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믿음, 그리고 이단 대처에는 ‘열심’보다 ‘방향’이 더 중요하지 싶다. 나와 우리 삶의 방향을 다시 한번 점검해 볼 수 있는 근사한 가을날들 되길 바란다.암살자(들) - feat 「동아일보」 -작금에 영화 ‘암살자(들)’의 이야기를 꺼내면 큰일인지 모르겠다. 제발 영화는 영화로만 보면 좋으련만, 그게 그렇게 쉽지 않은가 보다. 아무튼 관련해서 정치적 논란과 역사 왜곡 문제는 잠시 뒤로 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 하나를 꺼내어 보고자 한다. 영화의 주제도 주제지만 극 중 가슴에 더 와닿았던 것이 있어서다. 군부의 언론 검열에 맞선 기자들의 ‘자유언론실천운동’이다. 언론에 몸담고 있어서의 이유가 있겠으나(그래서인지 최근 언론인 등 동료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존경했던 언론인 청암 송건호 선생의 삶을 스크린으로나마 볼 수 있어서였다(극 중에서는 배우 박해일이 송선생의 역할을 맡았는데 혹자는 편집국장 역(배우 배성우)이 그의 역할이라고 하는 이도 있다). 당시 군부의 언론 검열에 맞섰던 기자들의 삶과 투쟁 때문이라도 영화에 더 끌린 것이 사실이다.영화에서 「동성일보」로 나온 당시 「동아일보」가 공격받았던 주요 이유는 유신정권에 대한 비판, 언론규제법 반발, 대학가 시위 및 민청학련 사건 보도 규제 등에 따른 갈등 때문이었다. 이에 중앙정보부는 「동아일보」 측을 압박하는 데 열을 올렸고, 언론 보도에 강력한 검열을 해댔더랬다. 아울러 영화 후반부에「동아일보」가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하고 중앙정보부가 용역을 동원해 기자들을 공격한 부분을 영화적 요소로 알고 있는 이들이 있으나 모두 사실이었다. 이렇듯 역사 왜곡 문제는 둘째 치고,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고자 했던 당시 정권의 모습을 비춘 것 때문에라도 영화의 필요성이 컸다. 그래서인지 영화 ‘암살자(들)’가 부디 정치적으로만 소비되지 않길 바란다. 문제는 그렇게 공의로웠던 「동아일보」와 기자들이 오랜 시간 언론의 자긍과 자존심을 지켜왔건만 어찌 된 일인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이단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단 옹호로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더 나아가 이단의홍보지 노릇을 하고 있으니 유신 정권 때 목숨을 다해 언론을 지켜내고자 했던 선배들이 땅을 치며 통곡하지 않을까 싶다.2011년 5월 21일에 「동아일보」는 시한부 종말론 단체에 대해 보도하면서 ‘하나님의교회’를 탈퇴한 피해자의 증언을 게재했더랬다. ‘하나님의교회’ 피해자의 발언을 직접 인용하면서 “(이 교회는 2000년) Y2K(밀레니엄버그, 컴퓨터가 2000년 이후의 연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결함)로 인한 컴퓨터의 오작동으로 종말이 분명히 온다. 인류는 2000년을 넘길 수 없다”는 주장을 보도했다. 덧붙여 신도들이 당시 생수, 건전지, 비상약, 건빵, 통조림, 초 등 비상용품을 준비했고, 1988년에도 시한부 종말을 주장했었다고 밝혔다. 결국 당시 기사로 인해 ‘하나님의교회’ 신도 1000여 명이 「동아일보」 사옥을 둘러싸고 강력하게 항의 시위를 벌였고, 경찰들이 입구를 봉쇄해 신도들의 진입을 막기도 했다. 당시 「동아일보」는 ‘하나님의교회’ 종말 주장은 대법원 판결로 확인된 명백한 사실이고, 과거 시사 고발 프로그램에서도 취재, 보도한 바 있다고 반박했다. 그런데 5년이 지난 후 「동아일보」 입장은 180도 바뀌었다.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한 ‘하나님의교회’를 비판했던 언론이 그들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면 중에 C1면에서 C4면까지 온통 ‘하나님의교회’를 긍정적으로 보도했는데 무려 5명의 기자가 7개의 기사를 작성했더랬다. 결국 2019년 「미디어오늘」에서 ‘하나님의교회’와 「동아일보」의 12억 거래 내용이 담긴 기사를 게재했는데, 당시 교계와 사회, 언론에 큰 파장이 일었다. 그 외에도 「중앙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한국일보」, 「경향신문」 등의 일간지와 「월간중앙」, 「여성조선」, 「주간조선」, 「THE KOREA TIMES」, 「아주경제」 등의 언론에서도 이단의 홍보 기사를 게재해 왔다.믿을 만한 언론에 보도되어 믿을 만한 단체로 보이기 위해 ‘하나님의교회’는 주요 언론에 엄청난 물질을 쏟아부어 시한부 종말론, 가정불화와 이혼, 낙태강요 등 꼬리표처럼 달린 부정적인 사실을 지우기 위해 노력했다. 본지 역시 이단들이 한국 주요 신문 등과의 커넥션을 통해 긍정적인 보도로 이미지 변화를 꾀하고 있으니 주의해달라는 기사를 때마다 게재했더랬다. 언론은 독자들에게 필요한 기사를 제공해야 하나 그와는 반대로 사회적으로 문제 있는 단체와의 커넥션을 통해 긍정적인 보도를 지속해 왔으니 그나마 남아 있던 언론의 공신력이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영화에서의 「동성일보」와 송건호 선생을 포함한 당시 기자들의 열정과 올바름이 그리운 것이 비단 필자만의 생각은 아닌 듯하다.