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태민은 누구인가?
통일교 문선명도 못했던 일을 해낸 최태민
최태민을 직접 만난 선친 탁명환 소장은 그를 “신흥종교단체의 교주”, “유사 무속인”, “권력 그늘 속의 종이호랑이”, “권력의 시녀”, “고려 말 괴승 신돈”, “정식 신학교육도 받지 않은 (돈거래로 목사직을 산 것으로 보이는) 가짜 목사”라고 묘사했다. 탁명환 소장의 자료와 증언들을 통해 최태민은 누구였는지 그 실체에 접근할 수 있다.
첫째, 최태민은 신흥종교단체의 “교주”였다. 자신을 “영세계 칙사관”이라고 주장했다. 즉 스스로를 “조물주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불교의 깨우침, 기독교의 성령강림, 천도교의 인내천을 이룰 칙사님”이라는 것이다. 혼합 종교적 배경을 가지고, 자신의 영험함을 주장했던 전형적인 비주류 신흥종교의 교주였던 것이다.
둘째, 최태민은 “유사 무속인”이었다. 각종 기성 종교의 교리를 채용해 활동했으나, 기본적인 그의 성격은 무속적이었다.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으면, 인생의 불행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가 한 일은, “벽에다 둥근 원을 색색으로 그린 후 이를 응시하면서 ‘나무자비조화불’이란 주문을 계속 외우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만병통치하고 도통의 경지에 이른다”고 최태민은 주장했다. 탁명환 소장은 이러한 행위가 “최면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하지만 이제는 점점 사라져가는 무속인, 그것도 전통적인 한국 샤머니즘에 기초한 무속인이 아니라, 온갖 종교들을 혼합한 유사 무속인이었다.
셋째, 최태민은 “권력 그늘 속의 종이호랑이”였다. “권력의 시녀”였으며 “고려 말 괴승 신돈”과 같은 인물이라고 탁명환 소장은 설명한다. 최태민은 한국 사이비종교 역사에서 그 누구보다도 가장 권력 핵심에 근접한 인물이었다. 체계적인 교리와 치밀한 조직을 갖춘 통일교도 하지 못했던 일을 비주류 사이비종교 교주인 최태민이 해낸 것이다. 특히 육영수 여사의 사망이라는 ‘절묘한 시점’과 그 유자녀인 박근혜 대통령을 대상으로 선정했다는 ‘예상 밖의 선택’이 이것을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일단 관계가 형성된 후, 소위 구국의 명분으로, 정치권력 핵심의 비호를 받으며, 또한 그 권력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자신의 사욕을 채운 인물이었다.
넷째, 최태민은 “가짜 목사”였다. 1973~74년 기간에 만난 ‘무속인 원자경’이 1975년 ‘목사 최태민’으로 변신한 모습을 보고 탁명환 소장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정식적인 신학교육도 받지 않은 그가 금전거래를 통해 목사안수를 받았다는 증언까지 확보한 탁명환 소장은 그가 가짜 목사라는 확신을 가졌다. 특히 그가 주도하거나 참여한 기독교 행사에서 목사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최태민을 보면서 탁명환 소장은 그가 목사직을 급조해 만들어 악용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최태민이 주최한 육영수 여사 1주기 추모예배에서, “목사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나 기독교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순서에서 제외되고 근혜 양 주변을 맴돌던” 가짜 목사였다고 탁소장은 기록하고 있다. 언론이 최태민에게 목사라는 호칭을 붙이는 것은 그렇기에 어불성설이다.
오늘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설명하기 위해 최태민의 정체를 집요하게 조사하거나, 그의 역할을 치밀하게 분석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사이비종교 전문가였던 탁명환 소장에게 노출된 최태민의 모습만으로도 그가 누구였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최태민은 시작부터 끝까지 정치권력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운 사이비 종교 교주인 동시에 유사 무속인이었다.
2. 최태민의 측근들은 누구인가?
‘가짜 목사’ 최태민을 비호하고 이용한 ‘진짜 목사들’
탁명환 소장은 최태민과 그 측근들을 “부끄러운 권력의 시녀 목사들”이라고 불렀다. 최태민은 물론이고, 그를 통해 정치권력 핵심에 접근해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최태민을 이용한 이들에게 탁명환 소장은 더욱 주목했다. 심지어 ‘가짜 목사’ 최태민 마저도 자신을 이용해 권력 핵심에 접근하려는 ‘진짜 목사들’을 경멸했다고 한다.
