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미선교회 이장림은 1992년 10월 28일 자정에 휴거가 일어난다고 주장해 사회적 혼란을 일으켰다. 흰옷을 입고 휴거를 기다리던 신도들의 모습이 국내외 언론에 고스란히 생중계되었다. 하지만 휴거는 일어나지 않았고 신도들에게 깊은 상처만 남겼다. 휴거 소동으로 인해 학업과 직업 포기, 가정 파탄과 해체, 가출, 낙태, 정신질환 등의 심각한 폐해가 나타났다.
탁명환 소장은 휴거의 실체를 알리기 위해 애썼다. 탁 소장은 “이 세상의 종말은 과연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었는가? 세대주의적인 종말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1992년이나 1999년에 종말이 올 것인가?”라고 질문하고 “요즘에는 이단도 문제이지만 시한부 종말론, 절박한 심판설이 더욱 많은 잘 믿는 성도들을 유혹하고 있다”고 염려하면서, “크리스천이라면 재림주 대망신앙, 종말론 신앙을 마땅히 갖고 옷깃을 여미어 주님 재림과 세상 끝날을 고대하는 것이 당연하겠거니와 시한을 정하여 몇 날 며칠 몇 시다라고 못을 박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휴거가 불발된 직후인 1992년 10월 29일 새벽 탁명환 소장은 정체불명의 괴한 2명으로부터 흉기로 피습을 당해 중상을 입었다. 사건 당일 저녁 아파트 경비실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내려가자 등과 옆구리에 자상을 입은 아버지 탁명환 소장이 피를 흘리고 있었다. 인근 상계백병원 응급실로 탁 소장을 모시고 갔고, 다행히 하나님께서 생명을 지켜주셨다. 필자의 결혼식을 한 달 앞둔 시점이었다.
회복한 아버지 탁명환 소장은 휠체어에 의지한 채 결혼식에서 혼주석을 지키셨다. 결혼식 하루 전날인 1992년 11월 23일 새벽 병상의 탁명환 소장은 “살아 숨 쉴 수 있다는 것은”이란 제목의 글을 남겼다.
아픔과 고통으로 이 한밤을 지새울지라도
수술로 육신의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갈지라도
병상에 누워서 오래 움직일 수 없을지라도
살아 숨 쉴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창밖에 보이는 기다란 자동차 행렬도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는 마른 나무들도
첫눈이 내리는 하늘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무리 육신의 아픔이 고통스러울지라도
마음의 고통이 아울러 영육을 짓눌러도
가난의 비통이 내 곁에서 괴롭힐지라도
예수의 십자가 고난과 비교하면 감사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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