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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지일 교수, “이단과 신학교육의 과제”
전국신학대학협의회(KAATS) 주제 강연
현대종교 | 김정수 기자 rlawjdtn@hanmail.net
2020년 05월 25일 17시 27분 입력

전국신학대학협의회(회장 김선배 침례신학대학교 총장) 정기총회가 지난 5월 22일 서울장신대학교 강신명홀에서 열렸다. 탁지일 교수(본지 이사장 겸 편집장, 부산장신대학교 교회사)는 전국 신학대학교 총장과 교수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이단과 신학교육의 과제”에 대해 강의했다.
 

▲강의를 경청하는 전국신학대학협의회 회원들

 

탁지일 교수는 “코로나19와 신천지 문제는 한국교회 이단대처의 전환점이 되었다”며 “교회 스스로의 냉정한 자기진단과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라며 강의를 열었다. 먼저 코로나19를 통해 드러난 이단들의 다섯 가지 본색을 밝혔다.

첫째, 비상식적인 교주의 신격화를 보인다고 전했다. “이단들과의 첫 만남이 다소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면, 그 후에 아무리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인 교리가 등장하더라도, 스스로 수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 또는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가족과 주변 지인들에게 보여주려는 왜곡된 노력의 결과”라고 분석했다.

둘째, 이단들은 성경을 왜곡하고 훼손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독교인들의 종말론적인 소망의 핵심인 “새 하늘과 새 땅” 즉 ‘신천지’가 부정적인 가치판단을 내재한 채 사용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셋째, 비성경적인 종말론 또한 이단들의 최애 아이템이라며, “이들의 관심은, 종말론으로 위기감을 조성한 후, 설령 가정이 무너지더라도, 재산이나 성을 착취하여 사리사욕을 채우는 일에 있다”고 지적했다.

넷째, 벤치마킹과 업그레이드에 능하다. “다른 이단들이나 교주들의 사례를 벤치마킹하며, 자신의 형편에 맞게 업그레이드한다”며 “비윤리적인 교리 도용은 기본이다. 과거에 다른 이단조직에 충성했던 교주는, 전임자를 폄하하고 배신한 후 독립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다섯째, 배타적 구원관을 지적하며 부동산 거점의 확보, 학업과 직장과 가정 포기, 비밀스러운 이단 교리를 믿음으로 받는 구원 등이 영생의 조건이 된다고 전했다.


탁 교수는 코로나19와 신천지 딜레마에 대해 설명하면서 ▲신천지에 대한 마녀사냥인가 ▲이단과 사이비는 무엇이 다른가 ▲교회와 사회의 신천지 비판은 합리적인가 ▲거짓말은 신천지만의 특징인가 ▲신천지와의 공존은 가능한가라는 흥미로운 주제를 던졌다.

탁 교수는 “신천지뿐만 아니라 교회, 사찰, 성당에서도 코로나19 감염은 발생할 수 있다”며 문제는 “집단 감염 발생 후 신천지의 사후조치가 투명하고 정직하게 이루어졌는가에 있다”고 전했으며 마녀사냥이 아니라고 못박았다.

또 이단이라는 용어에 대해, “기독교적 적용의 범주를 넘어, 스스로를 종교라고 주장하지만 사회적인 역기능이 주로 노출되는 단체들에 대해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며 “이단대처의 정당성과 공신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정통’의 정체성과 역할을 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전했다.

탁 교수는 신천지 비판이 합리적인가 여부에 대해 논하며 “정확한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교회의 이단비판도 언제든지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올 수 있다”며 “정확한 정보에 기초해야 하며, 추측이나 개연성에 지나치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신천지를 몰락으로 유도하기 위한, 치밀한 교회와 사회의 전략적 대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단대처를 위한 신학교육의 코드에 대해 “온라인 코드”, “치유와 회복 코드” 그리고 “긍정 코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단과 신학교육의 과제"에 대해 강의하는 탁지일 교수

 

탁 교수는 온라인 이단 대처를 위해 “이제는 오프라인 상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지는 거짓말 포교를 넘어, 인터넷을 이용한 시공을 초월한 스마트한 이단들의 포교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며 “감염 예방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도 필요하지만, 이제는 이단 대처를 위한 “온라인 영적 거리두기’도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고 전했다.

