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태론적 삼위일체론-이단으로 빠지는 지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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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형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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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8 08:48 입력 | 2020.05.28 08:49 수정
많은 이단이 교주를 재림주, 보혜사라고 주장한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 말도 안 되는 주장을 믿는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논리가 숨어있기에 사람을 하나님으로 믿는 것일까?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전 작업이 바로 삼위일체 신관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이단들은 교주가 하나님임을 주장하기 위해 공통적으로 ‘영육합일교리’ 또는 ‘신인합일교리’를 주장한다. ▲양형주 목사 대전도안교회 담임 바이블백신센터 원장 |
쉽게 말하면 이런 것이다. 신약 시대 때 예수님의 육체에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초림주가 된 것처럼, 재림 때 예수님의 영이 교주에게 임하여, 재림주가 된다. 그래서 교주에게는 초림 때 임했던 예수의 영이 임하여 있고, 그의 육체에예수의 영이 임하여 있기에 재림 예수가 된다. 이렇게 되면 재림주가 정말 눈앞에 실재하는 희한한 역사가 일어난다.
그래서 이단에 빠진 이들은 재림주를 보면 감격하여 눈물을 흘린다. 그의 육체 때문이 아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영, 예수의 영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왜곡된 신앙으로 열어 주는 관문이 바로 ‘양태론’이라 불리는 왜곡된 삼위일체 신관이다. 어릴 때 교회학교에서 흔히 삼위일체에 대해 들었던 역할의 유비가 있다. 필자는 집에 가면 한 가정의 아버지다. 또 교회에 오면 목사다.
동시에 대학교에 가면 교수다. 동일한 한 사람이지만 각각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 서로 다른 신분의 사람이 되지만 동일한 한 사람인 것이다. 이러한 삼위일체 이해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사역의 시기와 형태에 따라 다르게 오셨을 뿐, 본질적으로 같은 한 분으로 보게 한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다 같은 동일한 한 분으로 본다. 이것이 ‘양태론’이다. 양태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을 말한다.
양태론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본질은 그대로이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형태만 바뀌었다는 주장이다. 이단들은 양태론을 이용하여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에는 성부 혹은 여호와로, 신약 시대에는 성자로, 종말 시대에는 예수의 영을 입고 오신 교주로 온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삼위일체는 성부, 성자, 성령이 모두 다른 분이고 따로 계신 것인가? 이렇게 되면 삼신론으로 간다. 흔히 농담 삼아 가정에 가면 이런 형태의 삼위일체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신랑, 소파, 리모컨 이 세 개가 하나로 연결되어 삼위일체가 된다! 딱 붙어서 마치 하나처럼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각각의 존재는 같은 본질이 아니다. 신랑은 인간이고, 소파는 가구고, 리모컨은 전자제품이다. 그저 같이 있다고 일체가 아니다. 일체는 본질과 존재에서의 일체다.
그런 일체가 각각의 구별된 위격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삼위일체는 인간의 지각으로 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신비다. 그러나 이것을 막연한 신비로만 돌리면 이단 교리들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가능성이 너무나도 크다. 지금보다는 구체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삼위일체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첫째,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모두 한 본체, 한 본질이시지만, 성부는 성자가 아니고, 성자는 성령이 아니며, 성령은 성부가 아니다. 다 각각 구별되는 위격을 갖고 계시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는 신비로운 존재 방식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예수님이 아니고 예수님이 성령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 각각 구별된다.
둘째, 이 세 분은 각각 구별되는 분이지만 서로 안에 깊이 침투하시며 함께하신다. 이러한 존재 방식을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 즉 상호침투라고 한다. 마치 한 쌍의 댄서들이 하나를 이루어 춤을 추듯, 성부, 성자, 성령께서는 서로의 사역에 깊이 함께하시며 하나 됨을 이루시는 것이다. 셋째, 그런 가운데 삼위 하나님은 본질에 있어 일체를 이루신다. 그렇기에 한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이 한 분의 하나님으로 존재하신다. 이러한 이해는 정말 중요하다. 만약 형태만 다른 양태론으로 가면 구약 시대의 성부가 신약 시대에 성자가 되고, 부활 이후에는 성령이 된다. 형태만 다를 뿐 다 같은 하나님인 것이다.
이런 양태론적 이해를 갖고 있다면 교주를 예수의 영이 임한 하나님이라고 해도 아무런 저항 없이 거짓을 받아들이고 그를 추종하게 된다. 그러나 삼위일체 하나님 이해에 따르면 성부가 신약 시대에 성자가 될 수 없고, 성자가 이후에 교주가 될 수 없다.
양태론이 더 위험한 이유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 사역이 결국은 하나님의 1인 드라마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양태론을 따르면 성부 하나님이 성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고, 그가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죽어 성부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받았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
성부가 그리스도가 되어 고난을 받고 죽었다가 스스로 부활한 것이 된다. 결국 이런 양태론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역사와 효력을 모두 부인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러한 양태론에 따르면 성부가 활동할 때는 성자가 활동하지 않는다.
성자가 활동하기 이전에는 성령이 활동할 수 없다. 각각 다른 형태로 나타나지 함께 활동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함께 활동하는 것을 종종 기록한다.
✽ 이 글은 『바이블 백신1』(홍성사)의 내용 중에 ‘2.2 양태론적 삼위일체론-이단으로 빠지는 지름길’(pp.129~133) 부분을 저자 양형주 목사의 허락을 받아 발췌 및 요약하여 게재했습니다. - 저작권자 (C) 월간 현대종교(hdjongkyo.co.kr), 영리 목적의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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