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자의 소명 중 하나는 ‘기억’하는 것이다 -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 -
역지사지
그간 자주 다뤘으나 위 제목만큼 잦은 언급과 회자를 필요로 하는 것이 또 있을까 싶다. 살면서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것만큼 귀한 일도 없지 싶고,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긴 하나 평생 ‘역지사지’하며 살아야 할 이유는 충분히 많다.
제목은 두 언론 덕분에 정해졌다. 먼저는 「한겨레신문」, 유승하 작가의 ‘까치발’이란 코너에서 ‘수없이 휠체어를 그려왔지만 가족이 써야 할 상황이 되자 펼 줄도 접을 줄도 몰라 이리저리 헤매었다.
남의 일이라는 게 그런가. 공감한다고는 쉽게 말하지만 내 일로 닥쳤을 때 공감이란 단어의 무게감이 다르게 와 닿는다’고 피력한 것에 마음이 동했고, 다른 하나는 기독교잡지 「새가정」의 ‘책과 함께’코너 <환자가 된 의사들(로버트 클리먼츠 지음)> 의 “누구든 환자가 되기를 거부할 테지만 의사들도 매한 마찬가지다.
저자는 우울증을 치료하는 의사인데 9.11 테러를 통해 동생을 잃었고, 그는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야 만다. 환자와 의사 속의 깨어진 구도를 통해 “환자들이 어떤 일을 겪는지, 우울증에 처박히는 경험을 말로 표현하기 얼마나 어려운지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는 내용 때문이었다. 그는 의사가 되기 전 받은 훈련과 수련이 전혀 도움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덕분에 ‘이단 피해자들’의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50년 가까이 사역한 연수의 자랑만큼이나 ‘사역의 본질을 잘 깨달으며 일하고 있는지’, 내지는 ‘이단 피해자들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고, 또 어떠한 마음과 태도로 다가가려 했는가’ 등의 문제이다.
매달 본지엔 신천지 피해자들이 자원봉사 차 방문하고 있다. 일이 끝나고 나면 감사한 마음에 변함없이 식사의 청을 드리지만 번번이 시위 등으로 고사하시곤 한다. 그때마다 (이단에 빠진) 가족들 때문에 당연히 바쁘시겠거니 하며 더 이상 관여치 않았다.
그리곤 강의 때 그들의 삶을 나누는 일과 본지에 가끔 기사화하는 것으로, 내지는 커피 값도 안 되는 소액의 후원금으로 생색을 내왔다. ‘역지사지’의 마음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간절한 마음으로 회복사역에 동참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위 <환자가 된 의사들>의 목차를 보면 1장의 제목은 ‘환자가 된다는 것’이고, 2장의 제목은 ‘환자가 된 의사로 산다는 것’인데 그 ‘환자’ 대신 ‘이단 피해자들’ 내지는 ‘세월호 가족들’ ,그리고 ‘소외되고 아픈, 이 땅의 수많은 이들’을 넣어 읽어보고, 또 그렇게 생각해보는 것으로 다시 살고자 한다.
*고사성어 하나의 힘이 결코 작지 않은 듯하다. 거룩한 부담감을 안겨주기도 하고, 간혹 위선과 허울을 잠재워 주기도 하니.
자장면의 슬픈 추억
여지없이 길어지고 있다. 늘 되풀이되는 상담이긴 하나 그래도 내담자에겐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으니 끝까지 버텨보기로 한다. 그러나 이내 한계에 도달하고, 끼니까지 놓치고 나니 더욱 민감해진다. 자장면이 도착한 지는 30분 정도 지난 듯싶다.
굳어져 버렸을 일용할 양식을 생각하니 짜증까지 밀려온다. 온종일 일하는 대가 중 하나인 육의 양식을 대하는 그 잠깐의 시간이 이렇게 소비되고 나면 몸과 마음 모두가 상해버린다.
드디어 상담이 끝이 나고, (떡이 된) 자장면을 먹으려 하는데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난다. 좀 전의 상담은 이단에 빠진 가족의 문제였다. 그 중한 문제를 대하며 식사 한 끼 늦어진 것에 투덜대는 모습이 처량하기 그지없고, 측은하기 짝이 없어서인가?
