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 블루제이스 류현진 선수의 재활 이후, 그의 가치를 또다시 증명하고 있는 ‘느림의 미학’에 관한 소개가 늘고 있다. ‘빠르게’가 당연한 세상에서 ‘느리게 더 느리게’라니. 그럼에도 곱씹어 볼 만하다. ‘빠르게’만이 정답은 아닐테니 때로는 느릿느릿한 여유와 평안을 만끽할 수 있었으면 한다.
빠르게 더 빠르게
평소 목소리가 작지 않고, 말도 꽤 빠른 편이다. 심지어 걸음걸이부터 식사까지 모든 것이 그러하다. 몸에 밴 습관을 어찌할 방법이 없으나 직업병이기도 한 습관을 굳이 고치고 싶진 않다. 강의 후에 “말이 참 빠르시네요!”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곤 하나 시간 내에 한 마디라도 더 전하고자 하는 간절한 맘이 은혜가 되기도 하니 나쁘지만은 않다. 본지의 1인 5역쯤 되는 역할과 주어진 일을 제대로, 좀 더 빨리 마무리하기 위해서도 어찌할 수 없고.
느리게 더 느리게
나이와 부상 등을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세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류현진 선수는 어느 정도 회복에 성공했다. 메이저리그이든 한국 야구든 간에 투수들의 구속이 점점 빨라져 가고 있지만 아무리 구속이 빠르다고 해도 제구력이 부족하다면 훌륭한 투수라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시대를 역행하며 돌아온 그가 더욱 반가운지도 모르겠다. 타자들이 겪어보지 못한 느린 공이 때로는 빠른 공보다 유효하고 적절하다는 것을 보는 일도 즐겁다. 빠른 것이 온당한 걸까? 아니면 느리긴 하나 제구(목적)에 좀 더 반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이것이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겠으나 고민해봄 직한 내용이지 싶다.
습관이 고쳐지지 않아도 상관없겠으나 생각해 보면 조금은 찬찬히 주변을 돌아보며 삶을 나누고 즐기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100m 달리기가 아닌 마라톤처럼 사역했으면 한다는 예전 어느 어르신의 이야기를 떠올리니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더욱 젊게 진화할 수 있도록
그렇게 느릿한 사역의 태세 전환도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던 중, 한 가지 더는 본지가 지금보다 좀 더 젊어졌으면 하는 생각이다. 스웨덴의 언론 중 매우 오래된 신문사가 있다. 「엔더블유티」라는 언론인데 1837년에 창간했으니 올해로 무려 187살이나 됐다. 그러나 그런 언론(신문)에도 숙제는 없지 않다. 150년 이상 신문을 인쇄해 왔는데 구독자들이 점점 고령화되고 있고, 45살 미만 독자와의 연결도 끊어지는 등의 문제들이다. 결국 젊은 구독자 수를 획기적으로 늘리기 위해 젊은 독자의 필요, 관심, 열정에 대해 배우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으며, 바로 그 시간, 채널, 사람에게 맞춤한 콘텐츠를 생산할 것과 직원 교육과 신규 채용 과정에 이 과제를 반영할 것 등을 내세우며 새로운 도전선언문을 내놨다. 그리고 결과는 놀라웠다. 2년 만에 20대 독자가 40%에 육박하게 됐으며, 종이신문과 디지털 구독 수익 비율도 ‘95%-5%’에서 ‘70%-30%’로 변화한 것이다.
본지 역시 빠르기도 하고 때로는 느릿한 사역과 더불어 독자층 모두에게 필요한, 정곡을 찌를 수 있는 무언가를 창출해 낼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민, 노력하고자 한다. 진부하기만 한 이단 대처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을뿐더러, 하나님 나라의 확장도 더딜 수밖에 없어서다. 그간 노년층의 독자들과 더불어 젊은 층이 함께 호흡하고 공감할 수 있는, 좀 더 진일보한 역할이 필요하다는 문제 제기를 말하곤 했으나 실행으로 옮기지 못했음을 반성한다. 허나 여전히 포기하지는 않을 테다. 그 계획들이 언제가 이뤄지는 놀라운 역사를 맞이할 때가 올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본지 창간 때부터 지금까지 가능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던 일들이 이뤄진 것을 보면 분명 이 역시 가능하지 싶다.
느리게 가도 좋으니 부디 오래도록 머물 수 있길 바랐다. 그러나 더는 붙잡을 수 없는 이유로 3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그를 떠나보내게 됐다. 이제 우리는 그간 오롯이 막내 기자의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해 온 김리나 기자를 11월호부터 만날 수 없게 됐다. 그래도 독자들께서 그의 여정을 지지하고 응원해 줄 것이라 믿는다. 어떤 공동체라도 오고 떠나는 일이 당연한 일이겠으나 오랜 시간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반복되면 생각보다 마음의 상처가 깊어진다. 그러나 어쩌랴! 이것도 이단 대처 사역 중 하나일 수 있으며, 어떻게든 감내해야 하는 일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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