최태민의 측근 목사들은 소위 구국십자군 소속임을 내세워 카키색 군복을 입고 십자가 모양의 별을 달고 허세를 부렸다고 한다. 고급 승용차를 타고 장군 지휘봉을 들고 탁명환 소장을 찾아와서 최태민에 대한 조사와 비판을 중단하라고 협박하기도 했다. 이들은 탁명환 소장을 찾아와서 “말조심하라. 이분[최태민]이 어떤 분인줄 알고 함부로 말을 하느냐. 그런 식으로 하면 신상에 좋지 않다.”는 협박을 했다고 한다. 이 일을 겪은 탁명환 소장은 “참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진짜 목사가 가짜 목사를 비호하고 두둔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라고 한탄한다.
그리고 탁명환 소장에 따르면 중앙정보부마저도 탁명환 소장을 찾아와 최태민에 대한 비판을 중지해달라는 압력을 가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가짜 목사 곁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던 “부끄러운 권력의 시녀 목사들”이 활보했던 세상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심지어 최태민도 그의 측근들이었던 목사들을 경멸했다고 한다. 이들은 최태민이 권력 핵심에 다가서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이었다. 검정 안경을 즐겨 착용하던 목사들과 의사들이 많았다고 한다.
탁명환 소장은 최태민 주변에 몰려든 “해바라기성 아부파들이 최태민을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일을 하고 있다”고 염려했다. 최태민도 그들이 무엇을 노리는지를 알았지만 그들은 최태민에게도 불가원불가근의 필요악이었다. 최태민은 이들에 대해 “더러운 xx들. 평신도들 아니 시장 바닥의 술주정꾼만도 못한 인간들. 싹 쓸어버려야 하는데”라고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고 탁명환 소장은 기록하고 있다. 과연 한국교회는 이번 최태민과 최순실 사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만드는 대목이다.
탁명환 소장은 이들 “권력의 시녀들”에 대해 비판하면서 “비록 당사자들의 명예를 위해 성명을 밝히지는 않으나, 역사의 기록과 하나님의 심판이 무서운 줄 알아야 하며, 하나님과 역사 앞에 권력의 시녀인 꼭두각시놀음을 한 것을 회개해야 할 것이다.”라고 단호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사건이 실제로 기독교역사에 실명으로 기록될 때가 올 것이다”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그의 믿음은 30여 년이 지난 후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다.
3. 최순실을 어떻게 볼 것인가?
정치적 능력을 지닌 권력 지향적 사이비종교 재벌 2세의 전형
최태민의 3남 6여 중 다섯 번째 딸인 최순실에게 최태민의 영향력이 고스란히 이어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종교가 가지고 있는 최순실에 대한 자료는 최태민의 가계보(家系譜)가 전부이다. 가계보가 보여주는 것은, 최순실의 위로 오빠가 3명이고, 언니가 4명이며, 최순실은 다섯 번째 부인의 자녀라는 사실이다.
한국 이단사이비운동역사에서 최순실이 가진 조건으로 후계자의 위치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은 지극히 예외적인 일이다. 한국에서 발흥한 이단사이비조직들은 예외 없이 권위적인 가부장제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조건에도 불구하고 최순실이 그녀의 부친 최태민이 하던 역할을 승계했다는 것은, 최순실의 능력과 영향력을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최순실의 나이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최태민 일가가 박근혜 대통령의 고비마다 전적으로 도와준 것은 박 대통령도 밝힌바 있다. 최태민의 자녀들 중 박 대통령에게는 바로 아래 4살이 적은 최순실이 (박 대통령과 동갑인 최태민의 4녀보다) 가장 편한 상대였을 수 있다. 즉 최순실은 능력과 연배 면에서 부친 최태민을 도울 수 있는 최적의 조건들을 갖춘 자녀였을 수 있다.
