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존재 여부에 관한 내기를 한다면 존재하는 쪽의 선택이 유리할거라고 17세기 프랑스의(과학자이자 철학자, 그리고 신학자인) 파스칼은 말했다. ‘신의 존재를 믿었는데, 정말 존재한다면 천국행이겠고, 반면 존재를 믿었는데 존재하지 않는다면, 교회(성당)에 가는 시간과 물질의 약간 손실만 있을 것이며, 신을 믿지 않았는데 존재한다면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 속에 살 것이고, 믿지 않았는데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득도, 손해 볼 것도 없다’라고.매수1. 중국이 최근 각국에 구축해놓은 미디어 인프라를 통해 자국에 긍정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아울러 해외 여러 나라 언론을 매수하는 데도 열심이다. 장단의 의견이 분분하나 돈이면 다 되는 세상, 중국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는 줄고 있다.2. 중국의 언론 활용에 대해 말하니 국내의 이단과 언론에 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메이저 언론까지 섭렵하고 있는 ‘하나님의교회’를 보면서는 더욱 그러하다. 2019년 9월 「미디어오늘」의 기사 중에 ‘하나님의교회’와 「동아일보」의 12억 거래 내용을 담은 기사가 게재됐었다.당시 교계와 사회, 언론에 큰 파장을 일으켰는데 그 외 「중앙일보」, 「매일경제」,「한국경제」, 「한국일보」, 「경향신문」 등의 일간지와 「월간중앙」, 「여성조선」, 「주간조선」, 「KOREA TIMES」, 「아주경제」 등에서도 이단의 홍보 기사를 게재해왔다고 밝혔다.믿을 만한 언론에 보도되어 믿을 만한 단체로 보이기 위해서 ‘하나님의교회’는 주요 언론에 엄청난 물질을 쏟아부어 시한부 종말론, 가정불화와 이혼, 낙태 강요 등 꼬리표처럼 달린 부정적인 사실을 지우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본지 역시 이단들이 한국의 주요신문 등과의 커넥션을 통해 긍정적인 보도 등으로 이미지 변화를 꾀하고 있으니 주의해달라는 기사를 때마다 게재해왔다.이렇듯 언론이 독자들에게 필요한 기사를 제공해야 하나 그와는 반대로 사회적으로 문제있는 단체와의 커넥션을 통해 긍정적인 보도를 지속해오고 있다. 그나마 남아 있던 언론의 공신력이 그로 인해 땅에 떨어지고 있다.3. 최근 ‘다락방’의 움직임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단으로 규정됐으나 나름 정통교단이었던 예장개혁 측 중 한 곳과 합쳐진 후에 이단의 굴레를 벗고자 노력을 기울여 왔다. 모 기독언론에 그동안 기사 게재와 광고로 정성을 쏟더니 이제는 아예 교단이 나서 구독 운동을 벌이고 있다.그 일도 민망하나 그 언론도 그와 관련해서 일절 언급이 없으니 이 또한 민망할 따름이다. 기독교 언론을 향한 이단의 적극적인 후원과 협조에 관한 고민과 대처 없이는 이단 대처도 쉽지 않을 것이다.4. 언론이든 종교든 간에 명예가 실추되지 않고, 타성에도 젖지 않도록 다각도의 시선을 안고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며 진일보해야 함이 필요할 때다. 그러기에 건강한 종교와 언론,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도록 지혜의 충만을 간구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언론의 의무를 지키면서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노력이 요구된다.요즘 몇몇 기독 언론을 보면 제대로 된 기사 하나 없이 광고로만 먹고살기 위해 언론을 운영하거나 이단을 이롭게하는 언론의 활동도 많아지고 있다. 오로지 물질을 위해서만, 내지는 정보력 부재로 인해 허락도 없이 원자료들을 마구잡이로 사용하는 도덕적 불감증에, 더 나아가 이단과 이단성 있는 단체의 옹호조차 부끄럽게 생각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그저 참담할 뿐이다.우리가 최선을 다해 이 문제를 바로잡아야 하는 이유는 이단(이단 옹호)언론들의 쇠퇴가 종국엔 이단들의 쇠퇴로 이어지고, 한국교회가 바로 서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언론의 생존, 본지의 생존이미 10여 년 전에 스마트폰을 통한 뉴스 생태계의 주도권은 전통 미디어에서 디지털 플랫폼 미디어로 옮겨갔다. 저널리즘의 위기를 말하는 이들이 느는 것이 자연스럽다. 조회 수가 생존법이 된 시대, 아직도 기자의 신분으로 현장 취재조차 하지 못하고 클릭 수를 올리며 사는 이들이 있다.최근 배우 황정민씨가 출연했던 <허쉬>라는 드라마에서처럼 신문사 직원들이 온종일 포털사이트 메인에 뜬 기사들을 긁어 복사해서는 내용만 조금씩 바꾸고 다듬어 다시 게재하는 일은 현재진행형, 팩트다. 인터넷 언론들이 늘수록 스트레스 쌓이는 낚시성 기사들도 해가 거듭될수록 넘쳐나고 있다.다시금 종이 언론 이야기를 꺼내 들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본지는 역병 발생 1년 6개월이 지나는 동안 안팎의 문제 해결들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러나 자긍심만큼은 위의 언론들과 반비례하고 있음은 본지의 생산 콘텐츠가 많은 이들에게 유익을 주고 있어서다.