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 집회 사역은 생애 처음 겪어본 무더위로 인해 힘에 좀 부쳤다. 그럼에도 행복에 겨웠던 것은 그 옛날, 순수했던 다음 세대와의 만남이 곳곳에서 느껴짐과 동시에 그때 만났던 이들을 다시 만나 추억을 곱씹을 수 있어서였다. 무려 20, 30년 전에 만났던 이들이었는데, 그렇게 다시 만난 이들이 족히 수십 명은 됐던 것 같다. 나름 다음 세대 사역의 열매가 작지 않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되니 감사할 뿐이었다. 열악한 상황이었으나 열정만큼은 너무도 컸던 2000년대 전·후반의 집회 현장들, 그때가 참 그립다. 그렇게 올여름은 이 같은 상념으로 보낸 시간이 많았기에 추억도 추억이지만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 후회 없도록 다시 고삐를 부여잡아야 할 테다.
침묵(feat, 정동수)이단은 자신들에게 이단이라 하면 가차 없고, 예외 없이 격한 항의를 쏟아내곤 한다. 법적 소송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강렬하게 저항하는 것도 물론이다. 당연한 반박이겠지 싶다가도 왜 이들은 자신들 믿음의 대상과 속한 교회나 단체가 이단으로 규정되었는지를 한 번쯤 고민해 보거나 회개하는 일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이단 규정으로 말이 많은 사랑침례교회 정동수도 그중 하나이다(정동수는 지난 5월 예수교대한하나님의성회 총회에서 이단으로 결의됐다. “킹제임스 성경(KJV)만이 완전무오한 성경이며 개역 성경은 마귀에 의해 변개된 성경”이라는 주장 등 때문이다. 앞선 2020년에는 예장고신 교단이 ‘예의주시 및 교류 자제’로, 2025년에는 예장합동 교단이 ‘이단’으로 결의하기도 했다). 최근 강의 중에 사랑침례교회 이야기만 꺼내면 그의 추종자들로 보이는 이들이 여러 번 항의를 해왔다(예전에는 인터콥이 그랬다. 교회마다 인터콥에 몸담은 이들이 적지 않았기에 인터콥 이야기만 꺼내면 항의해 왔다). 어떤 이는 상담 중에 눈물을 흘리면서 그의 말씀을 계속 듣고 싶은데 어떻게 안 되겠냐며 하소연하는데 참 황망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순간 교회 교역자들의 말씀을 그렇게 사모하고, 은혜로 받아들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교역자들께서도 말씀을 준비할 때 이런 일들을 생각하며, 더 간절하게 말씀 준비를 해야 할 테고, 성도들은 유튜브나 다른 통로를 통해서 검증되지 않은 이들의 말씀이나 강의를 접할 때는 반드시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만 한다. 부디 영적 자정 능력을 상실하지 않고, 항상 깨어 근신할 수 있길 바란다.
그래서인지 이단에게도 부러운 것이 생겼다. 불경스러운 이야기일진 모르겠으나 그간 그들의 열심을 보면서 ‘진짜가 더 열심히 해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최근엔 이단 신도들이 자신들 교회나 단체를 적대시하는 이들에게 불같은 분노를 쏟아내고, 자신들 조직을 지키고자 애를 쓰는 것에 다시금 우리들 교회를 돌아보게 됐다. 기성교회는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교회를 무너뜨리고자 하며, 성도들을 미혹하더라도 거룩한 분노의 마음으로 방어하고, 싸우는 이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만일 사랑하는 이를 욕되게 하는 이가 있다면 그가 누구든지 간에 결코 참기 힘들 텐데, 그보다 더 사랑하는 하나님을 늘 욕되게 하고, 망령되이 일컫는 데 다수가 침묵하는 것을 보며, 진정 하나님과 우리 공동체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싶다. 어쩌면 이단들의 항의가 정통교회의 침묵보다 나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 살면서 한 번쯤은 객기 아닌 패기로 이단과 멋지게 맞짱 한 번 떠보길 바란다. 그래야 후회 없지 않을까. 아울러 이단에 관한 관심도 이단 경계주일, 하루나 일주일에만 머물지 말고, 1년 365일 전체로 확대할 수 있었으면 한다.
