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하나 지어내는 것으로 글을 시작할까 한다.
어느 이름난 아름다운 성읍의 높은 망루에는 파수꾼이 있었다. 밤을 꼬박새고 아침을 기다리는 것보다 주를 더 기다리는 신실한 사람이었다. 멀리 성을 향해 오는 한 사람이 보인다. 그의 걸음이 성읍을 향해 가까워지도록 파수꾼은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생김새와 복색으로 미루어보아 서쪽나라 사람인 듯한데, 뭐하는 사람이며 그가 끌고 오는 마차에는 무엇이 실려 있는지는 알 길이 없었기에 더더욱 면밀히 관찰한다. 이윽고 성 앞에 다다른 그가 안으로 들여보내주기를 원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우선 들여보내도 될지, 일단 기다리게 해야 하는지, 돌려보내야 할지 확인해야만 한다. 파수꾼은 간단한 몇 가지를 질문한다. 성 안에 사는 서쪽나라에서 온 사람을 불러 이 사람에 대해 잘 아는지도 물어봐야 한다. 그가 믿을 만한 사람인지, 그가 싣고 온 저 물건들이 무엇에 쓰는 물건이며 우리 성읍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혹 전염병이라도 옮겨온 건 아닌지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 혹 신분이 확인되어 들여보내더라도 조금이라도 미심쩍은 바가 있다면 일단 먹이고 씻기며 한동안은 유심히 지켜보아야 한다.완고한 성격의 새로운 왕이 자리에 오른 어느 날, 성루에 앉아 있기만 하는 것처럼 보이는 파수꾼의 일이 비생산적이라 판단한 왕은 파수꾼을 해고해 버리고, 대신 성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는 경제적인 방법을 택했다. 그러나 한때 교역의 중심이었던 성읍을 영악한 장사꾼들이 그냥 포기할 리 만무하다. 각지에서 모인 그들은 날이면 날마다 성읍을 찾았고, 숫제 성문 앞에 진을 치고 밤낮없이 성문을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결코 지치지 않는 기세로 세를 불려가던 그들은 급기야 성문을 힘으로 밀기 시작한다. 어이없이 성문이 무너지는 순간 잇속에 눈이 먼 장사꾼들은 말 그대로 ‘물 밀 듯이’성읍으로 몰려 들어왔고, 성 안은 아수라장이 된다. 누가성 안 사람인지 성 밖 사람인지도, 뭐가 좋은 것이고 뭐가 나쁜 것인지의 구분도 어려워졌다. 새로운 물건들의 갑작스러운 대량 유입에 열광하는 사람도, 우려하는 사람도, 당황하는 사람도 있었다. 가진 사람들은 이것저것 새 물건들을 사들여 써 보기도 했지만, 없는 사람들은 오히려 더 외로워졌다. 장인의 예술성과 노고가 깃든 물건이 대접받는 대신에 잘 팔리면 좋은 것이고 안 팔리면 나쁜 것으로 여기는 천박함이 당연해지기도 했다. 오랜 시간 성 안에서 중요하게 생각되던 것들이 하루아침에 구닥다리로 전락하기도 했고, 새로운 문물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자들은 성문이 무너진 것이 오히려 반갑기만 했다. 또 밖에서 들어온 것은 무조건 악한 것이니 쳐다봐서도 안 된다는 사람들의 목소리 또한 만만찮았다. 결국 성읍은 그 본래의 아름다움과 명성을 잃어가며 소란하고도 지저분한 곳으로 퇴락해 갔다.