보수는 좀 적더라도 응원과 기도에 힘입어 보람과 자긍심을 갖고 자유롭게 취재와 편집, 상담 등으로 열심히 일하는 본지 같은 언론이 어쩌면 세상 유명 언론들보다 더 나은지도 모르겠다(발행인 혼자만의 믿음인진 모르겠지만).무튼 이단에 관한 보도에 있어서 트렌드만 좇는 것이 아니라 「현대종교」만이 할수 있는 일을 근사하게 잘 감당하는 등 독자 제현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할 테다. 아울러 유튜브 시대에 종이 잡지가 존재해야 할이유를 방증할 수 있는, 가치 있는 기사로 매달 보답하도록 하겠다.그러기에 요청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 언론의 경우는 위의 일들을 통해, 내지는 보험성 광고만으로도 매출 유지가 가능하나 본지 같은 기독 잡지들은 광고에 기대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유튜브와 온라인에 걸맞은 시대가 되면서 본지의 소신을 지키는 데 어려움이 적지 않기에 지나친 부탁이 아니라면 본지를 포함 기독교 언론에도 다른 조건 없이 광고로 힘을 불어 넣어줄 교회나 기업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과 더불어 섬김과 나눔의 요청에 관심과 기도, 그리고 지지와 응원으로 답해주길 소망해 마지않는다.✽ 40년 가까이 광고 업무를 맡아왔던 본지 남후식 국장이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본지를 떠나게 됐다. 팔순을 넘기고 있으나 웬만한 이들보다 더욱 열정의 맘으로 일해 온 그에게 아낌없는 박수와 그간의 수고에 진심 어린 감사 인사를 건넨다. 앞으로 광고는 직원들 모두가 협력하여 맡을 예정이다. 위의 이야기처럼 다시 한번 광고 게재로 힘을 보태주길 바라나 그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밑에 담았다. 꼭 살펴봐 주시길.디지털 후원회원제대로 된 언론을 갈망하며 1988년 국민의 힘으로 창간했던 모 신문이 최근 ‘디지털 국민 후원 미디어’로 거듭나겠다고 하며, ‘후원회원’을 중심에 둔 디지털 연결을 본격적으로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30여 년 동안 ‘국민주 신문’ 성격을 유지하는 세계 유일한 매체라고 말해왔던 신문이 지금까지는 지배구조와 달리, 매출 구조에서 기존 언론사들처럼 종이신문판매와 광고 수익에 의존해왔다고 고백했다.그러나 디지털 시대로 접어 들면서 포털과 소셜 미디어(SNS)가 뉴스를 흩뿌리고 이를 중심으로 독자들의 뉴스 소비 행태가 급변했기에 ‘국민주 신문’이라는 창간 정신이 훼손될 위기에 처했다며 “눈앞의 광고 수입을 넘어 주주 · 독자들과의 강력한 연대와 신뢰를 쌓아가는 일이 궁극적으로 참된 국민언론의 길을 닦는 결정적 토대”라고 했다. 아울러 후원회원제를 통해 신뢰를 얻으며, 인프라를 다시 짜는 출발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결국 광고 의존도를 낮추려 후원회원제를 도입하는 것이 그들만의 일이 아닌, 여러 뜻 있는 언론들과 본지도 함께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그러기 위해서는 콘텐츠가 차별화되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하며, 진심을 담은 노력 또한 필요할 것이라 본다. 독자와의 관계를 새롭게 구축해야 함도 물론이고. 본지는 법인의 사역이 불가한 상황에서 고민 끝에 회원제를 선택한 이후 5년이 지났다. 법인이든 회원제이든 각각의 장단점이 있긴 하나 그간의 운영 방침에 잘 적응, 적용해왔음에 회원들과 독자 모두에게 지면을 빌어 감사 인사를 전한다.시대가 바뀜에 따라 사역과 언론의 본질, 그리고 창간 정신과 십시일반의 마음만 빼고 모든 것을 새롭게 변화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로 인해 본지가 살고 한국교회도 살며, 언론들 역시 건강한 마음으로 엄한 생각은 떨쳐버리고, 맡은 일 잘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울러 세상이 던져준 과제, 내지는 내기에서도 멋지게 이겨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당연히 파스칼의 내기 논증은 신이 존재한다는 선택이 리스크가 적고, 신을 믿지 않았는데 존재한다면 지옥에 가는 리스크가 워낙 크니, 그 존재를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이야기겠다. 우리 삶과 신앙을 굳이 내기로 전락, 언급할 필요는 없겠으나 부활한 예수를 만져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던 도마와는 다르게 직접 경험하진 못했어도 믿음과 확신을 잃지 않고 사는 것이 어쩌면 제자들보다 더한 복이지 않나 싶다. 그러니 버거운 삶과 사역도 기쁘게 감당하고 있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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