또 치유와 회복에 대해 “이단 문제에 있어서, ‘정죄와 분리’만이 해법은 아니다. ‘회복과 치유’에 초점을 맞춘 신학교육 프로그램의 계발과 적용이 절실하다”며 “이단문제는, 피해자의 눈을 통해 보고 귀를 통해 들었을 때, 그 본질과 위험성을 바르게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긍정 코드의 필요성을 피력하며 “신천지에 대한 한국사회의 부정적 인식과 비판이 교회를 향한 지지를 의미하지 않는다”며 “신천지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언제든지 비윤리적이거나 반사회적인 모습을 노출하는 교회를 향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고 밝혔다.

탁지일 교수는 “이단은 역사적으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해 왔고, 교회는 끊임없는 이단들의 도전에 효과적으로 응전해왔다. 그리고 그 응전의 결과가 우리의 신앙고백과 신학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며 “코로나19로 인한 걱정과 희망이 공존하는 오늘, 이단 바이러스에 대처할 수 있는 신앙백신의 개발과 영적방어시스템의 구축이 교회와 신학교육 현장에 요구되고 있다”며 결론을 맺었다.

아래는 탁지일 교수의 강의 전문이다.​

이단과 신학교육의 과제

탁지일 (부산장신대학교 교회사 / 현대종교 이사장 겸 편집장)

코로나19와 신천지 문제는 한국교회 이단대처의 전환점이 되었다. 이단은 교회의 교리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이단들의 사회적 역기능 노출 사례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코로나19와 신천지 문제로 인해 분출된 국가적 차원의 염려는, 이단 예방과 대처의 필요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1)

이단들의 성장 원인을 선 듯 이해하기 어렵다. 부디 부적절한 비유에 용서를 구하며 이렇게 문제제기하고 싶다. 즉 교회는 오리지널 정품(正品)을 무료로 주겠다는데도 불구하고 낮은 선호도를 보이는 반면, 이단은 가품(假品)을 터무니없는 돈을 받고 판매하는데도 날개 돋친 듯이 팔리고 있다. 이단들의 사기 마케팅의 결과로만 봐야하는가, 아니면 한국교회의 사회적 역기능으로 인한 병리현상일까? 교회 스스로의 냉정한 자기진단과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이 글의 목적은, 최근 주요 이단들의 특징을 연구자의 분석틀(5Ps, prophet, promise, plan, possibility, place)을 통해 접근한 후, 코로나19(in & post Covid-19) 세상에서 마주한 신천지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논의하려고 한다. 이를 통해 이단문제 예방과 대처를 위해 신학교육이 관심 가져야할 과제들을 제시하려고 한다.

1. 코로나19를 통해서 드러난 이단본색

1-1. 비상식적인 교주 신격화 (Prophet)

코로나19와 관련한 신천지 이만희의 기자회견 모습을 의아하게 지켜본 이들이 많다. 어눌해 보이고, 사회적·신학적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교주가 수많은 신도들 위에 절대적으로 군림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왜 똑똑한 젊은이들이 이단에 빠지고, 비상식적인 교주 아래서 자발적으로 착취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이단들과의 첫 만남이 다소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면, 그 후에 아무리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인 교리가 등장하더라도, 스스로 수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혹은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가족과 주변 지인들에게 보여주려는 왜곡된 노력의 결과일 수도 있다. 게다가 이단들의 의도적인 접근과 ‘친밀한 관계형성’은 이러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단은 ‘친밀함’으로 다가와 ‘치밀함’으로 미혹한다.

‘누구든지’ 이단에 빠질 수 있고, 이단들이 가지고 있는 미혹과 세뇌의 기술은, 교주를 하나님과 재림주 등으로 숭배하도록 만들 수 있다. 이단 발생은, 주님 재림과 세상 마지막 때의 표징이다. 그렇기에 이단문제가 발생하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지“라는 고민 가운데 감추거나 부끄러워하기보다는, 생길 수 있는 일이 생겼다는 전제 아래 목회자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어떻게 이 일을 지혜롭게 해결하지”라는 접근이 필요하다.

1-2. 성경을 훼손하는 이단들 (Promise)

요즘 ‘신천지’라는 단어를 들으면 기독교인이나 비기독교인들 할 것 없이 다들 부정적 가치판단을 내재한 채 사용하는 것이 안타깝다. ‘신천지’는, 즉 ‘새 하늘과 새 땅’은 우리 기독교인들의 종말론적인 소망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신천지로 인해 성경의 진리가 왜곡되고 훼손되고 있다. 거룩한 성경 언어를 오염시키는 것은 이단들의 고유한 특성이며, 이 점에서 이단대처는 일면 성경의 거룩한 언어들을 회복하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 구원, 기쁜 소식, 생명의 말씀, 복음, 선교 등 성경의 거룩한 언어들을 이단들이 무차별적으로 도용해 사용하고 있다. 하나님과 교회에 속한 저작권을, 이단들이 출처조차 밝히지 않은 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오염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단들이 사용한다고 해서, 성경의 귀한 말씀들을 우리가 금기어로 지정할 수는 없다. 오히려 설교와 성경공부를 통해 더욱 많이 사용해야 한다. 성경 말씀은, 이단이 아니라, 교회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1-3. 종말론 마케팅 (Plan)

