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말뿐이었던 ‘최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 것은 순전히 아시안게임 때문이다. 배드민턴 안세영 선수의 투혼 등 감동적인 순간들이 매시간 계속되었고, 좋아하는 수영에서도 인상적인 경기들이 많았지만 앞의 단어와 맞물려 기억나는 한 장면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롤러스케이트 결승 장면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경기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처럼 시간과 공간이 한정된 경기로부터 인생이라는 경기장에서의 모든 삶이 경기의 확장 내지는 축소판이지 싶다. 그러기에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 것이리라. 앞서 언급한 대로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 3000m 롤러스케이트 계주 때 결승선을 코앞에 두고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가 뒤따라오던 대만 선수에게 0.01초 차이로 뒤지고 말았던 사건을 당분간 잊긴 어려울 듯싶다. 평균 시속 43.9km로 달렸는데 12.2cm 차이로 금메달을 놓쳤다는 모 언론의 표현처럼 아쉬움을 포함해서 만감이 교차한다. 어떤 상황이든 어느 곳에서든 자만과 방심은 금물이며,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각인시켜 주기에 충분했던 사건(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이었다. 이단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은혜로 시작되어 감동과 더불어 심지어 병 고침의 역사까지 있기도 하나 마지막, 그 끝까지 검증하고 확인해야만 된다. 과정을 통한 은혜와 감동조차 악한 것일 수 있어서이다.
고 탁 소장의 조언이 생각난다. 삶의 순간순간을 마지막 유언하는 심정으로 살아가라는. 그 같은 맘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며 인생의 결론이 어떠하든지 간에 성공한, 아울러 행복한 인생일 것이고, 세상 경기와는 다르게 좀 더 근사한 자리매김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복싱이나 격투기 출전 선수들의 체중 감량에 관한 이야기도 떠오른다. 죽을힘을 다해 연습하는 것만큼 힘든 것이 승부 전 체중 감량을 하는 시간이란다. 물 한 방울 먹지 않는 것은 기본, 입 안의 침마저 무수히 뱉어내기도 하고, 심지어는 피를 뽑아서까지 체중 감량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많이 놀랐더랬다. 짧은 시간 경기의 배경에 이 같은 아픔과 고생이 존재한다는 것을 일반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그저 잘하면 칭찬하고 잘못하면 야유를 퍼붓곤 할 뿐이지. 아무튼 세상의 면류관을 위해서도 이리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데 신앙의 면류관에 이르기까지 좀 더 치열하게, 그리고 온 정성과 힘을 다해야 하지 않나 싶다.
상급
살면서 사람의 칭찬을 받는 것도 행복한 일일 테니 그 칭찬이 하나님의 것이라면 더할 나위 없는 감사와 은혜일 것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한 해 동안 좀 더 힘을 내어 계획했던 것들을 근사하게 마무리하길 바라며, 하나님의 귀한 칭찬들 많이 누리길 소망한다. 멋지게 새해를 계획함도 물론이고. 그런데 새해 인사를 건넨 지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연말 인사라니! 우리네 인생이 이렇게나 짧다. 이렇듯 길지 않은 세상 것에만 말고, 하나님의 나라에도 세상 관심에 100분의 1, 아니 1000분의 1만이라도 투자하는 삶 되었으면 한다. 아울러 우리가 침묵하게 되면 어쩌면 세상 사람들의 이웃을 위한 삶과 진짜처럼 보이는 이단의 삶이 세상을 바꿔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간절한 맘으로 독자 제현들의 건투와 외침을 주저하지 않는 삶을 소망한다. 이제 우리들의 시간이다.
롤러스케이트 결승 계주에서 0.01초로 메달이 바뀌는 상황을 넘어서서 심지어는 0.002초에 메달이 바뀌기도 하고, 0.003초에 순위가 갈리기도 했다. 누군가는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하는데 각본 없는 드라마이든 우리의 삶이든지 간에 조금 더 최선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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