사라지는 것2최근 다음 세대 캠프 등에서는 이단 대처 프로그램이 줄고 있다. 교회와 개인 간의 이해관계로 인해 잠시 관심을 두는 일은 있으나 근본적인 이단 대책을 고민하는 곳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몇몇 교회와 캠프들이 어떻게 이단문제에 대해 침묵할 수 있냐는 초청의 변이 그나마 위로가 된다. 물론 본지의 주요 사역이기에 이단 대처만 중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사역에는 유행이 없어야 하고, 늘 한결같아야 하며,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세상조차 이단 문제에 관심을 두고 문제를 풀고자 노력하는데, 정작 적극적으로 싸워야 할 이들이 침묵해서야 되겠는가 싶어 작년 칼럼 중 하나였던 ‘사라지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일 년이 지나 또다시 같은 내용의 칼럼을 쓰게 됐다.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들로 인한 답답함이 작지 않다. 하여 단 한 번만이라도 아이들과 성도들이 이단에 관해 들을 수 있는 배려와 아이들부터 모두가 이단 대처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관심을 부탁한다.
그래서인지 올여름 캠프는 어느 한 곳 예외 없이 모두 귀했더랬다. 한 가지 안타까웠던 것은 26년 동안 전라도 중심으로 사역해 온 단체 중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프론티어 캠프대표 김광중 목사가 결국 여러 어려움들로 인해 캠프 중단의 소식을 알려온 것이다. 2001년이었던가, 처음 이곳의 초청을 받고 만난 캠프는 정말이지, 은혜롭고 기쁨이 가득한 시간이었는데 적자가 쌓이는 등의 사정들로 인해 이제 더는 이어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단다. 그나마 감사한 것은 이것이 1막의 마무리지, 완전한 마무리는 아니라며 올겨울부터는 모이는 캠프에서 찾아가는 캠프로 각 지역 순회 방식의 캠프를 만들 것이라고 했다. 다행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제2막에 대한 기대를 기도로 함께하고자 한다. 아무튼 이러한 현실을 바라보며 앞으로는 수련회나 캠프에 참여하는 교회들이 캠프지기들의 고충이 무엇인지를 참여하기 전과 참여하는 동안 같이 고민, 기도하며 함께 만들어 가는 캠프가 되길 바란다. 세상에서는 1~2만 원이 큰 물질은 아니나 유독 캠프들은 각 교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렇게 적은 인상조차 벌벌 떨며 ‘올해만’, ‘한 번만 더’하고 인상을 미루다가 결국 문을 닫고 마는 것 같다. 다음 세대를 위해 평생 사역해 온 이들을 더는 외롭게 하지 않았으면 한다.
물론 이와는 다르게 특별하게 운영되는 캠프들도 있다. BJ 워십캠프(대표 한규석 전도사)와 틴매니아 캠프(대표 류찬규 목사)라고 들어봤는지 모르겠다. 앞의 BJ 워십캠프는 참가비가 무료, 내지는 만 원 정도로만 매년 캠프를 열고 있는데,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미자립 교회 등을 섬기면서 사역해 왔다. 식사도 가족들과 스태프들이 모두 나서 준비하는 가족 같은 분위기인데 프로그램만큼은 어떤 캠프도 따라올 수 없는 은혜가 풍성한 천국 잔치이지 싶다. 올해 전반기는 제주도에서, 그리고 여름엔 가평에서 진행했는데 무려 200여 명이 넘는 인원들이 기쁜 마음으로 은혜를 나누었다. 강사들도 은혜를 끼치러 갔다가 도리어 은혜를 받고 돌아오기 일쑤인데, 이번에도 감사한 마음으로 참여한 아이들 모두에게 아이스크림 턱을 내기도 했다. 그런데 섬김과 나눔은 돌고 도는 것이라 했던가. 강의 후에 스태프들이 모은 후원금이라며 봉투를 받았는데, 물질을 떠나 도대체 어떤 캠프나 교회에서 이 같은 사랑을 받아 볼 수 있을까 싶어 마음이 너무도 짠했다. 틴매니아 캠프는 어느 정도의 참가비는 받긴 하나(그렇다고 많은 금액은 아니다.) 이 캠프의 목적 중 하나가 다음 세대 아이들을 잘 먹이고, 잘 재우며 넉넉한 은혜를 받게 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캠프이기에 호텔 수준의 장소에서, 수련회 음식이라고는 생각지 못한 수준의 질 좋은 식사와 간식을 제공하고 있다. 막상 본지 강의 사역팀도 경험하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 외에도 잘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귀한 캠프들이 얼마나 많을까 싶다. 그로 인해 다음 세대의 믿음과 신앙의 성숙이 가능했으리라.