비성경적 종말론은 이단들이 기본적으로 장착하는 최애 아이템이다. 특정한 시기에 종말이 온다고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는 이단들이 있고, 144,000명과 같은 특정한 조건이 이루어져야 종말이 온다는 ‘조건부 종말론’을 주장하는 이단들이 있다. 이들의 관심은, 종말론으로 위기감을 조성한 후, 설령 가정이 무너지더라도, 재산이나 성을 착취하여 사리사욕을 채우는 일에 있다.

종말은 온전히 하나님께 속해있다. 종말의 때는 하나님만 알 수 있다고 성경은 분명하게 증언하지만, 시한부종말론만 생겨나면 피해자가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구원과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했는데, 조건부종말론만 등장하면 피해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종말론적 이단들이 넘쳐나는 오늘, ‘종말을 잊은 교회’가 ‘종말을 파는 이단’의 도전에 버거워하는 형세를 맞고 있다.

1-4. 벤치마킹과 업그레이드 본능 (Possibility)

기성종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후발 주자인 이단들은, 생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종교외적 분야에도 관심을 집중한다. 군사정권 하에서는 반공, 승공, 멸공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물적 토대의 구축과 안전을 도모하는 한편, 위장조직을 내세워 사회문화 전반에 걸친 세력 확장을 시도했다. 최근에는 기성 교회들의 부정적 이미지가 다수 노출되는 분위기에 편승해서, 사회봉사 등의 순기능을 내세워 양의 옷을 입고 긍정적 이미지 구축을 시도해오고 있다.

한편 이단들의 홀로서기는 쉽지 않다. 다른 이단들이나 교주들의 사례를 벤치마킹하며, 자신의 형편에 맞게 업그레이드한다. 비윤리적인 교리 도용은 기본이다. 과거에 다른 이단조직에 충성했던 교주는, 전임자를 폄하하고 배신한 후 독립하는 경우가 많다. 신천지 이만희는 박태선의 전도관과 유재열의 장막성전에서 영향을 받았고, JMS 정명석은 통일교 문선명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한국이단들은 태생적으로 혼합주의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불교와 동학뿐만 아니라, 민간사상이나 샤머니즘적인 요소들까지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벤치마킹하고 업그레이드한다. 그렇기에 때로는 어설픈 이단들의 교리를 신학적으로 고상하고 치밀하게 분석하는 작업보다, 이단의 주장에 대해 주변사회가 공감하는 상식적 차원의 변증을 시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1-5. 그들만의 리그 (Place)

배타적 구원관은 이단들의 단골 메뉴이다. 이단들은 자신들의 교리를 믿고, 자신들에게 와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기성교회의 대안으로 자신들을 포장하고 합리화하며, 불신자 전도보다는 기독교인들을 미혹하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신천지처럼 심지어 교회 안으로 들어와, 정체를 감추고, ‘모략’이라는 미명으로 합리화된 거짓말을 자행하며, 교회공동체를 무너뜨리는데 전혀 죄책감조차 가지지 않는다. 신천지가 ‘거짓말’로 해석한 성경의 ‘모략’이라는 단어는, ‘거짓말’이 아니라 ‘충고’의 의미를 가진 ‘에쨔(עצה)’라는 히브리어 단어이다. 성경에 대한 오역이고 의미의 훼손이다.

배타적 구원관을 실현한 부동산 거점의 확보는 이단들의 성패에 주요한 영향을 준다. ‘성지개발’이나 ‘성전건축’ 등을 내세운 부동산 투자와 확보를 통해 만들어진 경제력은, 신도들의 교육과 통제, 조직의 결속력 강화, 분파 발생 방지, 혹은 교주와 간부들의 호화호식을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이단들은 그들만의 리그에 속해야 구원을 얻는다고 미혹하며, 학업과 직장과 가정을 포기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비밀스러운 이단 교리를 믿어야 구원받거나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 곧 구세주로 믿으면 우리는 구원받는다. 구원은 이단 교주나 교리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엡2:8)이다.

