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종말론사무소의 윤재덕 소장입니다. 예전에 번역 일을 하던 친구가 중국 쪽 종교단체에서 사이트를 비롯해 책자에 이르기까지 한국 번역자들에게 대거 일을 맡기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확인해본 결과 전능신교였습니다.
중국당국의 압박을 받자 한국을 본거지 삼기 위해 온라인에서 활발한 활동을 준비 중이었던 것입니다. 그때 제가 눈여겨 봤던 전능신교의 전략은, 업로드한 유튜브 영상들이 대부분 드라마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교리 강좌나 교세 자랑이 아니라, 자신들의 입장과 교리를 소재로 하는 드라마 형식의 영상이었기에 누구나 전능신교의 교리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만들어두었습니다.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본다면 ‘문화의 옷을 입은 신학’이었습니다.
당시 국내 기독교 콘텐츠들이 대부분 유명 목사님의 설교를 그대로 올리는 것에 지나지 않았을 때, 콘텐츠의 입장에서 보면 신흥종교는 한국 교회를 앞서나가고 있던 것입니다. 신천지의 경우 “교리비교”라는 시리즈의 영상을 유튜브에 100여 개가 넘도록 올려두었습니다.
100개의 영상들은 대부분 형식이 비슷한데, 전반부에서는 한국교회를 자신들의 관점에서 비판하고 후반부에는 신천지 교리를 소개합니다.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듣고 신천지 쪽에 손을 들어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잘 만들어진 영상들이었습니다.
물론 그 내용이란 극단적이고 비약이 심했지만 콘텐츠의 질을 생각해본다면 성공한 시리즈입니다. 오늘날의 신흥종교는 양질의 문화를 제공하는 것을 자신들의 무기로 삼습니다. 신천지의 경우는 ‘하늘문화’라는 콘텐츠 생산에 주력해왔고, 신천지 팟캐스트인 하늘팟의 성공을 보아도 알 수 있듯, 신도는 콘텐츠라는 창을 들고 싸우는 이 문화 전쟁에 적극 참여하기 때문에 콘텐츠는 금세 자리를 잡습니다.
신흥종교의 콘텐츠 생산을 우리가 싫어할 수는 있지만 막을 수는 없습니다. 신흥종교의 콘텐츠는 사회를 어지럽히는 흙탕물과 같습니다. 하지만 흙탕물을 보며 혀를 찰 것이 아니라, 맑은 물을 대량으로 붓는 것이 수질을 개선하는 방법입니다. 양과 질적인 면에서 기독교 콘텐츠의 성장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그리고 이것의 책임은 강같이 흐르는 생수를 맛본 이들에게만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들은 좋은 콘텐츠에 클릭과 재정으로 후원하고, 누군가는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학계와 교계 사이에서, 또 교회와 사회 사이에서 고민을 반복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저것 검색을 하다 보면 현실은 우울합니다.
한국교회를 떠올리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좋은 콘텐츠, 좋은 시리즈가 있으신가요? 사람들에게 쉽게 교리를 제대로 설명하면서도 현실과의 접점을 유쾌하게 그려내는 콘텐츠는 무엇이 있을까요? 한국교회의 규모를 생각하면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제 생각에는 ‘신학펀치’라는 시리즈가 전문성과 재미를 둘 다 잡은 좋은 사례로 보입니다. 그러나 콘텐츠의 질에 비해 구독자 수와 조회 수를 보면, 대단히 아쉽습니다. 후속작이 나오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신학은 문화라는 옷만 잘 입으면 그야말로 옷빨을 잘 받을 수밖에 없는 훌륭한 모델입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이 신학에 걸맞은 옷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신흥종교의 조직력, 자금력, 기획력 타령하기 전에 일단 우리가 가진 소재부터 점검해보는 것이 순서라는 생각이 듭니다.
‘신학’이라는 말을 꺼내 봅시다. 기독교가 가진 콘텐츠는 신학을 기반으로 하던지, 신학 자체를 소개하던지 신학과 떨어뜨려 놓고 생각할 수 있는 게 아닐 테니까요. 하지만 신학이라는 소재는, 듣기만 해도 노잼이라는 인식이 있진 않나요? 전공자들은 되돌아 봤으면 합니다. 전공자들은 모두 신학에서 재미를 느꼈던 사람일 테지요.
하지만 오늘날의 신학은 사회를 보는 창이 아니라 그저 ‘우리만의 리그’가 되진 않았나요? 유튜브에서 ‘신학’을 검색해보세요. “오늘의 신학공부” 채널의 외로운 싸움을 볼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규모에 비해 신학을 소개하려는 노력은 느부갓네살 신상의 진흙 발가락 같습니다.
온라인 콘텐츠를 놓고 보면 한국교회는 신흥종교의 기획력, 자금, 규모, 인력에 현저히 밀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건전한 신학의 반격’이 필요합니다. 이걸 누가 해야 하느냐? 누구긴 누구겠어요? 다름 아닌 신학생 및 목회자입니다. 신학생들의 미래상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좋은 목회자가 아니라 ‘창조주를 닮은 크리에이터’이기를 기대해봅니다.
신학을 전공했던 친구들이 전도사로 수 년간 허둥지둥 뛰어다니다가, 결국 자신의 자리가 없다고 낙담하며 급하게 다른 일을 알아보는 것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습니다. 신학생들이 꼭 목회가 아니더라도, 좋은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만으로 미래를 그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콘텐츠 생산이라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그 일에 유의미한 노력을 붓기는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미래를 위한 투자입니다.
문화 전쟁의 일선상에 건전한 신학으로 무장한 크리에이터들은 서로 단단히 연대하고, 후방에서는 한국교회의 형제, 자매들의 적극적인 물자 공급이 이뤄지는 거대한 진영을 상상해봅니다. 이렇게 진영을 만들지 않고서 각개전투해봐야 패배가 결정된 군대의 게릴라전이 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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