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대 교회의 이단
(1) 초대 교회의 역사와 신학 교회사의 시기구분은 교회사학자들에 따라 다양하다. 하지만 중세 교회의 특징을 수도 원운동과 교황제도라고 전제할 때, 유럽전역의 수도원개혁을 통해 교황제도를 확립한 수 도사 출신의 교황 그레고리(Gregory the Great, 540~604)가 재위했던 590~604년의 기 간을 전후로 하여 초대 교회와 중세 교회를 나눌 수 있다. 또한 초대 교회 600여 년의 역사는 두 시기로 구분될 수 있다. 첫째는 로마제국의 박해 가 있었던 전반부 300여 년이고, 둘째는 콘스탄틴황제(Constantinus, 280~337)에 의해 신앙의 자유를 얻고(313년) 데오도시우스황제(Theodosius, 347~395)에 의해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391년) 후반부 300여 년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 초대 교회에서 예 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대표적인 신실한 신앙인의 모습은 전반부 박해의 시기에는 순교자 이단의 뿌리를 찾아서 (2) (martyr) 혹은 고백자(confessor)의 삶이었으며, 후반부 신앙의 자유 시기에는 금욕주의 자(ascetic)의 삶으로 나타났다. 초대 교회의 성장과 성숙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1)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해 <교회 가 시작>한다(행2장). (2) 그리고 유대교의 박해와 스데반의 순교를 통해 <교회의 기초>가 놓여진다(행6~8장). 스데반의 순교 후 각지로 흩어지게 된 신앙인들은 안디옥에서 그리스 도인들이라고 불리게 되고, 로마제국 전역으로 교세를 확장해 나아가게 된다. (3) 로마제 국 전역에서 뿌리내리던 기독교인들에 대한 로마제국의 조직적인 대규모 박해가 이루어 진다. 하지만 이러한 박해는 오히려 비약적인 <교회의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 (4) 313년 로마제국의 박해가 끝나고 신앙의 자유가 주어졌으나, 신실한 신앙인들은 여기에 안주하 지 않고 금욕주의적 삶을 통해 하나님께 다가가고자 노력했고, 이를 통해 <교회는 성숙> 하게 된다. (5) 한편 초대 교회 안팎에서 이단들의 도전이 거세지자 <교회는 위기>에 처하 게 된다. (6) 이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교회의 지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에큐메 니칼공의회를 개최하고 <교회의 일치>를 이루게 된다. 325년 니케아(Nicaea)에서의 첫 공 의회를 주도한 콘스탄틴황제는 로마제국의 안녕을 위해 이단문제를 해결하고 교회가 하 나 될 것을 강조한다. 초대 교회의 교부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일치를 강 조하고, 교회일치의 가시적 중심으로 사도직의 계승자인 감독의 역할을 강조한다. (7) 마 침내 에큐메니칼공의회를 통해 니케아-콘스탄티노플신조가 만들어지고 기독론에 대한 < 교회의 신학>이 확립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