2. 코로나19와 신천지 딜레마

2-1. 신천지에 대한 마녀사냥인가

신천지뿐만 아니라 교회, 사찰, 성당에서도 코로나19 감염은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유독 신천지만 문제를 삼는 것일까? 문제의 핵심은 바이러스 ‘감염확산의 장소’에 관한 것이 아니라, ‘감염방지를 위한 조치’가 적절했는지에 관한 것이다.

코로나19는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다. 우리의 관심은, 집단 감염 발생 후 신천지의 사후조치가 투명하고 정직하게 이루어졌는가에 있다. 이는 추가 감염을 막는데 가장 민감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천지는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부정확하고 제한적인 정보를 방역당국에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고, 이로 인해 사회적 공분을 샀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신천지의 비상식적인 행위가 신천지의 이단적 교리 및 포교방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결국 이로 인해 정부와 사회가 신천지에 대해 민감하게 대처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접어들었다. 결론적으로 코로나19 감염 확산 방지를 위한 신천지의 비상식적인 대처는, ‘우발적인 비협조’가 아니라 신천지 교리의 ‘본질적인 한계’였다는 점이, 코로나19와 신천지 문제의 핵심이다.

신천지에 대한 마녀사냥이 아니다. 다종교사회인 한국에서 모든 종교 단체들은 교리와 포교에 있어서 떳떳하고 당당해야 한다. 자신의 정체를 감추며 포교하는 행위는 ‘종교사기’에 지나지 않는다. 거짓말을 교리적으로 합리화하고, 포교에 악용하고 있는 신천지에 대한 교회와 사회의 대처는 마녀사냥이 아니라, ‘오늘의 문제해결’과 ‘내일의 대안마련’을 위해 ‘사회적 안전장치’를 만들려는 노력이다.

2-2. 이단과 사이비는 무엇이 다른가

‘이단’은 방송용어가 아니다. 하지만 구원파에 대한 논란이 거셌던 ‘세월호사건’과 최태민과 ‘최순실국정농단사건’ 이후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용어가 되었다. ‘이단’이라는 용어를 우리나라처럼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나라들은 드물다. 대부분 컬트(cult)라는 부정적 판단이 내재된 용어를 사용한다. 한국사회에서 ‘이단’이라는 용어는, 기독교적 적용의 범주를 넘어, 스스로를 종교라고 주장하지만 사회적인 역기능이 주로 노출되는 단체들에 대해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국내외 종교사회학계에서 새로운 종교운동의 성격을 규정하는 개념들에 대해 일치된 견해를 보인 적은 없다. 국가, 지역, 문화, 종교 등에 따라 다양한 표현들이 존재한다. 일제 조선총독부는 ‘유사종교’라는 표현을 썼지만, 이는 일제통치에 비협조적인 단체들도 포함하고 있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기에는 부적절한 면이 있다. 해방이후에는 오히려 ‘사이비종교’라는 개념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즉 종교성을 악용해 돈, 성, 노동력을 착취하는 단체들에게 주로 사용되어 왔다.

한편 ‘이단’이란 용어는 단독으로 사용될 수 없는 상대적인 개념이라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반드시‘정통’이란 개념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교파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우리나라에서 과연 어떤 교리적 표준을 ‘정통’으로 삼느냐는 까다로운 문제이다.

특히 이단대처의 정당성과 공신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정통’의 정체성과 역할을 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확산되는 상황에서는, 소위 ‘정통’으로 분류되는 교회의 종교사회적 건강성의 문제는 이단대처에 있어서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비윤리적인 기독교 지도자가 신격화된 이단 교주를 비판할 수 없으며, 이기적인 교회가 양의 옷을 입고 이타적인 삶을 연출하는 이단에 응전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2-3. 교회와 사회의 신천지 비판은 합리적인가

코로나19 상황에서 신천지를 비판하는 대다수 언론들을 보면서 데자뷰를 느꼈다. 이들 언론들은 세월호사건 당시 구원파를 비판하면서 시청율과 구독률을 올렸지만, 그 이후에는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정정 및 반론 보도들을 통해, 구원파에 면죄부를 주는데 일조했고, 구원파는 관련 법정소송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더욱이 코로나19 발생 전에는 공공연히 신천지에 대한 호의적인 광고성 기획기사를 게재한 주요 언론들이, 코로나19 이후에는 앞장서서 신천지를 비판하는 낯뜨거운 블랙코미디가 벌어졌다.

언론의 공신력도 중요하지만, 정확한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교회의 이단비판도 언제든지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올 수 있다. 교회와 사회가 신천지 등의 이단들에 대한 대처를 해 나아가는 일에 있어서 신중해야 한다. 정확한 정보에 기초해야 하며, 추측이나 개연성에 지나치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신천지를 몰락으로 유도하기 위한, 치밀한 교회와 사회의 전략적 대처가 필요하다.