반대로 간절한 마음으로 초청하긴 했으나 막상 가보면 강사들에게 어려운 처지만 쉴 새 없이 이야기하며, 불평과 불만만 쏟아내는 캠프라든지, 딱 봐도 돈만 밝히는 것이 역력한 집회지들, 그리고 손님에게 물 한 잔, 커피 한 잔 등 그 어떤 섬김도 기대할 수 없는 캠프들을 보노라면 힘이 빠지곤 한다. 강사들도 연약한 사람들이어서다. 이리 기본도 갖추지 못했는데 여기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런 곳들에 아이들을 맡기기에는 맘이 영 편치 못하다.
캠프들이 사라지고, 이단 대처 프로그램도 더는 늘지 않고 있다. 게다가 기본인 손님에 대한 예의와 배려들마저 사라지고 있으니 더는 말해 뭐할까, 싶지만 그럼에도 앞서 소개한 몇몇 캠프들처럼 감사한 일도 적지 않으니 그래도 아직 절망과 실망은 이른 듯하다.
모든 이방인을 신처럼 환대하라올해 최고의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오디세이>의 핵심은 한마디로, ‘모든 이방인을 신처럼 환대하라’이다. 이것은 그리스 신 제우스의 법이기도 한데 나그네 등의 이방인을 신성한 도덕적 율법처럼 환대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개념으로, 고대 그리스 문명과 사회적 약속을 유지하는 규칙이라고들 소개하고 있다. 반대로 환대를 거부하거나 약탈·기만을 하면 신의 노함을 당하게 되는데 영화에서는 트로이 목마 사건과 같은 기만이 ‘제우스의 법’ 위반의 대표 사례로 언급됐다. 감독은 사람의 욕망,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이 깨지는 것으로 인해 더 큰 재앙이 일어남을 영화를 통해 경고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선 분쟁이 일어나고 아직도 전쟁이 진행 중인데 이런 모습을 영화 <오디세이>는 사람과 사람 간의 합의와 신뢰가 깨진 국가와 사회로 비판하고 있다.
필자의 장점이면서 동시에 단점은 세상 것과 믿는 이들의 것, 그리고 이단과 정통을 비교하며 말씀을 풀어갈 때가 많다는 점이다. 그래도, 그것이 나쁘지만은 않은 이유는 나름 경각심이 크다는 장점이 있어서다. 그러던 중 앞서 소개한 영화의 핵심이 다시금 가슴속에 닿게 되었고, 교회마다 한 번쯤 곱씹어 봐야 할 문제인지라 이번에도 놓치지 않았다. 위의 제우스의 법은 먼저는 교회에서 시행해야 할 마땅한 것이지만 그렇지 못한 곳이 많은 듯해 아쉽고, 반대로 그 법을 이단, 신천지가 역이용하여 교회마다 성도로 가장하여 포교하고, 이후 서로를 의심하게끔 만들어 결국 더 큰 재앙으로 이어온 것이지 싶다. 국가적인 사태인 정교유착 등의 문제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신화이든 성경이든 간에 위 제목은 숭고한 것이겠으나 사람이 그 숭고함을 분쟁으로 만들고 있다.
그런데 집회 때마다 좋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초청 교회를 방문해서 강의를 준비할 때마다 버거운 것 하나는 담당자들과의 마찰이다. 신경전이라고 해야 할까? 본지(강의 사역팀)는 강의 전에 <집회 협조문>을 집회지들에 보내곤 한다. 예배 준비도 그렇지만 이단 대처 집회는 더욱 꼼꼼히 준비해야만 해서다. 철저한 강의 준비와 더불어 아침 경건회 때에는 집회지를 위해 무시로 기도하고 있다. 그렇기에 교회 담당자들 역시 집회 준비에 힘을 실어주는 이들이 많으나 꼭 이렇게까지 준비해야 하냐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가장 어려운 것은 방송과 영상 담당자들과의 이해 충돌이다. 오죽하면 담임목사보다 방송 담당자가 더 어렵고, 조심스러울 때가 많으니, 말 다 했지 싶다. 전문적인 자존감도 중요하겠으나 신앙의 자존감으로 집회 준비에 힘을 좀 실어주면 좋겠는데 의견을 내면 당신들이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가 영상과 음향이 제대로 준비되지 못한 채, 강의가 시작된 적도 많았더랬다. 손님인, 강사도 이렇게 맘이 편치 않으니 새신자들이 느끼는 교회의 문턱은 얼마나 높을까를 자연스레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게 초청 담당자 등의 불성실한 태도로 망친 강의가 그간 적지 않았다. 이번 여름에도 모 교회 전교인 수련회 때 담당자의 적극적인 도움이 있어도 어려웠던 상황이었는데, 뭐가 그리 불만이 많은지, 제대로 된 도움을 주지 않기에 다른 관계자들에게 청하여 집회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정말이지, 이제는 좀 편하게 강의하고 싶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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