* 영화를 보면서 고 탁 소장의 사건을 다룬 ‘사이비 헌터’가 다시 생각났다. ‘사이비 헌터’의 부제가 필요하다면 위 영화의 제목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단수’의 사건이 아닌, ‘복수’로 이뤄진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고 있어서다.항의 2 (전광훈, 최바울, 정동수)처음부터 위의 세 사람이 세상과 한국교회의 주목을 받은 것은 아니다. 한 이는 코로나 전, 여성비하 문제로부터 시작해 이후 자기 정치력을 과시하며, 광화문 광장에서 마치 애국의 아이콘(?)이라도 되는 양 교계를 넘어 세상에까지 알려졌고, 한 이는 이슬람 선교의 지대한 영향력을 안고 선교의 아이콘으로 섰으며, 마지막 한 이는 극우의 정치적 정서를 전함과 동시에 교계에서는 성경 번역 등과 관련한 주장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러나 그 세 사람의 끝은 은혜롭게 마무리되진 못했다. 전광훈은 정치적, 신학적 등 여러 물의로 인해 결국 예장통합 측에서 ‘이단성 있음’으로 규정됐고, 최바울과 정동수는 둘 다 이단으로 규정됐다. 최씨는 베뢰아, 신사도운동 관련, 양태론의 문제와 지역교회와 선교지에서 충돌 등으로 인해, 정씨는 한국교회의 성경에 대한 혼돈과 번역에 관한 오해로 성도들을 혼동, 혼란시켰기 때문이다.문제는 이들 모두가 이단 내지는 이단성의 결의가 있었음에도 평소 집회 중에 이 사람들 이름과 그들의 단체를 언급이라도 하면 관련된 이들의 항의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 9월호 칼럼에서도 정씨 관련해서 비슷한 이야기를 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참 황당하고 당황스럽기만 하다. 이단 교회에서 진행하는 강의도 아니고,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말씀을 전한 것인데 격려는 둘째치고, 항의받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으니 이를 받아들이기가 쉽진 않다. 그런데 더 황망한 것은 초청받은 강사가 그 같은 항의로 인해 곤혹스러워하는 데도 누구 하나 반응과 대처 없이, 멀찍이 바라만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생각해 보면 집안싸움을 손님에게 맡기고자 하는 모습으로도 보였다. 이렇듯 선한 공동체 안에 결코 섞일 수 없는 두 신앙이 맞물리는데도 ‘함께 공존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내지는 ‘교회의 평화를 위해서 다툼은 안 된다’는 말도 안 되는 변명과 침묵이 적지 않았던 집회의 현장을 독자 제현께 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신천지라도 그렇게 했을까. 같은 이단(성)임에도 어떤 것은 문제없고, 또 어떤 것은 안 된다는 해괴망측한 사고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오래전에 신천지가 집회 전, 후로 예배 방해와 압박을 가했을 때는 모두가 거룩한 분노의 마음으로 함께 문제를 풀었는데 세월이 흘러 이단으로 규정된 단체에까지 관대함과 더불어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냐?’며 침묵, 방관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단 사역의 자긍심이 일순간 사라지고, 더불어 자괴감마저 든다. 기독교의 신앙은 ‘순교’ 아니면 ‘배교’라는 탁 교수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맞다, 중간은 없다. 부디 겉으로만 그리스도인의 무늬를 띠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며 결코 이단들과는 타협 없도록 해야 할 테다. 아울러 늘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임을 고백하며, 하나님께만 붙들려 살아가는 것, 그것이 또 하나의 해결책이지 싶다.* 그래도 이렇게 항의와 압박을 받으며 사역한다는 것은 선한 영향력을 안고 열심히 일한다는 방증인 것 같아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그래도 적 아닌, 아군끼리의 다툼과 항의는 이제 사양하고 싶다.매년 ‘새빛 요한의 집’의 초청을 받고 있다. 오래전 대종상을 수상했던 영화 <낮은대로 임하소서>의 주인공 안요한 목사께서 섬기는 곳이다. 대부분 시각장애인들과 자원봉사자들로 모인 단체인데 이곳에서 매년 이단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도 변함없이 초청받았는데 이곳에 올 때마다 드는 두 가지 생각이 있다. 시각 장애인들의 이단 관심이 비장애인들에게도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과 점자를 통해서도 이단 대처 자료가 발간되었으면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