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늘 생활고에 시달려 하루하루 바쁘게 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에 갈 시간도 신앙을 돌아볼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중학교 때까지는 친척들의 도움을 받아 동생과 학업을 마쳤지만, 고등학교 때부터는 형편이 여의치 않아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며 힘들게 대학입시의 문턱을 넘었습니다.
서울에 살다가 인천소재의 대학에 입학하게 되어 자취방을 얻고 등록금을 보태기 위해 일을 병행했습니다. 하지만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기에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고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으로 학비와 월세를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제 소식을 들은 학교 선배가 자취방을 같이 쓸 수 있게끔 룸메이트를 구해주겠다고 했습니다.
본인이 아는 친구가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는데 집도 지금보다 크고 사람도 좋으니 그쪽에 들어가서 같이 사는 건 어떻겠냐고 추천했습니다. 금전적으로 힘들었던 저는 좋은 기회라 생각해 바로 수락했고 며칠 후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자취방도 넓고 무엇보다 룸메이트와 잘 맞아서 좋았습니다. 바쁘게 사느라 하나님을 떠나 잊고 살던 저였는데, 룸메이트 언니의 삶의 태도는 잊고 있던 하나님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아침을 같이 먹으며 짧은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고 좋은 말씀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서로 나누며 위로했습니다.
이사 후 한 달 정도가 지나자 우연히 언니의 교회 오빠라며 어떤 남자 학생을 소개받고 같이 신앙적인 얘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오빠는 교리적인 부분에 박식했으며 어릴 때 교회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던 휴거, 계시록 등 여러 어려운 교리들도 쉽게 알려주었습니다. 성격상 늘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의심하고 이성적으로 따지고자 했던 저였는데 오빠의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진정한 믿음이 뭔지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무엇보다 금전적인 문제, 힘든 학업과 대학생활로 지친 시기에 언니와 오빠는 무엇이든 지원해 줄 수 있는 든든한 지원자이자 안식처였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가족과 같은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믿음이 생길 무렵 다니던 교회가 없던 저는 자연스레 언니와 오빠의 교회를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어느 교회와 다름없이 다양한 성도들이 있었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꽤 많은 사람이 다니는 큰 교회였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교회와 다르게 목사님이 설교하실 때에 선생님 이라는 호칭을 쓰는 사람이 자주 등장했습니다. 선생님이 등장하는 동영상을 시청하면서 목사님보다 위에 있는 존재 같다고 느꼈습니다.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궁금했던 저는 언니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고 그 사람이 정명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정명석이 누군지 JMS가 뭔지도 몰랐던 저는 선생님이라는 사람을 마치 전통이 있는 교회의 원로목사나 원로장로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동영상을 통해 보는 정명석의 삶은 이웃에 대한 희생과 사랑, 하나님을 향한 헌신과 믿음을 가진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이후 언니, 오빠들과 같이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성경공부도 더 깊이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은 창세기를 설명하며 선악과를 따먹은 하와의 모습을 남녀 간에 성관계로 해석해야 한다고 말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상하다고 생각되어 인터넷에서 교리를 찾아보게 되었고, 제가 다니는 교회가 수많은 문제가 있는 이단이라는 것과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정명석은 수감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혼란스러웠던 전 더 이상 교회를 다닐 수 없었고 고민 끝에 휴학 후 서울에 있는 친구 집으로 와서 살았습니다. 3년이 지난 지금, 가끔 그때 제가 얼마나 잘못된 교리를 배웠고, 위험했었는지를 깨달아 무서울 때가 있습니다. 온정의 손길을 내미는 이들에게 정에 이끌려 맹목적인 신앙을 갖게 될 뻔했던 어린 날의 저였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