그렇기에 한국 사이비이단운동역사의 일반적인 후계 승계의 패턴을 가만할 때, 다소 예외적인 일이 생겼던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물론 최근 이단사이비단체들에서는 여성 후계자들의 등장이 보편화되었지만, 최태민이 사망한 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젊은 여성 후계자의 등장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다.
과연 최순실은 최태민의 후계자인가? 최태민의 역할이 최순실에게 이어지고 있다면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최태민이 명확한 후계 승계를 밝혔거나, 후계 지명을 위한 행사를 치룬 것은 아니지만, 최태민의 영향력이 최순실에게로 이어졌다면, 최순실은 부친 최태민의 역할을 이어받은 후계자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정치적 영역에서는 후계 역할이 분명해 보인다. 정치권력 핵심을 위해서 최태민이 하던 역할을 최순실이 그대로 했으니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드릴 수 있다. 최태민이 그의 측근들과 권력 핵심에 기생하면서 권세를 누렸던 것처럼, 최순실과 그의 측근들도 권력 중심에 머물며 상상초월의 권세를 가졌던 것이 드러나고 있다. 최태민은 ‘대통령의 딸’을, 그리고 최순실은 ‘대통령’을 이용해 권력을 행사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최순실은 최태민의 ‘종교적’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가? 탁명환 소장의 자료나 증언 그리고 최태민의 이력이나 활동을 보면, 최태민이 종교를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운 사이비종교 교주였던 것은 어렵지 않게 동의할 수 있다. 종교를 이용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다가서고, 구국선교를 명분으로 핵심 권력층의 신임을 얻었으며, 기독교 목사들을 끌어들여 권력의 시녀들로 만들었던 사이비 종교인이었다.
하지만 최순실에게 그녀의 부친 최태민이 노출했던 사이비 종교적인 모습보다는, 부와 권력을 향유하는 사이비종교 재벌 2세의 모습이 더 뚜렷해 보인다. 일제강점기 이후 발흥한 거의 모든 이단사이비운동의 안정적인 후계구도 구축은 실패했거나 진행 중이다. 후계구도의 정착은 종교사회학적으로 하나의 종교운동으로 정착해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태민이 사이비종교의 교주였다면, 그의 후계구도 구축은 실패로 끝난 것으로 보인다.
다수의 이단사이비종교 교주의 후계자들이 재벌 2세의 모습으로 살다가 사라진 것을 볼 수 있다. 최순실도 예외는 아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다른 2세들은 주로 돈과 성을 탐닉했다면, 최순실의 경우에는 권력에 집착했고 그 권력을 실제로 누렸다는 것이다. 최순실은 정치적으로도 비선(秘線) 실세였으나, 부친 최태민의 종교적 라인에서는 엄연한 계선(系線) 실세였다.
최태민은 최순실을 그의 종교적 후계자로 만들어 부과 권력을 유지해 나아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순실은 부친 최태민의 종교적 그늘로부터 벗어나 정치의 뜨거운 불길 속에서 더 많은 부와 권력을 쫓는 권력 지향적 사이비종교 재벌 2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부와 권력은 3세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최태민의 선택은 결국 한 나라의 대통령뿐만 아니라, 자신의 자손들마저도 역사의 심판대에 올려놓는 비극을 초래했다.
4. 사이비종교와 정치권력 관계의 끝은 어디인가?
공생이 아니라 공멸로 이끄는 사이비종교와 정치권력의 만남
종교와 정치권력의 공생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한국현대사는 사이비종교와 정통성이 부재한 정치권력이 서로를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서로를 필요로 해왔던 사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관계형성을 통해 사이비종교는 자신들의 합법성을 인정받으려고 시도하는 한편, 자신들을 이단 혹은 사이비로 분류해 경계하는 기성 종교들로부터 보호받기를 원했다. 그리고 정통성이 부재한 정치권력은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사이비종교를 이용해 여론을 호도하고 분열시키는 시도를 해왔다. 그야말로 공생의 관계인 것이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집중적으로 발흥한 이단사이비종교들은 정치권력에 유착하기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정치권력은 종교적 후발주자인 자신들을 보호하고 세력을 확장할 수 있는 최적의 필요조건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반공을 국시로 내건 군사정권을 위해, 이단사이비종교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승공과 멸공을 외치게 된다. 최태민의 구국십자군과 구국선교단이 내세운 기치도 멸공이었다. 이러한 특징의 원조는 통일교였다.