주변 사회의 공감과 동의를 결여한 교회의 이단대처는 ‘우리들만의 리그에서 벌이는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질 수 있다. ‘정확성’과 ‘공신력’은 다종교 한국사회의 이단대처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조건들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단사이비를 대처하고 통제하려는 교회의 노력은, 오히려 종교자유를 훼손하는 결과로 나타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2-4. 거짓말은 신천지만의 특징인가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영원한 청춘”(不老不死 人永春),” “죽음이 끝나고 영생이 시작되는 신천지”(死末生初 新天地), “서양의 기운이 동방으로 오는 구세주”(西氣東來 救世眞人). 조선 중기 학자인 남사고(南師古, 1509~71)가 남겼다고 전해지는 『격암유록(格菴遺錄)』 내용 중 일부이다.

이 내용은, 신천지의 교리서인 『계시록의 진상』(이만희 저, 1988) 마지막 부분에 인용되어 있다(1998년과 2005년 판(版)에는 삭제됨). 이만희는 “이 예언이 응한 것을 신천지 증거장막 성전에서 증거하고 있다.”고 하여, 마치 자신과 신천지에 대한 예언이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격암유록』은 신천지뿐만 아니라, 박태선의 전도관, 조희성의 영생교, 문선명의 통일교 등 다수 기독교계 이단 단체들에 의해서 널리 애용되었다. 즉 한국이 동방이며, 이곳에 재림주가 나타나고, 환란을 피할 수 있는 천년왕국이 세워진다는 한국 이단들의 뻔한 레퍼토리의 원조가 되었다. 이러한 기본 틀에 교주 각자의 주장을 추가하고, 성경의 필요한 내용들을 가져다가 끼워 맞춘 후 그들만의 거짓에 기초한 창의적인 교리를 만들어냈다.2)

한국 이단들은 기본적으로 혼합주의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들의 역사와 교리는 거짓 위에 세워졌으며, 저작권 위반은 기본이다. 『격암유록』과 같은 비성경적 위서들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다른 교주들의 그럴듯한 주장도 가로채, 출처를 밝히지 않은 채 무차별적으로 벤치마킹하고 업그레이드한다. 이단들 간의 관계를 ‘계보(系譜)’라고 표현하기조차 민망하다.

2-5. 신천지와의 공존은 가능한가

불가능해 보인다. 그 이유는 신천지의 ‘거짓말’때문이다. 다수의 종교 단체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한국사회에서, 거짓말로 포교하고, 거짓말로 신도들을 통제하고, 거짓말로 조직을 유지하는 신천지가 설 곳은 없어야 한다. 자신들의 신앙에 대해 떳떳하고 정정당당한 종교인들만이 종교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있다.

‘거짓말’은 신천지의 운명이다. ‘거짓말’이 없는 신천지는 존재하기 어렵다. 거짓말을 합리화하는 소위 ‘모략교리’없는 신천지는 존재할 수 없다. 신천지의 핵심교리들은 거짓말의 집합소이다. 이만희 교주의 불로불사와 영생불사 교리도 거짓이고, 14만4천 구원 교리도 거짓이고, 신천지 신도들이 왕과 같은 제사장이 된다는 교리도 거짓이다.

사회도 신천지의 ‘거짓말’을 용납하지 않았다. 신천지를 탈퇴한 이들이 신천지를 상대로 제기한 소위 ‘청춘반환소송’에서, 대전지방법원 서산지원은 2020년 1월 14일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신천지예수교회 및 피고 교회는 다른 교회의 신도나 신도였던 사람들을 상대로 하여 처음에는 신천지예수교회 소속이라는 것을 전혀 알리지 아니한 채 문화체험 프로그램 또는 성경공부라는 명목으로 신천지예수교회의 교리교육을 받게”한 사실을 인정하고, “전도방법은 대상자가 정당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기회를 막고 충분한 정보를 전달받지 못하도록 차단하기 위하여 행위자들이 신천지예수교회 소속이라는 것을 은익한 채 대상자에게 배려와 친절을 베풀고 객관적 사실을 알려주는 주위 사람과도 그 관계를 끊게 하거나 악화시키는 형태”로 이루어졌으며, 이는 “헌법에서 보호하는 종교의 자유를 넘어선 것이고, 사기범행의 기망이나 협박행위와도 유사하여 이는 우리 사회공동체 질서 유지을 위한 법규범과도 배치되는 것이어서 위법성이 있다고 평가된다.”고 판단했다.

