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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사건 이후 언론의 보도에 항의하는 기독교복음침례회 집단시위 |
이단들이 공격받았을 때 취하는 특징 중 하나는 시위를 하는 것이다. 일인시위를 하기도 하고 집회 신고 후 대규모 시위를 진행하기도 한다. 시위를 통해 자신이 피해자이며 시위대상자가 가해자임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하나님의교회의 KBS방송 저지 시위
1999년 7월 15일, 하나님의교회 신도 1만여 명이 한강 고수부지에 집결했다. 대형버스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고, 손목에 빨간 수건을 감고 앉아 항의집회를 했다. KBS <추적60분>에서 하나님의교회 시한부종말론을 다루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시위였다.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질 것을 기대했던 하나님의교회 측은 법원에서 방영을 허락하자 안상홍씨와 장길자씨의 대형 사진을 들고 KBS로 발걸음을 옮겼다. 경찰의 봉쇄로 저지됐으나 신도들은 고수부지를 뱅뱅 도는 모습을 연출하는 등 근처에서 시위를 지속했다. 신도들은 밤늦게 해산했으며 프로그램은 예정대로 방영됐다.
신천지의 이단상담소 시위
신천지가 가장 두려워하는 곳은 이단상담소다. 상담소에서 상담을 받은 신천지 신도들이 진리를 깨닫고 신천지를 탈퇴하기 때문이다. 이에 신천지는 이단상담소 앞에서 시위를 감행한다. 한국기독교이단상담소협회 광주상담소(강신유 소장)의 경우, 평일에는 신천지 신도가 일인시위를 하고, 수요예배 때는 10~15명이 몰려오고, 많을 때는 수백 명이 교회로 몰려와 7개월 정도 시위를 하기도 했다.
한국기독교이단상담소협회 안산상담소(진용식 소장)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신천지가 교회 앞에서 2~3년 정도 하루도 빠짐없이 시위를 했다. 주일에는 100~200명이 몰려오기도 했다. 신천지는 시위를 하면서 감금하고 폭행한다, 약을 먹인다, 조직폭력배가 있다며 상담소를 음해했다.
한편, 2010년 신천지는 과천 성전 건립 추진에 대해 과천시가 허가를 내주지 않자 대규모 시위를 한 바 있고, 2011년에도 원주시청에서 신천지 건축허가 불허처분을 하자 공설운동장에서 원주시청까지 가두행진을 펼치며 항의성 집단시위를 개최한 바 있다.
기독교복음침례회 대규모 시위
기독교복음침례회(기복침)는 1990년대 초‘오대양 사건 구원파 관련 의혹’이 제기됐을 때 대규모 시위를 벌여 언론과 공권력에 위압을 가했다. 세모직원 500여 명이 의혹을 보도한 문화방송에 난입하여 2시간 동안 무력을 행사했다. 박찬종 전 의원이 오대양 사건과 세모관계에 의문을 제기하자 박 전 의원 사무실과 집, 국회의사당 앞에서 연일 항의시위를 했다.
오대양 사건은 유병언씨와 관계없다는 검찰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유병언씨는 기복침 신도를 이용해 사업 자금을 마련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어 상습사기죄 유죄 선고를 받았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이후 기독교복음침례회의 대응도 이와 비슷했다. 기복침은 세월호 사건에 대한 책임문제가 유병언씨 일가와 교회에 몰리자 대규모 집회를 열어 항의했다. 지난해 4월 28일, 기복침은 “세월호 침몰과 관련 없는 악의적인 보도로 구원파가 사회악으로 지목돼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다”며 유병언씨와 교회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기복침은 금수원 앞에서 “순교도 불사한다. 유혈사태 각오하라”는 공세적인 태도로 검찰의 수사를 반대하는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기복침은 세월호 사건의 책임을 정부에 전가하고, 자신들은 관계없다는 일관적인 주장을 펼쳤다. 당시 여론에는 세월호 사건이 기복침의 전적인 책임은 책임은 아니지만, 대응이 과하지 않느냐는 비판이 있었다.
시위를 하면 주변 사람들은 시위자를 피해자로 생각하기 쉽다. 시위하는 사람들은 피켓과 플래카드를 들고 강력하게 호소하기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한 것으로 비친다. 그러한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 이단들은‘시위’라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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