소수의 통일교인들이 60년대 초반 미국 반전평화운동의 중심이었던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교 앞에서의 반공을 명분으로 전개되던 베트남전쟁 찬성 시위를 벌인 후, 통일교는 미국 정보부와 정권의 관심과 지원을 받게 된다. 이러한 경험을 살려 통일교는 70년대 한국에서 적극적인 승공운동을 펼치며 박정희 정권의 비호를 받으며 급성장하게 된다. 이러한 성장은 문선명이 탈세혐의로 1984년 수감될 때까지 지속된다. 현재도 통일교의 정치적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통일교의 성장을 지켜본 수많은 이단사이비운동들은 적극적으로 이를 벤치마킹하게 된다.
최태민과 관련해 주목할 점은, 조직력과 경제력을 동시에 갖춘 통일교도 권력 핵심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주변을 맴돌면서 가정당 창당을 통해 정치권 진입을 시도했지만 실패로 끝난데 반해, 허술한 사이비종교의 교주였던 최태민과 그 가족은 단숨에 권력 핵심으로 들어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다는 사실이다.
최근 최태민의 전도관, 신천지, 구원파 등의 관련설이 등장하고 있는데, 아마도 정치권력을 이용하기 위해 선거 등을 통한 친정부 활동에 집중하는 이단사이비 단체들의 최근 경향성과 무관해보이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무분별한 추측이나 부정확한 보도가 조심스럽다. 쉽게 마녀사냥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이번 기회가 이단사이비 대처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근거 없는 논리의 비약이 다시 교회를 향한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는 염려가 생긴다. 공신력 있는 정보에 기초한 설득력 있는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사리사욕을 본질로 하는 사이비종교와 명분을 중요시하는 정치는 함께 ‘공생’해서는 안 된다. 한국근현대사는 공생의 위험성을 여실히 증언하고 있다. ‘공생’이 불가한 이유는, 그 결과가 ‘공멸’이기 때문이다.
5. 한국교회는 ‘개혁주체’인가, ‘개혁대상’인가?
종교개혁 500주년 목전에 터진 최태민과 최순실 사건이 주는 교훈
탁명환 소장은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은 이솝우화에 나오는 거짓말하는 아이와 같이 정권유지를 위해 부단히 북괴의 남침위협을 이용하였으며 기독교마저 목사로 둔갑한 계룡산 교주의 손아귀에서 놀아났다.”고 비판한다. 탁명환 소장은 최태민의 구국십자군 활동을 보며, ‘가짜 목사’ 최태민에게 수많은 ‘진짜 목사들’이 자발적으로 이용당했다고 안타까워했다.
탁명환 소장은 “권력의 언저리를 넘겨다보고 기생하기 위해서 성직자들이 앞을 다투어 근혜 양에게 접근하기 위하여 최씨 앞에서 설설기는 모습은 참으로 가관이었다.”고 한탄한다.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거짓 목사 최태민을 맹종하던 진짜 목사들의 초상이 한없이 부끄럽기만 하다.
최태민과 최순실 사건을 지켜보며 한국교회를 향한 여러 질문들이 떠오른다. 가짜 목사 최태민과 그의 자녀 최순실이 한국사회에 끼친 해악에서 한국교회는 자유로울 수 있는가? 소위 정치권력에 집착한 정통 교회의 목회자들이 최태민의 등장과 성장을 위한 원인을 제공한 것은 아닌가? 최태민에 대한 한국사회의 분노와 격렬한 비판을 소위 정통 한국교회를 향한 지지로 받아드릴 수 있는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한국교회는 ‘개혁의 주체’인가, 아니면 ‘개혁의 대상’인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목전에 두고 터진 최태민과 최순실 사건. 전직 무속인 교주 출신의 가짜 목사와 그를 이용해 권세를 누렸던 진짜 목사들의 이야기에 한국교회는 참담한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서 옷을 찢고 재를 뿌리며 회개해야 한다. 우리는 피해자이기 이전에 이번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가해자일 수도 있다는 점을 하나님과 역사와 민족 앞에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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