교회와 사회에서 신천지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최근 신천지의 외곽 위장단체인 HWPL(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의 법인 허가가 취소되었고, 세무조사가 착수되었으며, 지방자치단체들 및 상공인들을 피해보상요구 등 신천지에 대한 압박이 점점 가중되고 있다.

3. 이단대처를 위한 신학교육의 코드

3-1. 온라인 코드

비대면 온라인 수업과 회의 운영으로 인해, 자의반타의반으로 미루고 외면했던 사물인터넷(IoT)의 기술세계로 선택의 여지없이 들어와 적응능력을 키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한편 최근 주목받는 대부분의 이단들은, 이미 코로나19 이전부터 사이버공간에 세련된 콘텐츠로 무장된 온라인 포교와 교리교육을 진행해오고 있다. 최근 온라인 의존율이 높아지고, 대면접촉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온라인 이단들의 광폭행보를 주목해야 한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주목할 만한 이단 트렌드는 소규모 온라인 이단들의 등장이다. 노출된 거점에 근거지를 둔 중대형 이단들에 대한 상담보다, 사이버공간 속 사각지대에 머물고 있는 소규모 이단들에 대한 정보요청 및 상담문의가 늘어나고 있다. 매주일 평범하게 교회출석을 하면서도, 시간될 때마다 비성경적·비상식적 주장으로 넘쳐나는 인터넷 사이트를 기웃거리며 독자적인 학습을 진행하는 ‘기독교 안의 비기독교인들’이 양산되고 있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이단들의 미혹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 인터넷에는 이단들의 세련되고 완성도 높은 카드뉴스와 동영상이 넘쳐나고, 정체모를 개인과 단체의 비성경적 주장들도 자유롭게 넘쳐나고 있다. ‘제공되는 정보’가 아니라 ‘찾아가는 맞춤형 정보’를 통해,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믿고 싶은 것을 믿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신천지도 오프라인에서는 활동을 자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적어도 온라인상에서는 여전히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코로나19 이전, 신도들의 교육과 통제를 위한 온라인 환경을 이미 체계적으로 구축한 신천지가 더 깊이 숨어들어간 느낌이다. 표면적으로는 신천지 활동이 위축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이버 공간 속으로 활동 무대를 옮긴 상황이 되었다.

이미 온라인 이단의 시대는 개막되었다. 최신 인터넷 환경들은 시공을 초월한 이단들의 활동을 가능하게 했다. 신천지는 SNS를 교육과 통제에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고, 하나님의교회나 전능신교는 수많은 동영상들을 끊임없이 업로드하고 있고, 구원파 기쁜소식선교회는 유튜브 실시간 온라인 성경세미나화 줌(Zoom)을 이용한 상담을 개최하고 있다.

감염 예방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도 필요하지만, 이제는 이단 대처를 위한 “온라인 영적 거리두기’도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대면 미혹’은 시간과 장소의 제한이 있지만, ‘비대면 미혹’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진행된다. 교회와 신학교육의 과제가 하나 더 늘었다. 세련된 온라인 이단들의 도전을 막아낼, 현재의 인터넷 환경에 뒤처지지 않는 이단 예방과 대처를 위한 시스템의 구축과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이제는 오프라인 상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지는 거짓말 포교를 넘어, 인터넷을 이용한 시공을 초월한 스마트한 이단들의 포교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 예전에는 유학과 군 입대 등을 통해 이단들과의 관계 단절이라는 긍정적인 성과도 있었지만, 이제는 유비쿼터스 환경을 이용한 이단들의 미혹이 모든 시간대와 공간을 통해 진행되고 있다. 심지어는 군부대 안에 있는 다수의 신천지 신도들이 모략포교를 진행할 수 있는 조건도 만들어질 수 있다.

민감한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목회·신학적 대안을 제시하기도 전에, 정치·이념적 해법과 편 가르기가 먼저 등장하는 ‘분열의 시대’에 서있는 한국교회는, 이단들의 스마트한 가짜 뉴스와 가짜 교리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된 ‘혼란의 시대’를 동시에 맞고 있다.

3-2. 치유와 회복 코드

얼마 전 신천지에 빠진 딸을 둔 한 어머니의 편지 내용이 월간 「현대종교」에 게재되었다. 코로나19와 관련된 신천지 뉴스가 나올 때마다, 두려움에 떨며 울고 괴로워하는 딸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봐야만 하는 어머니의 애틋하고 아픈 마음이 담긴 글이었다. 코로나19로 고통 받는 우리들뿐만 아니라, 신천지 이만희의 거짓 교리에 미혹된 20여만 명 이상의 신천지 신도들도 치유와 회복의 대상이다. 이단 문제에 있어서, ‘정죄와 분리’만이 해법은 아니다. ‘회복과 치유’에 초점을 맞춘 신학교육 프로그램의 계발과 적용이 절실하다.