당혹스럽지만 분명한 것 하나는 한 영혼의 문제가 그깟 밥 한 끼보다 못한 지점까지 왔다면 이젠 어쩌면 이 사역을 접어야 할 시점인지 모르겠다. 이러고도 사역을 한다는 것이 온당한 것인지 시간은 흘러 ‘지금은 예전보다 잘 살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소명이없다면 직업의식이라도 갖고 사는가’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 역지사지를 말하니 갑자기 예전의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칼럼이 생각나 담았다. 되돌아보면 모든 것이 부끄러울 뿐이다.
필리핀 PHILIPPINES
5년 만에 다시 방문한 필리핀은 변화의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다. 오랜 기간 ‘부’는 더욱 ‘부’ 하고, ‘빈’은 더욱 ‘빈’ 해지고 있으니 새로 당선된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가 (그런데 우려도) 그만큼 커 보였다.
여전히 1950년도와 2010년대가 공존하는 나라, 백성들의 눈망울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나라, 그러나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으며, 탈도 많고 말도 많은 필리핀에서 코스타 10주년을 맞이했다.
영육 간의 기도 제목이 적지 않은 곳이기에 코스타 내내 뜨겁고 간절한 기도가 멈추질 않았고, 이단 문제도 그 심각성이 여전했기에 네 번째 방문한 이 땅에 오랜만에 잘 왔지 싶었다. 이전에 만났던 대부분의 유학생은 고국으로 돌아왔고, 교역자들 몇만이 기억하며 반갑게 맞아주었지만, 곧 모두가 이 나라의 정서마냥 친절하게 섬겨줬다. 이후 늘 그랬던 것처럼 은혜를 끼치러 갔다가 귀한 섬김과 나눔에 도리어 은혜와 감동을 안고 돌아왔다.
집회 중 특이했던 부분은 필리핀에서의 이전까지의 상담은 다락방 상담이 대부분을 차지했었는데 이번엔 ‘애터미’ 관련 상담이 대부분이었다. 이단의 문제도 여전했지만 각각의 생활고 등의 이유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다가 ‘애터미’라는 제품을 만나게 되었고, 그 제품이 주는 영향력이 모두에게 작지 않은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외 시간 내내 여러 정보를 나누는 것과 더불어 교민과 유학생 사회, 그리고 현지인들에게까지 미혹의 손을 펼치는 이단 문제의 대처에 대한 간절함이 몸소 느껴졌다(최근 본지는 필리핀을 포함해 각국의 한국 이단들의 정보를 수집해왔고 기사화했다. 앞으로도 여러 도움이 서로에게 적극적으로 나눠지길 바라며, 지금까지는 본지에서 많은 정보를 드렸으니 이번엔 여러분들의 차례이다. 각 나라의 한국의 이단 정보를 알려주시길 부탁드린다.).
무튼 이번 필리핀 코스타 10주년엔 베스트(?) 강사들이 총출동했는데 그중 영화 <제자 옥한흠>과 <순교> 등으로도 잘 알려진 김상철 감독이 함께했다. 그의 영화 모두가 선친과도 관련이 적지 않기에 더욱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그 애잔함 중 감사한 또 하나는 수년 전 이곳 필리핀 코스타에서의 이단 강의를 통해 두 친구가 이단에서 나오게 되었다는 고백 때문이었다. 회복 사역이 아니더라도 이 사역이 회복의 가능성에 다다른 것이 놀랍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다.
두 친구 모두 20년 가까이 이단에 있다 돌아온 사례여서 지금껏 감격의 마음이 식지 않고 있다. 강의 사역과 상담, 그리고 취재와 자료의 나눔, 이 모두가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선물이지 싶다. 코스타가 자비량이고,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한 강행군이기도 하지만 놓지 못하는 이유가 이렇듯 적지 않다.
준비된 진짜
그동안 이단들과 부딪혀오며 그 논쟁이 어려웠던 기억이나 버거웠던 적이 있었는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분명하다. 이단들은 거짓된 것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준비된 가짜들이고, 우리는 진실을 안고 살아가나 준비가 덜 된 진짜이거나 준비가 안 된 진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버거웠던 게다. 준비된 진짜는 준비된 가짜에게 절대로 지지않는 법, 지금이라도 늦지 않는 심정으로 잘 준비해서 그가 이겨놓은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할 것이다.
‘역지사지’와 함께 떠오르는 세월호, 그저 입장 바꿔 생각만 해도 좋으련만 ‘역지사지’는‘생각’이고 ‘행동’이며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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