공로로 하늘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죽자마자 하늘에 이를 수 있는 사람은 천주교회에서 복자(福者, the Blessed)나 성자(聖者, the Saint)라고 선언한 소수의 사람들뿐이고, 다른 사람들은 연옥(煉獄), 즉 “연단 받는 옥”에서 자신들의 영혼을 더 정화하는 고난의 과정을 거쳐서 드디어 영혼이 온전히 정화되고 충분히 하늘에 합당하게 되면 그제서야 하늘에 이르게 된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의 삶과 죽은 후 연옥에서의 삶은 기본적으로 영혼을 정화하는 과정이고 공로를 쌓는 기간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천주교회가 말로는 은혜를 강조하지만, 그 은혜는 결국 인간이 다시 공로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시는 것이며, 협력하여서 공로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사람이 공로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은혜라고 하는 것이다.

천주교 구원론의 문제를 극복한 종교개혁의 구원론

이런 천주교의 구원 이해는 결국 그리스도의 공로를 실질적으로 무시하고 그리스도의 공로에 더하여 은혜에 근거한 인간의 행위와 공로의 의를 말하게 된다는 것을 깊이 의식하고 지적하는 것이 루터로부터 시작하는 개혁자들의 구원 이해다. 천주교회의 구원 이해에 따라서 주입된 은혜에 근거해서 의로운 자가 되려고 열심히 노력하던 마틴 루터가 성경, 특히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의 가르침을 통해서 우리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더 철저히 깨닫고서, 오직 그리스도의 의만이 우리를 구원하고, 하나님 앞에 세울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우리를 구원하는 의는 우리의 의가 아니고 우리 밖에서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의가 우리에게 전가된 것이니 “낯선의”(iustitia aliena)이고, “우리 밖의 의”(iustitia extra nos)이다. 우리가 그것에 근거해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의(義)는 아주 철저한 것이기에 이렇게 절대적인 그리스도의 의가 아닌 것으로 하나님 앞에서 설 수 없다는 제대로 된 성경적 이해를 말한 것이다. 그리므로 개혁자들은 다른 것으로는 안 되고 오직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만(Solus Christus)으로 구원된다고 했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에 더하여 어떤 것을 해야만 하늘에 이를 수 있다는 의식은 있을 수 없었다.

개혁자들의 이해야말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구원을 말하는 것이다. 천주교회도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였지만 결국은 그 은혜를 성경적으로 철저하게 말하지 않는 것임을 잘 드러내었다. 그러므로 개혁자들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sola gratia) 이루어지는 구원을 말한 것이다.

그것이 인간 편으로서는 “오직 믿음으로만(sola fide) 말미암는 구원”이다. 오직 하나님께서 홀로 하신 것을 그저 받아들이는 일로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믿음조차도 그것이 공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을 받아들이는 그릇일 뿐임을 강조하고,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항상 거지이며(루터가 죽음의 침상에서 적었다는 유명한 말 “우리들은 거지들입니다. 그것은 참됩니다.”[Wir sien pettler. Hoc est verum],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만으로 존재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과 인간이 힘을 합해서 이룰 수 있는 것[synergism]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 혼자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monergism].

이 모든 것을 오직 성경(sola scriptura)에서 찾아 제시하였으므로, 개혁자들의 구원에 대한 이해는 성경에 근거해서 넓은 의미의 반半-펠라기우스주의를 극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바른 것임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Soli Deo Gloria) 사는 삶으로 드러내기 힘쓰며 사는 사람들이 천주교회의 잘못을 개혁하고 자신들을 개혁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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