한국근현대사 속에서 사회와 교회는 이단사이비 종교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처해오지 못했다. 다종교 사회인 한국사회에서, 헌법이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를 뛰어넘어, 위법적이지 않은 유사종교단체를 사전 관리하거나 감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공권력과 언론은 사후에 개입할 수밖에 없었고, 피해자들과 가족들은 거리로 나서야 했다. 그렇게라도 해야 사회의 주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신천지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단사이비단체들의 피해자들은 거리로 나가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3)

이단문제는, 피해자의 눈을 통해 보고 귀를 통해 들었을 때, 그 본질과 위험성을 바르게 볼 수 있다. 이단문제는 고상한 교리적인 논쟁이 아니고, 이단문제는 교권 장악을 위한정치도 아니며, 정적 제거를 위한 수단도 아니다. 이단문제는 이해관계와 교파를 초월해 피해를 회복하기 위한 애절한 노력이 되어야 한다.

한편 신천지에 빠진 사랑하는 이들을 다시 되찾아오려는 가족들의 노력을 신천지는 소위 ‘강제개종’이라고 부른다. 적반하장이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정체를 숨기고 다가와, 거짓말과 속임수로 빼앗아간, 신천지가 ‘강제개종’의 주범이다. 얼마 전 법원은 이러한 신천지의 행태가 “사기행위의 기망이나 협박행위와도 유사”하다고 그 위법성을 판단했다.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신천지=거짓말=위장’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었다. 이미 교회가 알고 있었던 신천지의 정체를 이제 사회에서도 충분히 인지하게 되었다는 점은 일면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한국사회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외신들마저도, 신천지의 거짓말과 위장이 사태를 키우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거짓말’과 ‘위장’을 교리적으로 합리화한 종교단체는 없다. 신천지의 2인자였다가 최근 신천지의 정체를 폭로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김남희의 표현처럼, 이만희의 신천지는 “종교사기 집단‘일뿐이다.

3-3. 긍정 코드

‘신천지 반대’가 곧 ‘교회 찬성’은 아니다. 신천지에 대한 한국사회의 부정적 인식과 비판이 교회를 향한 지지를 의미하지 않는다. 코로나19와 관련한 교회의 부정적인 모습이 조금이라도 노출되는 순간, 여론은 교회에 대한 비판을 망설이지 않는다. 다종교 한국사회에서는 교회와 신천지의 관계가, 정통과 이단과의 관계로 이해하기보다는, 누가 더 사회적 순기능을 하느냐의 관점으로 바라본다. 즉 신천지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언제든지 비윤리적이거나 반사회적인 모습을 노출하는 교회를 향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교회를 향한 한국사회의 비판은, 교회를 향한 높은 기대치를 반영한다. 교회가 민족을 위해 했던 일들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한말 콜레라가 창궐해 수많은 목숨을 빼앗아갈 때, 알렌, 언더우드, 에이비슨 선교사를 비롯한 기독교인들은 전염병 확산을 막는데 헌신적으로 봉사했고, 이로 인해 교회는 백성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으며, 이는 복음전도의 새로운 환경을 만들었다. ‘부정적인 위기’는 곧 ‘긍정적인 기회’였음을 교회역사는 증언한다. ‘개혁의 주체’로 우뚝 설지, 아니며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할지 모를 갈림길에 한국교회가 서있다.

우리 얼굴을 덮고 있는 마스크처럼, 비록 코로나19로 인해 불편함과 답답함이 점점 늘어나지만, 불확실한 세상에서 긍정 코드들을 찾아내고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중세시대 흑사병이 온 유럽을 휩쓸며 수천만 명이 희생되었지만, 동시에 교회와 인간의 실존적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준 전염병의 현장에서, 위클리프, 후스, 루터로 이어지는 종교개혁과 르네상스라는 긍정의 코드들로 이루어진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졌다.

올해는 6.25전쟁 70주년이다. 부산광역시 중구 동광동주민센터에 가면 특별한 전시공간이 있다. 6.25전쟁 피난살이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40계단문화관’이다. 전쟁과 전염병 속에서, 피난지 부산의 바닷가, 천변, 산자락을 가득채운 피난민들과 판잣집들의 모습, 그리고 피난살이의 절박함을 느낄 수 있는 당시의 생활용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70주년을 맞는 6.25전쟁의 실상을 피난민의 눈을 통해 바라볼 수 있는 작지만 소중한 공간이다. 이곳을 들릴 때마다 전시관 한쪽 벽면에 붙어있는 짧은 문구가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와, 당시 피난민들의 절박한 마음과 긍정적 소망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그래도, 살아야겠다.”

