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사만 사천은 무엇을 말하는가?

십사만 사천은 무엇을 말하는가?: 현대종교; 2008.03.05 19:20 입력

차정식
한일장신대 신학부 교수
본지 편집자문위원

아주 오랜 옛날 ‘숫자학’(numerology)이라는 학문이 있었다. 숫자를 가지고 수학적 연구도 했지만, 그와 함께 우주의 이치를 살피며 궁리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숫자야말로 신적인 속성을 지닌 실체라고 보고 그것을 신성시하면서 종교적 명상의 대상으로 삼기까지 했다. 이런 쪽으로 관심을 기울인 대표적인 인물이 ‘피타고라스의 정리’로 유명한 피타고라스와 그 후예들이다. 그들은 숫자에 신비한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의 조합과 분할을 통해 우주에 감추어진 비의를 탐구하는 종교적 영험을 검증하는 데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고대 수학의 발전이 그 깊이를 더해가면서 생겨난 수(數)의 형이상학과 그와 연계된 종교적 체험을 아울렀다. 대중들은 물론 전문적인 수학자가 아니라서 복잡한 수학의 공리보다는 수의 상징과 영적 의미, 그것과 연계된 종교적 세계로 마음이 끌렸고, 이로 인해 많은 숫자 신비주의자들이 종교 쪽에서 양산되었다. 종교와 시대, 문화와 종족은 달라도 숫자에 대한 이러한 종교적 명상을 심화하고 영험한 비의적 의미를 탐색하려는 시도는 예로부터 이와 같이 늘 있어왔고 지금까지 심심찮게 이어진다. 성경에도 수에 대한 관심사가 적지 않은데, 심지어 구약성서의 책 이름 가운데 하나가 ‘숫자들의 책’(the Book of Numbers; 민수기)이라고 붙여질 정도로 옛날 사람들은 숫자에 민감했다. 
 신약성서에도 숫자에 대한 관심이 여러 군데 표출되는데, 가령 복음서에서 제자들을 가리키는 대표적인 숫자는 3, 7, 12 등이다. 이것들은 모두 완전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숫자들인데, 요한계시록에 오면 좀 더 복잡해져서 666, 144,000 등의 숫자가 주로 문제시된다. 성경에 대한 약간의 역사적 지식만 있다면 이런 숫자들에 대한 이단사설에 그리 쉽게 현혹될 수 없다. 7이란 숫자가 전통적 숫자학의 관점에서 완전함을 나타낸다면, 거기서 하나 모자라는 6이라는 숫자는 불완전의 상징이고 그것이 3개 완전하게 겹쳐지고 있으니 666은 간단히 말해 ‘완전한 불완전’의 총화이다. 이 완전한 불완전은 곧 끔찍한 불안전의 극치라고 할 수 있으니 이 숫자로 저자가 무엇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 초보적인 상상력만 발동해도 쉽사리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숫자학의 상식에 기대어 볼 때 144,000은 완전함을 나타내는 12를 12곱하여 그것을 충만하게 000으로 채운 숫자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물론 여기서 한 단계 깊이 묵시문학의 신학적 셈법으로 나아가면 이 숫자의 표상은 조금 복잡해진다. 이 숫자가 쓰인 문맥을 살펴보면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다(계7:4). 뿐 아니라 그들은 저자의 환상 가운데 시온산에 어린 양과 함께 서 있는 자들로 그 이마에 쓴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계14:1). 이어지는 구절에서 그들은 또한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자들로 “(어린 양)의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오로지 그들만이 그 노래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계14:3). 여기서 ‘이스라엘 자손’이니 ‘시온산’이니 하는 문구에 기대어 이 숫자가 이스라엘 역사와 유대적 배경과 연관이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어떤 이들은 십사만 사천이라는 숫자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을 가리킨다고 보고, 또 다른 이들은 영적인 맥락에서 재해석하여 이들이 이방인으로서 기독교인이 된 자들을 염두에 둔 표현이라고 주장한다. 혹은, 양쪽을 두루 취하자면, 바울이 말한 대로 종말에 구원받게 될 모든 이스라엘 백성과 비록 돌감람나무였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백성의 대열에 동참한 이방인들의 충만한 수를 포괄하여 이렇게 표현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십사만 사천이란 숫자는 “어떤 결함도 없는 총체를 의미하는 완전수”(쟈끄 엘뢸)가 된다. 
 일부 이단종파에서 주장하는 대로 이 숫자가 구원받을 숫자를 배타적으로 한정하고 그것이 그들 종파에 소속된 사람들이라고 보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그 문제는 고대 숫자학이나 수의 상징적 의미에 대한 기초상식을 결여한 채 이 숫자의 의미를 단순히 수학, 아니 수학도 못되는 산수의 수준으로 떨어트리는 결과를 낳는다. 그리고 요나의 박넝쿨 에피소드를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구원의 보편성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신학적 문제를 야기한다. 어디 요나서만 그 계시를 보여주었나? 요나 이후로 태어나고 죽고 또 태어난 엄청나게 많은 인류의 생명들... 지금 살아 있는 사람만도 50억이 넘는다는 그 인류의 숫자에서 14만 4천의 자기 쪽 사람들만 빼고 다 지옥에서 영벌을 받으라고? 요나의 그 비유를 잊었는가? 예수께서 고작 동네 구원하려고 십자가를 졌단 말인가?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로부터 끊어지기를 바랄 정도로 치열했던 동족 구원의 열망은 어디로 실종되었단 말인가. 그 망각과 망발 속에서 이 땅에서 온 몸을 던져 사랑한 아가페의 하나님은 매우 옹색하고 졸렬한 인간 이하의 수신(獸神)이 되어버리니 이리 망극할 데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 거짓말을 하더라도 좀 세련되게 하고, 사기를 치더라도 좀 유머러스하게 치자. 이런 식으로 치닫는 이단종파의 해석은 ‘영감’이나 ‘지식’은 둘째 치고 최소한의 미학도 유머도 없으니 참으로 따분할 따름이다.

현대종교의 다른기사 보기

전체보기

현대종교

탁명환자료센터

이단뉴스

이단정보

과월호

쇼핑몰

마이페이지

고객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