우습도록 극단적이면서도 슬프도록 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언제나 자화상을 그려내는 것은 가장 어렵고도 아픈 일이다. 앞에 소개한 이야기는 한국교회의 문화수용방식을 바탕으로 구성했다. 한국교회는 문화수용을 기본적으로는 ‘쇄국정책’, 그리고 그것이 무너졌을 때는 곧바로 ‘사대주의’로 돌변한다. 쇄국정책과 사대주의 사이의 경계란 마치 거센 폭풍우 앞의 문풍지처럼 아슬아슬하여 대중문화의 북풍한설을 막아 내기엔 터무니없이 연약해 보인다. 현대화(Modernization)와 세속화(Secularization)의 기로에 선 한국교회는 내내 주체의 문제에서 주도권을 세상에 빼앗겨 왔다.교회가 개혁의 주체가 되면 현대화, 세상이 주체가 되면 세속화라는 식의 이분법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교회 안에는 늘 이원화된 입장이 있어 왔다. 전통과 개혁의 문제는 비단 가톨릭과 개신교회를 구분 짓는 잣대 그 이상의 내부적 동력원이었다. 이 오랜 맞수는 교회를 건강하게 유지하며 진취적으로 이끄는 자정원이기도 했고, 동시에 갈등과 분쟁의 근원이기도 했다. 문제는 한국교회 안에 변화에 대한 날 선 ‘검열자’는 많되 좋은 ‘관찰자’가 없다는 데 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당장의 현상을 두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조급한 검열자에 비해 오랜 시간과 공을 들여 지켜볼 줄 아는 진지한 관찰자가 터무니없이 적다는 사실이다. 검열자와 관찰자 사이에서 한국교회는 언제나 스스로 완고한 검열자이기만을 원했다.그러나 결코 지치지도 않고 포기도 모르는 세속적 대중문화의 위압 앞에 결국은 종속적 소비자로 전락해 버렸다. 혹은 관찰하기를 게을리했던 스스로를 반성하기보다 이미 유입된 현대적인 문화를 무조건 반대하거나 혐오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알량한 자존심을 지켜내려 한다. 이렇듯 교회는 문화 전반에 있어서 수동적 태도를 벗어나지 못한 채 많은 부분에서 그 영향력을 세상에 내주었다. 이 글을 통해 다루고자 하는 ‘예배문화’, 특별히 ‘찬양’을 매개로 하는 예배는 교회문화를 대표하는 것으로 자리를 잡았다. 기독교가 문화이면서 문화가 아니듯, 예배 또한 문화지만 문화가 아니다.1980년대 중후반부터 본격화된 경배와 찬양 운동은 가히 폭발적인 반응과 논란 속에서 예배에 대한 인식과 형식의 변화뿐 아니라 한국교회 문화 전반의 변혁을 가져왔다. 그것을 변혁으로까지는 인정할 수 없다하더라도 현대적 찬양예배의 유입은 최소한 한국교회 전체 분위기의 변화를 촉발시켰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교회 안에는 예배를 본질로 보느냐, 형식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과 이견의 가능성이 존재할 수 있다. 본질을 사수하고자 하는 이들은 예배 형식의 변화를 두고 ‘본질의 변질’로 확대해석할 것이고, 형식의 변화에 민감한 이들은 전통적 예배 방식의 고수를 ‘본질을 오해’한 형식의 우상화로 치부할 수 있다. 예배를 유행이나, 트렌드로 인식하는 가벼움도 문제지만, 예배 형식을 불변의 것으로 인식하는 것 또한 유연하지 못한 태도다.모든 신앙인에게는 예배에 대한 각자의 정의(定義)가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예배란 ‘엄숙’, ‘경건’, ‘거룩’, ‘정결’로 정의한다. 또 어떤 이는 예배란 ‘자유’, ‘기쁨’, ‘열정’, ‘축제’로 정의한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정의에 따라 예배하기 마련이고, 자신과 다른 정의를 가진 이의 예배가 충분히 불편하게 보일 수도 있다. 때문에 내가 선호하는 예배 방식이 진짜 예배라 믿는 나쁜 습관을 갖게 되었으며, 개인의 예배 정의에 따른 형식의 상이는 서로 간의 판단과 정죄의 대상이 되어 버리기도 했다. 사실 한국교회의 세대와 문화 간의 오랜 갈등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음악의 도구화나 가치중립성에 대한 고민이라든지 해묵은 음악장르논쟁 등으로 뜨거웠던 시절이 있었다.특정 악기(드럼, 일렉기타)의 사용 여부를 두고 편이 갈려 싸웠고, 록 음악은 사탄의 음악이라는 극단적인 목소리가 힘을 얻기도 했다. ‘성’과 ‘속’의 이원론의 잣대는 유독 찬양예배에 더 날카롭게 들이대졌고, 수많은 음악사역자들이 자신이 부름받은 사역의 방식을 변호하느라 많은 시간과 노력을 소모해야만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 조차 더 이상 심각한 논쟁거리로 다뤄지지도 않는다. 이미 교회 안에서 예배 중에 전자악기들이 연주되고 있는데 자꾸 말하면 무엇 하냐는 식의 체념적 태도는 충분한 관찰과 검증의 결과가 아닌 무비판적 대세의 수용에 불과하다. 그토록 본질과 전통을 부르짖으며 성경에 근거해 전자 악기를 반대하던 장로님들이 어느 순간 별 거부감 없이 드럼 반주에 맞춰서 박수를 치고 있는 모습은 묘한 이질감을 준다.예배는 변혁의 주체이며 동시에 변혁의 대상이다. 예배는 성도의 말과 생각과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교회와 공동체의 부흥을 이끌며 더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거룩한 주체가 된다. 그와 동시에 끊임없이 새로워지며, 완전하신 분을 향한 다양한 표현 방식들을 찾아낼 필요가 있다. 다음 호에서는 찬양예배가 한국교회에 가져온 긍정적인 영향과 더불어 한계 상황 몇 가지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