세상을 바꾸기는 힘들어도, 적어도 세상을 보는 눈은 바꿀 수 있다. 코로나19, 좌절과 패배의 코드를 날카롭게 예측하는 일보다, 희망과 긍정의 코드들을 발견해내고 확산시키는 것이 코로나19 시대의 신학교육의 과제이다.

맺음말

이단은 역사적으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해 왔고, 교회는 끊임없는 이단들의 도전에 효과적으로 응전해왔다. 그리고 그 응전의 결과가 우리의 신앙고백과 신학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걱정과 희망이 공존하는 오늘, 이단 바이러스에 대처할 수 있는 신앙백신의 개발과 영적방어시스템의 구축이 교회와 신학교육 현장에 요구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만의 리그에서 펼쳐지는 교리논쟁을 지나, 한국사회가 상식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공신력 있는 이단 연구와 예방 활동에 대한 신학교육 차원에서의 접근이 중요하다.

이단을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이단의 교회적·사회적 역기능을 경계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신천지 관련 빅데이터가 차고 넘치도록 노출되었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부정확한 정보들을 걸러내고, 신천지를 비롯한 이단들의 대처와 예방을 위한 유의미한 데이터들을 찾아내는 작업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들 데이터들을 분석하고 상호 연결한 후, 신천지에 대한 교회적 차원의 연합대처를 위해, 목회현장과 일상생활 속에서 공감할 수 있는 신학교육 콘텐츠를 계발해야 하는 과제가 놓여있다. 이제 ‘신천지OUT’을 넘어 ‘Beyond 신천지OUT’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할 시점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염려와 불안, 그리고 코로나19 이후의 새로운 시대를 기다리는 희망이 교차하는 오늘, 이단 신천지가 사라진 신천지, “새 하늘과 새 땅”(계21:1)을 꿈꾼다!

미주

1) 이 글은 코로나19와 신천지 문제와 관련해 「국민일보」, 「한국기독공보」, 「새가정」, 「좋은나무」 등에 게재된 최근의 글들을 수정·보완하여 편집한 것이다.

2) 특히 한자를 분해하여 설명하는 파자(破字) 풀이를 이용해 성경을 비유적으로 해석한다. 예를 들면, 통일교는 『격암유록』에 나오는 “팔금산(八金山)”이 6.25전쟁의 피난처 부산(釜山)이며, “전전(田田)”은 큰 밭이 아니라 십자가(十)로부터의 말씀(口), 그리고 밭 전(田) 자가 두 개이니, 초림주가 아니라 재림주의 말씀이라고 풀이하여, 재림주인 문선명이 6.25전쟁의 피난지 부산에 온 것이라고 해석한다. 전도관은 『격암유록』의 내용을 인용하여 성경에 나오는 동방을 비유적으로 설명하면서, 섬들은 잠잠하라고 했으니(사 41:1) 일본은 동방이 아니고, 땅 끝에서 부른다고 했으니(사 41:9) 중국이 아니라 한국이 동방이라고 해석한다.

3) 지난 3월 2일 이만희의 기자회견이 있던 날, 이만희가 뭐라고 해명하는지 들으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한 피해자 어머니의 카랑카랑한 메가폰 목소리로 인해, 이만희가 뭐라고 말하는지 알아듣기 어려웠다. 이내 회견이 끝난 다음에 시위를 하면 어떨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들어야 할 목소리는 ‘이만희의 목소리’가 아니라, 회견 내내 메가폰을 잡고 절규하던 ‘피해자의 목소리’였다. 어눌한 이만희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애쓰기보다, 딸을 신천지에 빼앗기고 애통하게 울부짖던 피해자 어머니의 외침을 들었어야 했다. 애절한 ‘피해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아전인수식의 ‘이만희 목소리’에 집중했던 내가 잘 못한 것이다. 이만희의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동안 애타게 딸을 찾던 어머니의 모습은, 신천지의 사기행위에 속아 집을 나간 딸을 찾기 위한 ‘평범한 엄마의 모습’이었다. 코로나 전염병이 신천지 신도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신천지에 속한 딸의 안전과 행방을 알려달라고 외치던 피해자 어머니의 모습에서, 오늘날 우리가 이단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를 분명하게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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