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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사역의 현실과 과제
진영채 목사
2026년 05월 27일 08시 53분 입력

장애인 사역은 복음의 본질과 직결된 필수적인 사명이다. 하지만 많은 교회가 여전히 장애인 성도와 함께하는 사역을 준비하지 못한 채 주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비장애인 성도 중심으로 굳어진 기존 사역 구조를 탈피해야 한다는 부담과 생소한 영역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에게 예수님의 구원이 유효함을 고백하는 교회라면, 이러한 막연함을 방치할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사역 모델로 구체화하기 위해 꾸준히 연구하며 아주 작은 변화라도 실천에 옮겨야 한다.

이제 교회는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담론에 머물기보다 실제 현장에서 곧바로 실행 가능한 대안들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어느 주일 아침, 우리 교회를 방문하게 될지도 모르는 단 한 명의 장애인 성도를 기꺼이 맞이할 수 있는 교회의 수용적 태도와 환경을 갖추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장애인 사역의 출발점은 숫자가 아니라 시선이다. 교회 안에 장애인이 몇 명 있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있다. 여전히 많은 교회가 장애인을 ‘돌봄의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라고 선언한다. 가장 약한 지체를 귀히 여길 때 공동체는 본연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다. 따라서 장애인 사역은 어떤 특별한 부서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교회의 질서를 다시 세우는 일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장애인 성도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은 곧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복음의 공공성을 회복하는 가장 구체적인 첫걸음이 될 것이다. 다음은 장애인 성도를 두 팔 벌려 맞이하고자 하는 교회를 위한 몇 가지 제언이다.

먼저는 외부 기관과의 유기적인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일이 장애인 사역의 전문성을 확보하는 핵심 동력이다. 장애인 사역은 고도의 훈련과 경험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영역이기에, 개별 교회의 역량만으로 모든 필요를 채우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따라서 사역을 준비하는 교회는 지역사회의 지자체 장애인복지과, 특수학교, 복지관, 재활센터 등과 적극적인 파트너십을 맺어 전문 자원과 교육 기회를 확보해야 한다. 이러한 민관 협력은 봉사자 교육, 장비 대여, 전문 인력 파견을 가능케 할 뿐만 아니라, 공동 사업을 통한 예산 분담의 효율성도 제공한다. 장애인 사역을 하고 있는 사역자들의 연합체에 참여하여 목회적 사례를 교류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외부적 협력과 더불어 사역의 지속성을 뒷받침하는 내부적 재정의 투명성과 제도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장애인 사역이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으려면, 교회 예산안에 전용 항목을 별도로 마련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특히 초기 단계에서는 설비 개선과 교육비에 우선순위를 둔 연간 집행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공동체 앞에 투명하게 보고하는 책임 있는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소액 모금 바자회나 특별헌금을 통해 사역 기금을 조성하는 과정은 전 성도가 사역의 주체로 참여하는 영적 훈련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재정적 뒷받침은 사역의 안정성을 높이고, 공동체가 이 사명을 얼마나 진중하게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실질적인 지표가 된다.

나아가 전사적 차원의 기구 설치를 통해 장애인 사역을 교회의 중심 질서로 편입시키는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 장애인 사역을 특정 부서의 전유물로 치부하는 ‘분리적 인식’은 오히려 더 큰 소외를 낳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교회 내에 교육 부서, 사회봉사부, 장애인 당사자 및 가족, 교역자가 함께 참여하는 ‘장애인 사역 소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제안한다. 이 기구는 시설 개선부터 예배 지원까지 사역 전반을 지속적으로 점검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모든 교역자에게 장애인 이해 교육을 의무화함으로써, 교회의 어느 접점에서도 장애인 성도가 동일한 높이의 환대를 경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현재 장애인이 없는 현실을 성찰하며 ‘보이지 않는 이웃’을 위한 마중물을 준비하는 태도가 요구된다. 지금 우리 교회에 장애인이 단 한 사람도 없다면, 이는 안심할 이유가 아니라 그만큼 우리 공동체의 문턱이 높았음을 방증하는 뼈아픈 결과다. 장애인은 단 한 번의 방문을 위해서도 물리적 접근성과 공동체의 인식 수준을 예민하게 살핀다. 진정한 포용은 ‘아직 오지 않은 이들’을 미리 환영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웹사이트의 접근성을 점검하고, 예배 중 찬양 가사를 읽어주거나, 저시력자를 위한 큰 글씨 주보 준비, 화장실 앞 적재물 관리, 경사로 및 엘리베이터 확충 등은 교회가 장애인과 장애인 가정에 던지는 가장 강력한 환대의 메시지가 될 것이다. 비록 지금은 단 한 명의 대상자가 없을지라도, 그 한 사람을 위해 준비된 예배와 환경은 결국 공동체 전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복음의 통로가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장애인 사역은 특수한 누군가를 돕는 시혜적 활동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전복되는 영적인 과정이다. 화려한 설비보다 중요한 것은 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고, 한 사람을 위한 멈춤을 기꺼이 선택하는 공동체의 태도다. 이러한 준비와 노력이 모여 교회의 문턱이 낮아질 때, 하나님의 나라는 그 낮은 틈을 통해 우리 가운데 성큼 다가올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그 작은 시작 위에 당신의 공동체를 비로소 온전하게 세워 가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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